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오해하거나 곡해하는 이유
마22:29을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誤解하였도다”
예수님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면 성경을 오해하거나 곡해할 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성경을 해석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감정”으로 해석하면 반드시 성경을 곡해하게 된다. 물론 탐욕이 개입될 때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지만 그래도 “문화와 감정”이 개입될 때보다는 덜하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감정에 지배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사도 신학자도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도 예외가 아니다.
왕상19:14을 보면 엘리야가 하나님께 “오직 나 혼자만 남았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 혼자가 아니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가 7.000명이나 남아 있다고 하셨다. 엘리야는 왕후 이사벨에 대한 감정 때문에 현실을 곡해하고 있었다.
바울은 그런 곡해를 피하기 위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날마다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틀어진 감정이나 왜곡된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행10:10~48을 보면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 고넬료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고넬료와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성령을 받았다. 이럼으로써 그들은 이방인으로 세계에서 최초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되었다. 이 사건은 베드로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문화와 감정”을 죽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건이다. 행10:12~14과 행10:28~29을 보자.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