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죄는 교만을 통해 들어옵니다! 우리나라 말에 “시건방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비위에 거슬리게 잘난 체하며 지나치게 주제넘다”라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교만, 거만, 오만”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교만(驕慢)은 “잘난체 하는 태도로 겸손함이 없이 건방짐”이고, 거만(倨慢)은 “잘난 체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건방진 태도”이며, 오만(傲慢)은 “태도나 행동 따위가 방자하고 건방짐”입니다.
성경에서 “교만”은 “거만”과 교호적(交互的)으로 사용되면서 기본형 “가아”(האָ), 즉 “올라가다”, “승리하다”, “장엄하다”에서 “오만”, “탁월”, “화려”, “교만”, “부풀음” 등의 뜻이며, “오만”은 “솟아오르다”, “오만하게 되다”, “심히 높이 올라가다”란 의미로 사용됩니다.
잠언 기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고 싫어하시는 것 일곱 가지를 기술한 바 있습니다(잠6:16-19). 그 내용을 살펴보면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입니다.
잠언 기자는 맨 처음으로 “교만한 눈”을 기록하고 있는데, 사실 “교만한 눈”(에나임 라모트)의 문자적 의미는 “높은 눈”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왜 일곱 가지 악덕 중 제일 먼저 “교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교만”을 설명하면서 “눈”을 비유로 들었는가? 그것은 교만이 모든 죄의 근본이 되고, 눈은 마음의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는 교만을 통해 들어오고 교만해지면 가장 먼저 눈이 반응하게 됩니다. 교만한 눈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있습니다.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잠30:13).
이 구절을 NIV는 “그 눈이 지극히 교만하고 남을 쳐다보는 눈초리가 아주 경멸적인 사람들이 있는 세대이니라”고 번역했습니다.
높아진 눈을 가진 자는 주변 사람을 아래로 내려 깔아 볼뿐만 아니라 이유 없이 경멸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교만한 자”에 대한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깁니다. 잠언 기자는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잠1:22)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거만한 자”는 히브리어 “레침(ולצים)이란 단어로 “조롱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사 28:14절을 보면 “이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오만(傲慢)한 자”를 개역한글 성경은 “경만(輕慢)한 자”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게으르고 가벼운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비웃음의 사람들”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며 조롱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사28:9-10)라고 외쳐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비웃으며 스스로 진리의 길을 떠날 뿐 아니라 신자의 영적, 도덕적 경건한 생활을 조롱하고 멸시하며 이탈시키기를 즐겨합니다. 이런 자가 주요한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로 말미암은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읍을 요란케 합니다. 잠언 기자는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잠29:8)고 했습니다.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를 직역하면, “조롱하는 자는 도시를 불 위에 놓는다.”가 됩니다. 여기 “조롱하는 자”란 백성의 도덕적 의무를 비웃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부여하는 의무를 비방하고 동료 시민들의 저급한 감정을 부추겨 중앙 정부를 대항하여 정치적, 종교적 쿠데타를 일으키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교만한 자는 신자들의 윤리적 삶을 비웃고, 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거룩한 공동체에서 수시로 다툼이나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얻고자 합니다.
성경은 교만한 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욥21:22),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욥40:11-12),
시편 기자도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시36:11),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시101:5)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사2:11),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사2:17)라고 했으며,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날 곧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렘50:31)고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만한 자의 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려 들 정도로 방자히 굴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선동하고 결국은 주변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하지만 필경(畢竟) 하나님은 그런 교만한 자들의 눈을 낮추실 게 분명합니다(시1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