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컴이 좀 말썽입니다. 이제 글을 조금 쓸 수 있군요
반도의 지명과 대륙의 지명은 짱퉁입니다.
또 비슷한 구도로 지리가 배열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럼으로 본인의 관점은 대륙조선의 확실한 증거가 되려면
반도조선의 구도에서 설명되어 질 수 없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두환 칼럼" [[스크랩] 유럽인의 동양에 대한 인식의 틀에서 본 조선과 첫 인상 (2)]의 일부 글 중에서 "진강(晉江)"은 없다고 하였지만 그렇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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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Gebirgskette, welche sich an der Ostseite von Kooraï hinziecht, giebt mehreren Flüssen ihren Ursprung, unter welchen wir den Han-kiang der sich eine Tagreise von der Hauptstadt in die gelbe See, und den Tsin-kiang, der sich bei Fusankai in den Kanal von Kooraï ergiesst, anführen wollen.3)
[조선의 동쪽에 이어지는 산맥에서 몇 줄기의 강이 뻗어 나오며, 여기에는 수도에서 하루 정도 거리인 황해로 흘러 들어가는 한강(漢江)과, 부산개 즉 부산포에서 대한해협으로 흘러 들어가는 진강(晉江)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두 개의 강, 즉 한강과 진강을 언급하면서 그 강이 흐르는 방향은 빠져있다. 한강은 서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간다는 것에는 한반도의 상황에서 어긋나지 않는다고 볼지라도, 그 다음의 내용에서 부산포에서 바다, 대한해협으로 들어가는 진강(Tsin-kiang)은 없으며, 단지 낙동강(洛東江)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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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위키피디아"의 "진주"에 관한 글입니다.
한국 "위키피디아"의 아쉬운 점은 문헌적 출처는 나와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다음글도 그렇나 경우이군요.
이 땅 반도의 문화적 풍토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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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의 출처는 "http://ko.wikipedia.org/wiki/%EC%A7%84%EC%A3%BC%EC%8B%9C"입니다.
두번째 세번째 지도의 출처만 "URL"이 조금 다름니다.
진주시

부산시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ko/f/f8/Bs_map.gif
대한해협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6/Korea_Strait.png
청동기 시대 유물로 보아 이 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기가야시대에는 변진의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었으며, 대가야 시대에 자타(子他)또는 자탄(子呑)이었다.[1] 나중에 일시 백제의 영토가 되어 거타성(居陀城)[2]이 되었는데 삼국 통일 후인 문무왕때 편입된 후 이 지역을 치소로 거타주(居陀州)가 설치되었고,이후 신무왕 5년에는 청주(菁州), 경덕왕 16년에는 강주(康州)로 개칭되었다가, 혜공왕때는 다시 청주(菁州)로 개칭하였다.
고려 시대 초기에는 강주(菁州)로 환원되었으며, 성종 2년(983년)에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진주를 진강(晉江)·청주(菁州)·진산(晉山)이라고도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제1차 진주성 전투를 통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거두게 되며, 이듬해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7만의 민관이 전몰하며, 왜군에 함락되기도 하였다.
1896년 조선 고종 33년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진주는 경상남도에 속해지고 도청소재지가 되어 진주군에는 관찰사가 상주하였으며, 경남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1917년 6월에는 도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여 진주군 진주면이 되었다.
1925년 4월 1일 경상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되었으며, 1931년 4월 1일 진주면이 진주읍으로 승격하였다.[3] 1939년에는 진주읍이 진주부로 승격되어, 시장에 해당하는 부윤을 두었고,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함께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는 진주시로 개칭되어 시장(市長)을 두게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도농복합형태의 시설치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주시와 진양군을 각각 폐지하고 통합진주시를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4][5]
첫댓글 "대륙조선(大陸朝鮮)의 확실한 증거가 되려면 반도조선(半島朝鮮)의 구도에서 설명되어 질 수 없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박자우 선생님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이른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와 같은 증거들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한마디 추가하면, 가급적 많은 증거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진주의 지형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남해지역에서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설명될 것 같구요, 특히 그 아래로 통영과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두개의 대교를 넘어서면 바로 거제도가 됩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거제에서 두다리를 건너면 바로 통영이되고 남해의 섬군도에서 바로 밖으로 빠져나오면 바로 진주가 된다는 것이죠...내륙으로 오기위해서는 거기를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6.26때는 해당부근에 포로(북한군 15만, 중공군 2만/ 교환된 포로의 숫자 한국-유엔군; 684명, 북조선-중공군: 6670명) 수용소가 있었구요... 남해한 지역은 분명히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세력이 집단 이주를 한 흔적은 없는지요...?
지명(地名)의 속성상, 조선(朝鮮)이 대륙(大陸)에 있었든 반도(半島)에 있었든 어디에 있었든 간에... 지명(地名)은 시대별로 그 필요에 따라 변천(變遷)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지명(地名)을 통해서 그 위치를 비정할 경우에는 세밀하고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요한 지명(地名)들에는 반드시 그에 맞는 전고(典故)가 있어야 그 지역의 역사(歷史)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죠?... 아마도..?
세밀한 다각적 분석을 위해서 사료를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1) 태조 1년 임신(1392,홍무 25)/ 12월16일 (임술)/ 좌시중 조준이 전문을 올려 평양의 식읍과 도통사의 관직을 사양하다
여러 '왕씨(왕서방)'를 강화도(江華島)·거제도(巨濟島)에 안치(安置)하고는 관에서 미곡(米穀)을 급여하게 하였으니, 한(漢)나라·위(魏)나라 이후로 혁명(革命)한 군주로서는 미치지 못한 바입니다.
이렇게 보면, 북조선군과 중공군을 해당지역으로 몰아 넣은 이유가 나오는 군요... 포로 교환으로 다시 재북송되지 않은 엄청난 수의 포로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특히 1만명이 넘는 엄청난 대병인 중공군들은...
이렇게 보면 서서히 '''6.25 전쟁의 목적'''이 나오는 것이죠...
2) 태조 3년 갑술(1394,홍무 27)/ 1월17일 (정사)/ 왕씨를 거제도로 이배시키고, 왕화·왕거를 안동옥에 가두다.
순군 진무(巡軍鎭撫) 김영화(金永和)와 천호(千戶) '''유양(柳楊)''' 등을 보내어 왕씨(王氏)를 거제도(巨濟島)로 옮기게 하고, 또 대장군 심효생(沈孝生)을 보내어 왕화(王和)와 왕거(王琚)를 안동옥(安東獄)에 가두게 하였다.
【원전】 1 집 53 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역사-전사(前史) / *변란(變亂)
명국의 태조 주원장 일데기를 지나인들이 만든 것을 보면 거지같은 어려운 삶속에서 차자 발전하여 왕이 된 이야기다 주 무대로는 양즈강에서 전투하면서 왕국을 세운 이야기로 원나라군을 무리치기 위하여 양즈강 북쪽으로 잠간 진출 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만약 조선의 이성계가 머리숙이고 들어온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얼마나 큰 사건인가 대대적으로 자랑을 했을 것을 일언반구 조선과 이성계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그러무로 왜놈의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것에 타당성을 부여 할여고 역사조작 한것이 사실이니
위화도는 양즈강으로 거기서 회군하여 조선왕조 세우고 명에 머리숙인것은 왜놈이 식민지백성 타당성을 꾸민 이야기다
이제는 한국고전번역원 사이트 자체가 웹에서 오픈이 안되네요... 이럴 수가 있나요?...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자, 최후의 방법들을 쓰는 것일까요?... 이런 경우가 다 있나요? 어제오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의 검색을 해오고 있었는데요... 상당히 무엇인가 상당히 귀중한 자료가 나오고, 근거가 부족하여 자신감있게 이야기하지 못하던 것의 근거가 나오면 순간적으로 시스템이 정지되는 신기한 일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네요...
상당히 희안한 것은 꼭 이러한 형식의 글을 카페에 올려야 차단된 사이트가 다시 열린다는 것이죠... 무엇인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접속되는 것을 차단한 후, 문제를 부각시킨 후, 다시 접속이 되게하는 것... 누군가가 가운데에 끼어 있다라는 것이죠...
왔다갔다 하는 그들의 움직잉에서 '''얼마나''' """그들이""" 초초해 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사료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민, 대한민국에는 2개의 수도가 존재하는 군요... 하나는 '수도-서울'이 되고 또 하나는 '수도-한려'가 되네요.... 어떻게 해서 그러한 지명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