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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성소의 예배자로 (히3-9)
2026년 6월 26일 (금요일)
찬양 : 보혈을 지나
본문 : 히9:1-28절
☞ https://youtu.be/fkuh_m_zaHo?si=06zc2XxjuiNyq2jY
오늘은 김성일 목사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금요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6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진행되는 소중한 시간 위로부터 내리는 충만한 은혜가 오시는 모든 분에게 넘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히브리서 9장은 그 새 언약이 도대체 '무엇을 대가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기독론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것을 보여주는 히브리서 저자의 간절함에는 배경이 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외부적인 고난 못지않게 내면적인 고통이 있었다. 유대교에 있을 때는 성전에 가서 양과 염소의 피를 흘리는 제사를 눈으로 보며 "내 죄가 씻겼다"는 시각적이고 심리적인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교회가 세워진 이후, 그들은 환난이 닥칠 때마다 <혹시 내 죄가 온전히 용서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하는 내면의 깊은 죄책감과 양심의 참소에 시달렸다.
눈에 보이는 성전 제사가 없어서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무대가 땅의 모형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하늘의 온전한 성소'임을 먼저 선포한다. 11-12절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구약의 제사장들이 드나들던 땅의 성소는 결국 무너지고 사라질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손으로 짓지 않은, 우주보다 크고 영원한 '온전한 하늘 지성소'에 직접 들어가셨다.
사역의 무대가 이토록 완벽한 하늘 지성소이기에, 그곳에 뿌려진 제물 역시 불완전한 짐승의 피일 수 없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제사로는 결코 씻을 수 없었던 우리의 영혼(양심)을, 오직 '흠 없는 그리스도의 피'만이 완벽하게 해방할 수 있음을 논증한다. 14-15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흠 없는 그리스도의 피>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흠 없는 아들의 피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사실을 강조하는가? 22절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언약(Covenant)은 헬라어로 '유언(Testament)'이라는 뜻도 있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새 언약이 우리에게 효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필요했다. 여기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구속사의 대원칙이 선포된다.
그렇다면 이 완벽한 피 흘림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최종적인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더 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는 '단번의 완성'이다. 구약의 제사장은 해마다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갔지만, 그리스도는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하셨다. 26-28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구약의 동물의 피는 죄를 일시적으로 '덮어두는(Covering)'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죄의 권세와 형벌 자체를 근본적으로 '없애버리셨다.' 단 한 방울의 피로도 우주의 모든 죄를 소멸할 수 있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단 한 번(에파팍스)'의 십자가 사역으로 영원한 속죄를 마침표 찍으셨다는 위대한 선언이다.
아담 이후 모든 타락한 인간은 예외 없이 '육체의 죽음'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라는 두 가지 절대적인 운명에 갇혀 있었다. 구약의 그 어떤 제사장도, 율법도, 수많은 짐승의 피도 인간을 이 죽음과 심판의 늪에서 건져낼 수 없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이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이미 단번에 다 끝내셨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는 너희의 죄를 따져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너희를 온전히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다!>라고 선포한 것이다.
삶이란 자리를 살면서 인간은 죄성과 타락한 세상의 흐름에 자신도 모르게 적셔지고 무감각해진다. 그토록 큰 은혜를 입고 로마의 핍박조차 견뎌냈던 믿음의 사람들조차, 이 내면의 참소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화려한 성전에서 쫓겨나 지하 무덤에서 예배하는 가운데 이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두려움과 의심이 일어났을 것인데 이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그들은 지하 무덤에서 드리는 예배가 우주의 왕이 계신 '하늘 지성소'로 곧장 상달되고 있다는 영광스러운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시각에서는 가장 초라한 곳에 숨어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크고 온전한 하늘 성소의 예배자로 서게 된 것이다.
오늘 주님은 나의 삶이 전면에서 후면으로 바뀌는 이 시점에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신다. 늘 전면에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던 역할에서 벗어나 이제 다시 성도의 자리로 돌아가는 시점에서 느끼는 이 갈등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느꼈던 그 갈등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울러 이러한 상실감과 갈등은 비단 은퇴뿐만 아니라, 질병이나 실패, 고난 등 다양한 삶의 과정을 통해 인생의 전면에서 밀려나는 경험을 하는 모든 성도가 마주해야 할 영적 통과의례일 것이다.
이제 은퇴를 통해 전면에서 내려온다 해도 나의 예배와 존재 가치는 결코 초라해지지 않는다. 도리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던 사역의 무거운 짐을 벗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을 의지하여 하늘 지성소로 나아가는 참된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이제는 흠 없는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영원한 하늘 성소의 예배자로 묵묵히 서련다.
주님, 이 믿음으로 나의 후반전이 주님께 영광이 되는 예배의 삶이 되게 하소서. 내게 믿음을 더하사 이 자리가 가장 아름다운 예배의 자리가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무대’를 떠나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만을 의지하여 '하늘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독대하는 영광스러운 자유의 시작이다.>
적용질문 :
1. 내가 여전히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혹은 사람들에게 내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죽은 행실'은 무엇입니까?
2. 내가 세상적인 지위나 역할, 건강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바라보아야 할 영적 실체는 무엇입니까?
3. 인생의 화려한 전면전에서 물러나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의 자리로 돌아갈 때, 그 초라해 보이는 자리를 '가장 아름다운 하늘 성소의 예배'로 만들기 위해 오늘 내가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할 두려움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