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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AOPbuEUM7lk?si=V34M2PnWDT_Xlfmz
들은 것에 유념하라 2:1~4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인자가 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신 이유 2:5~9
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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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우리는 들은 것에 유념해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성령으로 증언해 주신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보응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되어 죽음의 고난을 받으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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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것에 유념하라 2:1~4
진리의 복음을 견고히 붙들지 않으면 작은 유혹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들은 것’(1절),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욱 유념해야 합니다. 진리의 복음을 끝까지 붙잡지 않으면 폭풍을 만나 표류하는 선박처럼 흘러 떠내려가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사가 전해 준 ‘율법’을 준행하지 못했을 때도 형벌을 받았는데, 천사보다 우월하신 예수님이 주신 ‘큰 구원의 복음’을 떠난다면 더 큰 징벌이 임할 것입니다. 율법과 달리 복음은 표적과 기적과 능력과 성령이 나누어 주신 은사가 나타난 참진리의 계시입니다. 그러니 결코 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진리의 복음을 경청하고 굳게 붙드는 사람이 생명과 구원을 얻습니다.
더 깊은 묵상
● 예수님의 복음과 천사가 전해 준 율법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잘못된 교훈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게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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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신 이유 2:5~9
미래에 임할 새로운 세상의 통치자는 ‘천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5절).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으로 이를 증명합니다. 그는 시편의 ‘사람’과 ‘인자’라는 용어를 다니엘서의 ‘인자 같은 이’ 곧 예수님으로 해석합니다(시 8:4; 단 7:13). 인자는 잠시 천사보다 낮은 지위로 계셨으나, 이후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복종시키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습니다(시 8:5~6). 즉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되어 사람의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만물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빌 2:6~11). 인류 구원을 위해 낮아지시고 대속물이 되신 하나님 아들 예수님은 영원히 경배를 받으실 분입니다.
더 깊은 묵상
● 예수님이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나를 위해 영광스러운 지위를 버리시고 생명까지 내주신 예수님을 어떻게 섬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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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직결되는 말씀
“말씀이 들리십니까?” 이 질문처럼 중요한 질문이 또 있을까요? 말씀이 들린 적이 없다면, 어떻게 말씀을 간직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들린다는 것은 큰 복이고 은혜입니다. 우리가 듣는 말씀은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아들을 통해 주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확증하신 복음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라고 명령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으로부터 흘러 떠내려간다고 경고했습니다. 20세기 성서학자인 F. F. 브루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의 진리와 교훈을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며 생명과 죽음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따라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 가르침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들로부터 흘러 떠내려가 그것들을 잃어버리는 일에 대한 경고는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들은 말씀에 더욱 유념하는 삶입니다. 이 세상의 거센 물살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말씀을 유념해 들으며,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스럽고 행복하고 기쁜 삶을 누리십시오.
설교 듣는 법 / 김형익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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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장 9절
하나님 아들이 천사보다 못한 인간으로 오신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죽임을 당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들을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렸고, 죄의 사슬로부터 그분의 백성을 해방했습니다. 불신자에게는 예수님의 죽음이 무가치해 보이지만, 성도에게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찬양과 감사의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는 완전한 사랑이시다. - 찰스 프라이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신앙을 흔드는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진리의 말씀에 더욱 견고히 서게 하소서. 저희 죄를 위해 죽음의 고난을 받으시고 놀라운 구원을 이루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주님 음성을 항상 듣고, 그 뜻에 온전히 복종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2 만유의 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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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복음을 듣는 자들은 잘못된 가르침과 세상의 유혹에서 굳건하게 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 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하루도 성령의 인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성도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과 고난을 감당하시고 영광과 존귀의 왕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계십니까?
영광과 존귀의 왕관을 쓰신 예수님께서 말할 수 없는 수치와 곤욕을 치르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로 보였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더 핑크 목사님의 권면으로 묵상을 마치려고 합니다.
“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이여! 밤에 나가서 밤하늘의 그 놀라운 정경을 보며 여러분 자신의 무익함을 생각해 보라.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엄위와 거룩을 명상하라.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지극히 죄인 됨을 생각하라.
그리고 무릎을 끓으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영광 중에 있는 한 ‘사람’이 서 계신 것을 기억하라.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를 측정하는 분임을 기억하라.
놀랍고 주권적인 은혜로 여러분은 그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정해졌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그의 기업’을 물려받을 후사들임을 기억하라.
주께서 모든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자기 앞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 주는 놀랍고 복된 전망을 포착할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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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a절 :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복음에 최고의 관심을 두고, 복음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수신자 중 일부는 박해 때문에 기독교를 떠나 유대교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복음을 버리고 율법을 선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떠나면 그 존재와 삶이 마치 닻이 끊어진 배처럼 죄와 형벌의 바다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사들을 통해 전해진 율법을 어겨도 형벌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전해 주신 구원의 말씀을 거역하면 더 큰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복음에 더욱 유념하라고, 복음을 더욱 굳게 붙들라고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우리를 복음에서 끊어 내려 하는 힘, 복음을 버리게 하려는 사상은 무엇입니까? 시대가 복잡하고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복음에 집중합시다.
복음의 말씀을 더욱 굳게 붙잡기 원한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
사탄은 끊임없이 말씀에서 멀어지도록 한다.
그러나 더욱 굳게 서야만 한다.
사탄을 물리칠 힘도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길 소망한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다 증인이다.
나도 증인이다.
말씀을 믿은 증인이다.
구원받음의 증인이다.
증인의 사명은 바르게 증언하는 것이다.
복음의 증인답게 살아야 한다.
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듣겠는가?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이루시지만 전할 책임은 믿는 자들에게 주셨다.
그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길 소원한다.
4절 :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때로는 능력을 나타내시고 때로는 성령의 은사를 나눠 주심으로 우리를 지지하고 지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지원을 믿고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합시다.
5-9절 :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우리를 영광스러운 '만물의 통치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말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습니다(시 8:4-6).
그런데 우리가 보는 사람은 여전히 죄와 죽음의 세계에서 휘둘리기만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가 되려고 잠시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셔서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고,
그 후 우리를 이끌기 위해 부활하여 승천하심으로 영광과 존귀를 얻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낮추셨다가 높이심으로써 우리의 영광스러운 운명을 확보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아지신 예수님!
죽음의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
그러나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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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도 ~ 증언하셨습니다(4절)’
재판장에서 증언은 피고와 원고, 그리고 증인의 몫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재판장이나 변호사, 검사가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경우도 없고 그 어떤 요구도 없습니다.
그들은 증인으로부터 바른 증언을 이끌어내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주고 결단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견디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우주 만물의 심판주로 하늘의 보좌에 계시면서도 친히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죄를 짐 지우시고 그 육신 가운데 심판하심으로 친히 오랫동안 스스로 증언해오신 그 사랑과 구원의 언약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구원을 준비하고 스스로 이루시고 또한 그에 대해 확증하시기까지 하시는 그분이 우리의 참 좋으신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형상을 본받아 세상 가운데 그의 맏아들로 서고,
증인과 종으로 잃어버린 양들을 향해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권능으로 나아가며
결코 그분의 구원을 값싸게 여기지 않고 그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기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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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되신 것은 우리의 죄짐을 지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기 위하심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2:9)
그러나 십자가 고난 받으신 후에는 영광의 왕관을 쓰시고 천사보다 탁월하게 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유일하신 주권자가 되신 것입니다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딤전6:15)
그러므로 우리가 왕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6:13~14)
천사를 통해 하신 말씀을 불순종하던 자들도 보응을 받았는데, 하물며 천사보다 탁월하신 아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불순종하면 얼마나 그 보응이 크겠습니까?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히2:2~3)
그러므로 주와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둠으로 견고하게 되어 세상 더러운 홍수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기 원합니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눅9:44)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2:1)
그러나 누구든지 주와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면 흘러 떠내려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 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사17:9~10)
그러나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면 살 줄 믿습니다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잠4:4)
이렇게 우리가 주의 말씀을 마음 두면 주께서도 우리 마음에 기쁨을 두시고 평안히 눕고 안전하게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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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 예수 그리스도가 잠시 천사보다 낮아진 이유를 밝힌 것으로,
저자는 이를 위해 예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곧 낮아지심은 천사들보다 낮아진 것이고,
높아지심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으로, 이는 오르지 죽음을 맛보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난을 받기 위해 천사보다 낮아진 것이고
바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희생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치욕이기도 합니다.
천사를 부리시는 분이 사람처럼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 계획은 그렇게 완성됩니다.
그 그림을 보면 볼수록, 그 청사진을 살펴보면 볼수록 우리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화목 하시고자 내미신 자비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 특혜를 우리는 결코 져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마냥 핑크빛 환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탄탄대로 행복한 여행길은 아닙니다.
그것은 좁은 길입니다. 일단 자격은 주어졌지만 이루어야 할 과제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더 나아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그는 구원은 날마다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야 할 것이며 미래에 완성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고질병인 옛 자아를 처리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한 자아는 현실적으로 죽일 수 없습니다. 단칼에 끝낼 수 있다면 바울이 ‘날마다 나는 죽노라’라는 절규를 했을 리 없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포기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친구로 둔 본질상 죄인이 바로 우리라 그렇습니다.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주님의 희생이 아무런 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육신의 모든 욕망을 통제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 통제되지 않는 본능은 악한 세력의 하수인 일뿐입니다. 다스려져야 할 것입니다. 절제되지 않는 욕심은 사망의 지름길입니다. 끊어져야 할 것입니다. 정화되지 않는 아픔은 절망의 늪입니다. 승화돼야 할 것입니다.
구원에 대하여 우리는 낙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이 완성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얻은 구원인데요. 그것을 놓치면 가장 어리석고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기꺼이 이루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 어떠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 계속해서 유념하여 복음을 붙들어야 합니다(1~2절).
구원의 복음을 들은 자들은 그 복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더욱 유념하여 배운 대로 행해야 진리에서 멀어지지 않습니다(1절). ‘유념하다’는 ‘주의를 기울이다, 주목하다, 전념하다’는 뜻으로 유념하지 않으면 배가 키가 망가져 항구에 다다르지 못하고 표류하는 것처럼 구원의 항구에 이르지 못할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것들 역시 진리입니다. 그것을 따라 살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벌을 받게 될 것인데(2절), 하물며 천사들보다 우월하신 아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을 소홀히 여긴다면 더한 심판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은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듣고 믿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은 큰 구원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은 자들은 그 복음을 계속해서 붙들어 구원의 굳게 지켜내야 합니다.
복음을 반복해서 듣고 그 말씀을 유념할 때, 그것이 나에게는 큰 은혜가 되며, 믿음은 계속해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확신하여 지켜내는 삶을 위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부지런히 연구하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하도록 힘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성령으로 확신하여 구원을 지켜내야 합니다(3~4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위대한 구원이 중요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면, 이 역시 벌을 받게 되는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에 대해서 처음 말씀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며,
또한 그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이것이 진실이라고 우리에게 증명해(3절)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기적과 큰 표적과 많은 놀라운 능력을 통해, 그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 성령의 은사를 나눠 주심으로 증언해 주셨습니다(4절).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 은사를 통해서 아들이 전해 준 복음을 받아들이고 확신하도록 하셨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이루어진 것(엡 2:8)입니다.
아울러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구원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고 죄 사함을 얻은 자에게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여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날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해 주시며,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이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을 증거하셨을 때, 그 여인은 마을에 들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수가 성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셔다가 말씀을 듣고 나서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요 4:42)고 말하였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이 분명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며, 내 자신의 마음속에서 확증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원을 확신하여 지켜내는 삶을 위해 구원의 복음을 듣고 확증한 것을 지켜 행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9월1일 인천대공원
➲ 믿음으로 연합하여 부활을 소망해야 합니다(5~9절).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앞으로 맞이할 새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5절).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보내시고 잠시 동안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며, 죽음의 고난을 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한 아들을 하나님은 죽음에서 살리셨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복종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9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 자신을 위한 화목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모든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을 이루게 되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내 자신도 죄에 대해 죽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나 역시도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왕의 왕이 되셔서 온 세상을 통치하실 마지막 날에, 내 자신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온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내 자신이 얻어 누리고 있는 구원이 실패할 수 없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패하지 않으시고,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확신하여 지켜내는 삶을 위해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된 자답게 이제는 내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다시 살리신 분을 위해 사는 인생이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완전한 부활을 소망하는 인생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큰 구원을 잊고 복음을 흘려듣지 않도록
말씀 안에 매여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통치 아래서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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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천사보다 잠간 낮게 되신 이유
1.떠 내려 갈까 염려하노라(1-4)
1장에서 예수님이 천사보다 뛰어나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천사를 통해 주어진 말씀을 등한시해도 벌을 받는데,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면 더 큰 형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말씀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더욱 굳게 붙들어야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 말씀에 중심을 두지 않고 있으면 얼마든지 영적 혼란과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1절-4절, 아들을 통하여 주시는 특별한 구원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기억하고 살아야만 한다고 히브리서 저자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5절-9절, 하나님의 아들이 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셨다
창조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고 죽으심으로써,
잠시 동안 천사보다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낮아지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겸손한 선택이시며 인류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2.잠간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시고(5-10)
예수님이 천사와 모든 만물보다 더 뛰어나신 분인데 왜 그가 천사보다 잠간 못하게 되었는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시8:4-6을 인용합니다. 본래 시8편은 인간이 존귀한 존재인 것을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생각하시고 권고하실 만큼 존귀한 존재이며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였습니다.
이와 같이 존귀하고 영광스러우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잠간 낮아져서 천사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맛보기 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 무언가 이유가 있으니 그랬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우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존귀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 때문에 낮아지신 것입니다.
이렇게 낮아지심으로 하나님은 그는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시켜 주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안일하게 성공을 하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주실 영광을 바라보고
오늘 내가 잠시 져야 십자가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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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영광과 존귀와 통치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오직 한 사람,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광과 존귀를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잠시 동안 고난과 죽음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의 몸,
천사보다 낮은 모습으로 성육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할 때만 영광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러므로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원의 복음을 버리고
다시 천사가 전한 율법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히 2:5-9).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불순종하여 영광과 존귀를 잃어버리고, 통치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다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씌우시기 위해,
고난과 사망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셨지만,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만물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이 아닌,
오직 예수 십자가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할 때만, 구원과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제목
1. 주님이 주신 말씀에 굳게 붙들여 살게 하옵소서.
2. 오늘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잘 감당케 하옵소서.
더 깊은 묵상을 위하여
1. 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는가?
2. 예수님이 천사보다 잠간 낮아지신 이유는?
“구원의 은혜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윤길중 목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에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면 진리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이탈하면 생명을 공급받지 못할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훼방하며 진리를 가로막습니다.
삶의 불행의 원인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며 내 길의 빛이십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인하여 다시 회복되고 치유되고 소망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천사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어겼을 때 징벌을 받았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복음을 거절한다면 얼마나 큰 심판을 받을 것인지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나 자신을 변화하게 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치료하고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복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숙시켜 줍니다.
우리 모두 말씀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절제하는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 심판하고 다스립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주가 되어 만물이 다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주 넘어 계신 초월적인 분이 아니라 이 땅에서 고난을 받고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난을 다 아시고 공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고민과 아픔을 주님께 나아가 털어 놓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모든 어려움과 고통과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사람에 의지하면 상처를 받게 되고 실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베푸시는 예수님에게 나아가 그 분만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타적인 사랑의 극치인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와 비교할 수 없는 전능자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오늘 하루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 의지하며 따라가며 동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종으로 부리시던 천사보다도 못하게
스스로 비천에 처하신 예수님 그 주님의 희생과 대속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길에서 이탈하게 하는 유혹의 덫을 분별하게 하시고
욕망의 지뢰를 밟지 않게 하시며 오직 십자가의 길로만 걷게 하여 주옵소서!
그 길이 가장 안전하며 가장 행복한 길인 줄 믿습니다.
구원의 주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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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배운대로 행하라(1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의 세계는 참으로 큰 선물입니다. 하지만 이 선물을 받았다고 해도 그 선물을 가벼이 여기고 받은 자들이 더욱 조심하여 행하지 않으면 그들은 결국 진리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큰 구원의 믿음을 지키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대로 더욱 더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신것은 그들이 첫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계 2:1-5)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큰 복음의 은혜를 받고 그것을 가벼이 여긴다는 것은 우리는 진리에서 멀어진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영적 삶에 민감하여 배운 말씀대로 행하는 실천을 통하여 첫 사랑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말씀을 배운대로 행하기를 힘쓰고 있는가?
2.은혜를 등한시 할 때 보응을 받습니다.(2-4절)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전한 것 역시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전하시고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증거한 복음을 등한히 여기는 자가 무사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등한히 여긴다는 의미는 완악한 마음으로 가볍게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은혜를 가벼이 여기고 무시하는 행동을 말하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면 갈 수록 그분으로 부터 주어진 구원의 참 깊이와 은혜를 깨닫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까지 깨어 근신하며 순종하는 참 경건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은혜를 등한시 하는 교만에 빠져 있지 않은가
3.주님의 소원(5-10절)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잠깐 사망의 자리로 내리셨지만 곧 그는 다시 존귀의 관을 쓰시고 회복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천국의 자리를 떠나 인간이 되셨고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을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 가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그를 믿는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하께 누리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10절) 그분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완전한 구원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의 소원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하여 구원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더욱 더 힘쓰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구원의 예수님을 전하기에 힘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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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강하게 붙잡아라>
본문/ 히브리서 2:1-9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알게 된 예수님을 강하게 붙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1.유념하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앎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알 되 실제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알았어도 그 알게된 예수님을 더욱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강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여 우리가 흘러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1절) 앞에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말하였는데 그것을 안다면 이제 그것에 '더욱 유념'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그것을 처음 배웠으면 그것으로 멈추지 말고 더욱더 철저히 암기하고 유사한 문제를 풀어 보아야 합니다.
그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았으면 더욱더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서 더욱더 깊이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욱더 '위대한 지식'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일에 잠시 게을리 하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 자신이 그 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흘러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들은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그것을 들은 사도들이 말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로 증언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등한시 한다는 것은 큰 죄가 됩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3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을 등한히 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토록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는 일에 등한히 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더 알아 가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너무 모른다는 것을 새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더욱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힘을 다하여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유념하고 있었습니까? 더욱더 깊이 유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더욱더 깊이 아십시오.
2. 가볍게 여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아는 일에 너무 무지합니다. 게으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신앙인에게서도 그러한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세상의 것(작은 구원)을 위해서는 그렇게 힘을 다하여 노력하면서도 정작 그들을 구원하는 유일한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는 힘을 쏟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직도 예수님을 아는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보지 않으면 예수님의 가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8절) 예수님은 만물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렇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분께 복종하지 않아도 누가 하나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고 그 분께 복종하는 것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본 예수는 십자가에 죽은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9절) 예수님은 사람들 위에 아주 뛰어난 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나폴레옹처럼 세상을 다스리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분에 대해 그 겉모양을 보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십자가는 사실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죄를 대신 지기 위하여 죽으심입니다. 곧 사람들을 위하여 그렇게 낮아지셨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 예수님께서 낮은 분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볍게 여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깊이 알지 못하고 있고 그에 편승하여 신앙인이라는 사람들 조차도 예수님을 깊이 알지 못하고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을 가벼운 어떤 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예수님의 그 모습을 가지고 가벼이 여기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일을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도 그냥 삽니다. 그렇다보니 신앙인들도 그 속에서 살면서 마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살면서도 그리스도와 동행하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 땅의 80년은 매우 짧습니다. 크신 예수님을 다 알기에는 참으로 짧습니다. 그러기에 하루하루를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더욱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매일 예수님의 손을 강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날마다 더욱더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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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것에 유념하라>
히브리서 2:1-9
우리는 히브리서 1장에서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 예수라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이것은 들을 때만 반짝하고 지나칠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 이야기는 영원토록 가장 소중한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1.들은 것에 유념
예수 그 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유념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여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1절) 그렇습니다. 예수 그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고백하며 예수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크고 놀라운 그 진리를 들었으면 그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 놀라운 사실을 어찌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유념하지 않으면 세상의 조류에 따라 흘러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놀라운 진리를 놓치고 세상의 조류에 따라 흘러가서 세상 일에 유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조류에 흘러가는 우리가 아니라 그 구원의 진리에 유념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헤엄쳐야 합니다. 조류에 흘러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헤엄치는 것입니다. 조류에 몸을 맡기고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헤엄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가벼이 여기면 큰 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3절) 그렇습니다. 이 진리가 크기 때문에 그것을 등한히 여기면 더 큰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은 진리가 크기 때문에 그것을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등한히 하면 그것은 더욱더 큰 죄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예수가 그리스도이다)는 진리를 유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이름 하나가 가슴 깊이 느껴지고 고백되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 이름 하나만 제대로 간직하고 있어도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 놀라운 이름이 우리의 가슴에 있도록 유념해야 합니다.
2.그리스도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등한히 여기면 왜 큰 심판이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 분이 하신 놀라운 일을 생각하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로 이 세상에 사신 그 분은 누구십니까? 그 분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곧 그리스도로 오시기 위해 예수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그 분은 만물에 복종하는 분이 되셨습니다. 만물의 자연법칙에 복종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통치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로마 황제의 통치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사람들의 관습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그 분. 만물보다 뛰어나신 그 분이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 어찌 놀라운 사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분은 또한 지극히 낮은 자가 되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위함입니까?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라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깨달았다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그것을 가벼이 여기고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멸시가 되겠는지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 놀라운 일을 하셨는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그것을 가벼이 여기고 지나친다면, 유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멸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받으시고 죽기까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그 분이 인간이 되셔서 그 모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믿는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있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구원을 등한시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고난에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이름을 부르면 가슴에 무엇이 느껴집니까? 이 이름을 유념하십시오. 이 이름이 우리의 가슴안에서 뜨거움이 되게 하십시오.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이름이 우리의 가슴에서 뜨거운 이름이 되기를 말입니다. 이 이름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십시오. 그것이 이 구원에 유념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에 유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깨닫고 그 이름을 전하는 일에 우리의 삶이 드려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신 뜻과 놀라운 구원을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천사보다 우월하게 창조된 인간이
타락함으로 천사보다 낮은 지위로 추락하였으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인간을 위해 희생하셨으니
그 은혜로 말미암아 성도는 다시 존귀한 신분을 갖고 그 영광을 회복하였나이다.
성도에게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구원의 은총을 들은 것에 유념하여 간절히 삼가고 지키기 원하여서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영광스런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그 큰 사랑,
그 큰 구원을 기록한 히브리서를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즐겁고 기쁩니다.
믿는 내게 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큰 구원을 유념하여 지키고 살피는 일에
아버지의 능력으로 그 뜻을 따라 보혜사 성령으로 나눠주신 것을 삼가 힘써 지키는 삶을 살기 원하옵니다.
육체로 살아가는 시간에 쫓겨 예수님이 몸소 행하신 큰 구원을 소홀히 대하거나
경흘히 여기거나 등한히 여기지 않는 삶을 살기 원하옵니다
복음은 신실한 증인들을 통해 전해지는 법칙임에.
나는 신실한 증인의 삶을 살아가며 복음에 더욱 유념하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항상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친히 몸소 이루신 그 큰 구원을 마음에 깊이 새겨 놓고
등한히 여기려는 일상의 생각과 마음에서 재빨리 벗어나 구원의 복음에 붙들려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구원의 반석 위에
오늘도 믿음으로 굳게 서서
그 은혜 합당하게 감사와 영광 올려 드리는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곳곳에 주님의 폭탄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사랑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크고 깊고
넓으신 뜻 안에서 날마다 인생의 길기를 새롭게 써 가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