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9. 17. 화요일.
음 8월 15일 한가위 추석날.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안에서 차례를 지냈다.
큰딸, 큰아들, 작은아들, 아내와 나.
작은딸네는 이틀전 친정인 잠실에 들렀다가 시댁 어른이 사시는 충남 태안군에 내려갔고....
* 큰아들네는 토요일에 대구 처가댁으로 내려갔고, 큰아들만 어제 서울로 되올라왔고, 오늘 아침에 잠실에 와서 차례를 지낸 뒤 제 집으로 되돌아갔다.
자식들이 아침밥을 먹고는 떠나갔다.
지금은 오전 11시 반.
아내와 나 둘이서 아파트 안에 머문다.
오래 전 70~ 60여 년 전. 시골에서 추석을 쇨 때에는 고뿌래 화망마을에서 사시는 종조부네, 작은아버지네 식구들이 큰집인 우리집에 모여서 아침 차례상 앞에서 절을 올렸고, 낮에는 인근 선산에 올라서 또 절을 올렸다.
내 아버지가 1982년 6월에 돌아가신 뒤 1990년대에 서해안고속도로 개설, 2010년대에 산업단지개설 등으로 선산의 묘소가 거듭 토지수용되면서 이장해야 했다. 더불어 대전 읍내동 계족산에 있던 조부 묘소, 충남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산에 있던 증조부 묘소(대창리 방죽굴 큰 대고모댁이 바로 뒷산 아래에 위치), 화망마을 신안재에 있던 쌍둥이동생 묘소 등 여러 곳으로 흩어졌던 묘소를 고향 죽청리 서낭댕이 앞산으로 집중시켰다.
자손이 귀한 집. 그나마도 종가종손인 나는 시골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는 이제는 서울에서만 머문다.
오래 전 친인척한테 내가 부탁했다.
"명절 때 서울 내 아파트로 오시지 마시고, 각자 알아서 설 추석 등을 지냅시다. 시향 시제 때에나 고향에서 만납시다."
앞으로는 이런 명절도 더욱 간소화될 것이다.
* 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하였기에 설 추석 등 명절에는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에 내려갔다. 어머니가 만95살이 된 지 며칠 뒤인 2015년 2월 말에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는 나 혼자서 시골집에서 살기가 뭐해서 나는 처자식이 있는 서울로 되올라와서 서울에서만 산다.
이런 이유로 나는 서울에서 설과 추석 차례를 지내고, 음시월 상달에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에 내려가서 시제를 올린다.
제사는 서울에서 지내되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절만 올린다.
나한테는 아무런 종교관도 없고, 조상의 영혼 등이 있다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제삿날에 절 올리고, 설 추석 한식 등에 조상님한테 절을 올리는 이유는 있다.
한때 존재했던 그분들은 후손인 내가 한번 더 생각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제사상에 올리는 제수물도 간략하고, 나는 술을 전혀 올리지 않는다. 사이다, 과일주 정도로 올린다.
오늘 추석 차례상에는 매실주로 올렸다.
* 충남 보령시에 사는 경주최씨네는 술에 이주 약하다.
음력 10월 초에 있는 시제/시향도 축소하다가 아예 폐지했으면 싶다.
집나이 77살, 만나이 75살인 내가 고향에 내려가려면 아내가 자동차를 운전해서 내려가야 한다.
나는 시력이 나빠져서 오래 전에 운전대를 아내한테 맡겼다.
텅 빈 고향집에 가서 울안팍을 청소해야 되고..... 시제에 참가해야 되고....
물론 서울로 귀경할 때에는 도지로 받은 쌀가마니를 차 트렁크에 실고서 서울로 올라온다.
최씨네는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나 있을 뿐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객지에서 사는 그들한테 시향에 참가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나이 많은 세월에 와 있는 사람한테는 명절, 시향 등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2024. 9. 17. 화요일.
나중에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