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서문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환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나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게오르그 투카치, <소설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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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ㅣ루카치 소설의 이론
[오늘의 책<4월 13일>] 소설의 이론
게오르그 루카치 / 심설당 '문제적 개인'은 다 어디로 갔나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저 유명한 <소설의 이론> 첫 구절이다. 헝가리의 문학사가ㆍ미학자인 게오르그 루카치(1885~1971)가 4월 13일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구 고전주의적 미학의 바탕에서 마르크스주의 미학을 거대한 체계로 완성하려 했던 사상가였다.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예술은 삶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태도를 취한다”고 언명하고 있다. 그는 또 “소설은 현대의 문제적 개인(주인공)이 본래의 정신적 고향과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나서는 동경과 모험에 가득찬 자기인식에로의 여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형식”이라고 정의한다. 이 ‘문제적 개인’이야말로 루카치의 기본 개념이다.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을 쓴 것은 1915년이다. 그는 1962년에 추가한 서문에서 1차세계대전의 발발과 젊은이들의 전쟁에 대한 열광을 보고, 거기 대한 거부감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기 본래의 이해를 위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에서 집필을 구상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폭력의 시대에 예술의 해방적 기능을 믿었던 루카치의 미학은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진보적 예술활동, 특히 문학의 바탕을 떠받친 주춧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에 따라 그의 이름은 예전처럼 자주 호명되지 않고 있다. <소설의 이론>도 1985년 국내 번역됐지만 지금은 절판된 상태다. ▒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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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9 중앙일보
[BOOK북카페] 49인의 지성이 진단한 ‘가치의 위기’
배노필 기자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그 별빛이 훤히 길을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소설의 이론』(1920)의 이 유명한 문장에서 게오르그 루카치는 소설의 운명을 끌어낸다. 소설은 ‘신(神)에게 버림 받은 시대의 서사시’라는 것이다. 빛이 없는 시대,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세계, 신에 의지한 초월적 안식처가 사라진 세상에서 겪는 인간의 불안. 그것은 근대의 운명이기도 했다. ━━━━━━━━━━
2007-09-07 부산일보
[최학림의 문화세상] 소설 같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지도 삼아 나아갈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 서두에 썼던 유명한 문구이다. 우리는 근대에, 이 복잡한 '산문의 시대'에 그 별빛과 지도를 잃었다는 것이다. 루카치는 그것을 '총체성의 상실'이라 말했다. 인간이 찢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루카치는 그 찢긴 시대를 돌파하려는, 총체적 전망을 회복하려는 인간의 추구, '고향'을 잃은 고독한 인간의 추구가 소설이라고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언제나 찾는 자인 것이다." 또한 김현은 말했다. "모든 예술 중에서, 소설은 가장 재미있게, 내가 사는 세계는 과연 살 만한 세계인가를 반성케 한다.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 네이버 책>루카치 소설의 이론>네티즌 리뷰 한 권의 소설이 전하는 위력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글쓴이 cognize 님 2007.3.31
한 권의 소설이 전하는 위력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알 수도 없다. 문학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은 논란이 있겠지만 문학을 단순히 소설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이 현실 세계에서 갖는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클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그만큼 많다. 소설 무용론을 주장했던 과거의 조선 시대 선비들도 있었지만 서사 구조가 탄탄한 소설의 매력은 여전하며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장르의 내용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소설이다. 인간이 현실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쾌락 욕구에 대한 대리 만족으로서 소설을 읽는다는 견해를 밝힌 비평가도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소설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력과 꿈을 심어주기도 하고, 비참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소설을 통해 울고 웃었던 많은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다. 1920년에 발간된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소설의 역할과 의미를 짚어낸 고전이다. 문학이론을 다룬 책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형식이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으며 그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하지만 용어 자체가 낯설고 문장의 구성과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우저의 명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근세편을 번역했던 반성완의 85년도 번역본으로 역자의 전문성을 의심할 수는 없지만 역자 스스로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음을 군데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 독일어 원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문학 전공자들이나 철학 전공자들도 반쯤 읽다가 던져버린다는 책의 소개가 무색하다. 문학을 전공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철학적 관점에서 소설을 바라보는 일은 또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며 새로운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지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루카치가 이야기했던 소설 특유의 구체성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우매한 독자로서 시대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확인했다.
삶이란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다 그러하듯 스스로를 넘어서 있는 일체의 초월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상대적인 독자성과 그러한 초월적 구속이 가질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불가피성과 필요불가결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 P. 50
하지만 이렇게 소설과 무관하게 삶에 대해 선언하는 부분들이나 그 삶을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가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예술과 사회는 분리될 수 없지만 역사와 철학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소설은 여전히 제멋대로 혹은 이 모든 것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버텨내고 있다.
서구의 문화 세계는 그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의 불가피성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논쟁적 태도 이외의 방법으로 이들 구조에 마주 서서 대항할 능력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 P. 166
서구 사회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논쟁적 태도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문화적 토대와 학문의 성향이 달라서일까?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는 ‘학계의 금기’를 넘어서는 일도 중요해 보이지만 그들과 다른 우리 소설의 구조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외연과 내용을 확장시킬만한 동력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건과 역량을 갖춘 많은 작가들을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독자로서의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루카치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예술과 삶의 관계는 쉽게 말해질 수 없다. 애증의 관계로 이별할 수 없다면 항상 사이 좋은 연인관계일 수는 없지만 그들의 관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소설을 바라보는 일은 항상 즐거운 일탈일 것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소설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그 모든 이론들을 잊어버리고 술에 취하듯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닐까?
예술은 삶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Trotzdem)의 태도를 취한다. - P. 77 ━━━━━━━━━━ http://blog.naver.com/meang19m/70033597314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드뎌 다 읽다 작성자 : 열정 2008.7.31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과정을 무척 힘들어 한다. 나의 취약점은 '속도'에 있다. 남들 2~3시간이면 읽을 통속적인 소설도 6시간 동안 낑낑대면서 읽는 것이다. 그러니 남들보다 시간을 쪼개서 닥치는 대로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아버지의 영향으로 책 읽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된 것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긴다. 방학 동안에 성취할 목록 중에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꼽았었다. '소설의 이론'은 작년 '소설창작연구'라는 과목을 수강하던 중 사게 됐다.-'소설의 이론'은 그 강의의 주교재였다. 10월 어느날 지하철 8호선 안에서 이 책을 처음으로 펼쳤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제법 두텁고, 어려운 책들은 좀 읽어봤지만 한글인데도 해석조차 안 되는 문구를 접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대번 접한 "초험적"이라는 말부터 해서 이 책은 마치 다른 세계의 언어를 옮겨 놓은 것 같다. 번역가 김경식의 말대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뭔가 '폼 나는' 말 같지만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들이 워낙 많았"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한동안 덮어버렸다. 하지만 그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일터에 자리한 내 책상 책장 한켠에 자리잡은 '소설의 이론'은 늘 내 마음을 무겁게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소설의 이론'이 눈에 뜨일 때마다 든 생각이었다. 올 초 나는 다시 '소설의 이론'에 도전했다. 그러나 진도는 답보 상태였다. 올해는 특히 과제가 많아서 루카치의 책을 차분히 앉아 분석하며 읽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 쪽 읽다가 그치고, 또 한 쪽 읽다가 그치고. 그러다 글의 맥락을 놓쳐 다시 처음으로. 한 학기동안 늘 그런식이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다 읽었다. 방학이 내게 탄력을 준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들기 시작한 것까지 합치면 반년 조금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책 한 권 읽고 이렇게 기뻐할 줄이야...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김경식의 후기를 처음부터 읽었더라면 보다 수월하게 루카치의 이론을 소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뒤늦게 김경식의 설명에 의지해 이 책이 도스토예프스키론을 위한 서론격인 이론서였다는 것을 알게됐다. 또 이 책은 원래 제목이 "소설의 미학"이었으나, <미학과 일반예술학 잡지>의 발행인이자 당시 베를린 대학교 교수인 막스 데수아르(M. Dessoir)의 간접적인 권고에 의해 "소설의 이론"으로 바뀌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사실로 미루어 (김경식에 의하면) 이 책은 '소설'의 '이론'을 목표로 쓴 책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초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이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와 같은 '기능적인' 면을 제시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큰 오산이었던 셈이다.
별들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27p
진정한 행복이란 지금 죽는 것, 그렇게 죽을 수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나는 건강을 되찾고 안드레이는 생활로 복귀한다. 위대한 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관습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다시 아무런 목표도 본질도 없는 삶을 살아간다. 위대한 순간이 보여주었던 길들은 그 순간이 사라지면서 방향을 지시하는 실체성과 실재성을 상실해 버렸다.-179p
아무리 본문의 내용이 어려워도 위와 같은 주옥 같은 문구는 잊혀지지 않는다. 한번은 정독했으니, 다음부터는 천천히 여유를 갖고 분석하며 봐야겠다. ━━━━━━━━━
http://www.cyworld.com/1st_rain/2595922 게오르크 루카치 - 소설의 이론 글쓴이 : 1st_rain 2008.11.22
어쩌다 보니 이미지가 이렇게 앙증맞다만. 이 책을 읽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면서 세상엔 참 빌어먹을 자식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 . 효과적인 단어로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한들 그 쓸데없이 평범하지 않은 문장과 단어들과 비유들은 한없이 책과 사상과 철학과 소설이 멀게만 느껴지게 하는구나. . 늦은 밤 라면을 먹으면서 혹은 티비를 보다가 차 한잔 하면서 찬바람 피해 이불 속에서 맘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이 난 더 좋다고. ━━━━━━━━━━ 2008-10-27 독서신문
사람의 관계를 ‘물화’로 본 비판이론의 선구자 황선생 논술교실 61ㅣ황인술 교수
루카치 1885~1971 ▲ 루카치(Gcorg Lukacs) ⓒ 독서신문
마르크스주의 철학 대가ㆍ문학사가ㆍ미학자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은행가인 유대계 아버지는 자신과 같이 금융에 관련된 일을 하기 원했지만, 루카치의 관심은 사회학, 철학, 미학에 있었고, 특히 미학 연구에 전념했다. 철학은 리케르트, 빈텔반트, 라스크 등으로부터 신칸트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며 헤겔과 마르크스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M.베버에게 사사했으며, 1918년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입당 후 1928년 헝가리 공산당 대회에 제출한 정치 논문인「블룸 테제」(‘블룸’은 루카치의 가명)에서 헝가리는 소비에트공화국으로 전환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민주주의 독재를 중요한 실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루카치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지만 곧 파시즘과 싸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자아비판을 결단해 실행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이론연구에만 몰두했다. 이후 그의 인생은 모스크바 망명, 1944년 귀국, 문화장관, 루마니아로 추방, 1957년 4월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등 많은 굴곡을 겪게 된다. 루카치는 모든 정치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고 미학과 철학에 대해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다 1971년 6월 세상을 뜬다. 그는 “최악의 사회주의라 할지라도 최선의 자본주의보다 항상 더 낫다”(l994)는 믿음을 잃지 끝까지 잃지 않았다. 저서로는『젊은 헤겔』(1948),『이성의 파괴』(1952),『사회적 존재의 존재론』(1957),『윤리학』,『소설의 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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