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13호 내가 어느 때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되었을까 (단3:10~30)
어느 권사님이 건축헌금 100만 원을 입금하셨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제가 잘 아는 권사님입니다. 그분은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그래서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생활연금으로 생활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형편에 100만 원을 헌금하셨다니…. 그것을 모으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충분히 짐작이 가는 터라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너무 적다 싶어 슬그머니 헌금 궤에 두 렙돈을 넣은 여인을 바라보던 예수님의 심정이 이랬을 겁니다. 옥합을 깨트린 여인을 향한 주님의 감정이 저와 같았을 겁니다. 예수님이 이에 감동하사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막14:9)고 말씀하신 것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누군가 그럽디다. 주의 종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라고요. 주의 종에게 기억되는 사람은 한 번이라도 더 기도해준다고요. 바울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1:2~3). 하물며 하나님께 기억되는 자라면 어떻겠습니까?
작년 추계산상집회 때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어느 때 나에게 기억된 바 되었는지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당당히 “알다마다요.”라고 답했습니다.
40년 목회 길,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여곡절(迂餘曲折),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은 목회 인생을 한 마디로 눈 덮인 산야요, 물 없는 사막으로 압축하곤 하지요.
예수를 만나면서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고난과 핍박, 그것은 교단으로 이어졌고, 온갖 매체를 통해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려움이나 좌절 대신 이를 정면 돌파하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전국을 돌며 목이 터져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작시한 곡이 ‘그때 너를 보았노라’입니다. ‘목이 터져라 날 증거할 때 그때 너를 보았노라/ 손발 닳도록 동서로 뛸 때 그때 너를 보았노라/ 내 대신 핍박 환난 당하고 울 때 너를 보았노라.’
300억이라는 거액을 뿌리치고 하나님 말씀을 좇아 올림픽공원으로 들어갔던 저를, 미국에 있는 회원들이 미국을 업고 뛰라며 미국 명예시민권을 가지고 왔을 때, ‘미국을 업어야 성공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업어야 성공합니다’라고 당당히 말한 저를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최루탄으로, 칼로, 총으로 위협을 당했을 때도, 비바람이 몰아쳐 마이크가 나가고 단이 무너졌을 때도, 차가 전복되었을 때도, KGB에 갇혔을 때도, 빈대가 온몸을 물어도 목이 터져라 복음을 전한 저를 보시고 “그래, 그때 너를 보았노라.” 하실 겁니다.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사62:6), 하나님께 기억됨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이 제공하는 산해진미를 이방신에게 제사한 음식인지라 거부했습니다. 포로 신분이란 것을 감안하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이 유심히 보셨고, 기억하셨습니다. 또 다니엘은 다리오 왕 때에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절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지기로 한 칙령이 발효됨을 알고도 행해왔던 것처럼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연히 기억하셨지요. 그래서 그를 사자굴에서 건지셨고, 다리오 왕 때부터 고레스 왕 시대까지 승승장구케 하셨습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화형되는 줄 알면서도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능히 풀무에서 건지실 것이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이를 하나님이 보시고 감동하사 그들을 불에서 건지셨고, 더욱 높이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하나님은 그를 ‘친구’라 부르셨습니다. 그게 그냥 되었을까요? 히브리서 11장 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 세에 얻은 외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기꺼이 순종한 아브라함을 특별히 기억하셨고, 그와 비밀이 없는 친구가 되어주셨으며, 아낌없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고넬료, 그도 하나님께 기억되었습니다. 어떻게 기억되었느냐?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4). 그래서 이방인 최초로 성령을 받는 축복받은 자가 됩니다.
또 빌립의 초청에 예수님께 나아오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놀란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묻자,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라는 공간이 아니라 간사함이 없는 그의 마음을 주목하시고 기억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도 예수님은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의 하인이 중풍으로 누워있다고 하자 주님이 가서 고쳐주리라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 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8:8)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예수님을 감동시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에 남기에 충분한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몇 해 전, 이현구 장로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현구 장로가 인천교회 지을 때 공헌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제 옆에서 수족이 되어주었습니다. 기억하시죠? 살려주세요.” 하나님은 당연히 이현구 장로의 행적을 기억하고 계시죠. 그래서 그를 일으켜주셨습니다.
기도원에서 오치환 장로가 사고로 소천했을 때도, “하나님, 오치환 장로에게 잘해주세요. 그가 기도원에서 얼마나 충성되게 일했는지 아시죠?”라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까,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는 누구처럼 헌금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기억하실까?’, ‘내가 주를 위해 하는 일은 너무 작은 것인데 기억해주실까?’ 생각하십니까?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 매두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참 별 걸 다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행한 작은 선행, 내가 한 작은 봉사, 내가 한 적디적은 헌물을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추우나 더우나 새벽에 나와 차량 안내를 한 당신, 주일학교에서 아이들 코 닦아가며 예수님을 가르친 당신, 수련회에 와서 김밥을 말고, 설거지를 한 당신, 적금을 깨서 건축헌금을 한 당신, 이도 저도 못하지만 교회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는 당신을 하나님은 다 보고 기억에 두십니다.
그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이 벌떡 일어나 손을 내미시며, ‘내가 너를 안다. 그때 너를 보았다.’ 하시면 얼마나 기쁠까요? 우리가 그날을 기대하며 좁은 길을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주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하시면요? 실컷 신앙생활한다고 했는데 ‘도무지 모른다’ 그러시면? 아찔합니다. 더욱이는 가룟 유다나 사울처럼 기억하기조차 꺼리시며,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26:24) 하시면 어찌 되겠습니까? “너희의 악이 기억을 일으키며 너희의 건과가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겔21:24).
다윗이 마하나임에서 피난하고 있을 때, 다윗군에게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제공한 바실래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그의 자녀를 데려다 은혜를 갚았지만(왕상2:7), 압살롬과 아브넬을 죽인 요압은 안 좋게 기억되어 솔로몬에게 죽이라고 유언했습니다. 하나님도 선악 간의 모든 일을 다 기억하시고, 마침내는 회계(會計)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삶이, 우리 신앙생활이 어떠해야 할까요? 할렐루야!
주님이 기억하는 삶을 살아보자
하나님께 기억되는 자는 만사 형통한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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