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교리 논쟁:
‘의화론’(개신교에서는 ‘칭의론·稱義論’으로 말함) 논쟁은 “믿음(신앙)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루터교의 주장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충돌하면서 빚어진 것이다. 16세기 초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마틴 루터의 반발을 계기로 벌어진 이 논쟁은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서며 종교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루터교와 가톨릭은 1967년부터 32년간의 대화 끝에 1999년 10월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며, 이는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은 인간에게 선행할 힘을 주시고 또 그렇게 하도록 부르신다”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동아일보 기사 발췌]
천주교의 순수 칭의론은 '믿음 + 선행' 입니다.
루터의 칭의론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99년에 루터교와 천주교가 공동 발표한 의화교리 자체엔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며, 이는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은 인간에게 선행할 힘을 주시고 또 그렇게 하도록 부르신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1%의 인간의 행위도 포함될 수 없습니다.
신자의 외적으로 나타나는 열매는 분명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 형상으로 인간이 변화되는 중생의 단계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은 순종이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바늘과 실의 원리와 같죠.
우리가 비록 어느 고정된 기준에 의한 기준치를 설정하면 율법주의에 빠지겠지만,
그러나 개인의 성품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새사람을 입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따라서 성화의 과정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이기도 하며 선행도 따르게 됩니다.
이는 자유의지와 연관되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웨슬레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자유의지는 선행은총에 의한 하나님의 자연적 선물이라고 합니다.
칼빈주의에서는 믿는 자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이 은총에 따라 믿는 자는 죽었던 자유의지가 점점 살아납니다.
그리하여 죽을 때까지 완전하게 복원될 수는 없지만 부족하나마 성화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에서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너무 믿음만 강조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화에 대한 교리를 좀더 체계적으로 발전시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번 천주교와 감리교의 합의한 [의화교리]자체엔 별무리가 없어보입니다.
다만, 천주교의 종교일치화 운동(종교다원주의)에 감리교가 서로 손을 잡는데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바입니다.
장로교는 천주교와 손잡지 않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종교 다원주의야 말로 무서운 암적인 존재죠/ 오직 한분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이방신(금수와 버러지들)과 동일한 위치에 올려 놓는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죠/
천주교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신학을 만들어서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통하여 종교다원주의화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더군요
공동합의문의 문구 자체에는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해석에 따라서... 행위구원을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큽니다. 그건 그렇고 위에 지적하신대로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교리적 일치의 차원을 뛰어넘는 종교통합의 일환으로 사전정지작업입니다. 어차피 장로교의 경우도 천주교와 손을 잡을 것입니다. 언제이냐의 시간의 문제가 남아있을 따름입니다.
Brother님 말씀처럼 장로교가 천주교와 손을 잡는다면;;
요즘 장로교는 의식주의에 물든 캐톨릭을 따라 흉내내는 모습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교황이나 사제들이 화려한 제복이나 왕관을 쓰고, 대중들 앞에 나타나서 일반인과 다른 권위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식행위는 사탄적 행위입니다. 이러한 의식행위를 타파하고자 역사적 개혁주의가 종교개혁을 토대로 해서 장로교라는 교회 공동체로 태동했는데, 작금의 한국의 장로교를 보면 목사나 장로가 캐톨릭의 교황이나 사제들이 입었던 제복보다 더욱 화려해진 모습을 보면 분명 캐톨릭의 의식주의를 흉내내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위식때 입었던 제복 소매에 화려한 줄을 여러번 쳐서 자신의 권위를 자랑하고자하는 것입니다.
노란 호박에 줄친다고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닌데, 이는 캐톨릭의 의식주의가 가져온 불행을 답습하는 것입니다. 장로교의 이러한 모습은 역사적 개혁주의 의 본질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처사입니다. 그것이 안탑깝습니다.
호박에 줄긋기.ㅋ
왕의친필님.. 말마따나 박사학위 자랑하는 제복들이 많이 있더군요. 종교개혁전의 카톨릭의 병패를 재현하고 있는 듯 하여 답답합니다. 대중목회자들은 교인 머리수와 그들의 학위를 자랑하며 마치 그러한 외적인 모양들을 하나님의 은총과 영력으로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적 행태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속에는 목사 위에 박사라는 칭호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주는 박사학위가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불행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를 청빙할 때도 박사학위가 있어야 유리하다나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로마카톨릭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교황아래에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를 종교다원주의로 통합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바와같이 말세에 추수전 가라지(거짓교회)를 묶는 일로 보입니다.
사랑순종님^^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린도후서 6:14)] 이 말씀처럼 진리안에 있지 않는 카톨릭과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로교(통합측)도 [의화교리] 일치에 합의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되가는지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