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밤 주으러 갔었지, 뚱딴지 군락지의 탐방은 계획에 없었습니다
달의 몰락/유 하
나는 명절이 싫다 한가위라는 이름 아래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김씨 집안의 종손인 나에게 눈길이 모여지면
이젠 한 가정을 이뤄 자식 낳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네가 지금 사는 게 정말 사는 거냐고
너처럼 살다가는 폐인 될수도 있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난 정상인들 틈에서
순식간에 비정상인으로 전락한다
아니 그 전락을 홀로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난 충분히 외롭다
하지만 난 편입의 안락과 즐거움 대신
일탈의 고독을 택했다 난 집 밖으로 나간다
난 집이라는 굴레가, 모든 예절의 진지함이,
그들이 원하는 사람 노릇이, 버겁다
난 그런 나의 쓸모 없음을 사랑한다
그 쓸모 없음에 대한 사랑이 나를 시쓰게 한다
그러므로 난,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호의보다는
날 전혀 읽어내지 못하는 냉랭한 매혹에게 운명을 걸었다
나를 악착같이 포용해내려는 집 밖에는 보름달이 떠있다
온 우주의 문밖에서 난 유일하게 달과 마주한다
유목민인 달의 얼굴에 난 내 운명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만
달은 그저 냉행한 매혹만을 보여줄 뿐이다
난 일탈의 고독으로, 달의 표정을 읽어내려 애쓴다
그렇게 내 인생의 대부분은 달을 노래하는데 바쳐질 것이다
달이 몰락한다 난 이미, 달이 몰락한 그못에서
둥근 달을 바라본 자이다
달이 몰락한다, 그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내 노래도 달과 더불어 몰락해갈 것이다
알밤 줍는 장비와 메뚜기 잡는 기계
찜질방에서 메뚜기들의 혼숙.
불행도 더러 이웃이 되어/이기철
나는 불행을 감금시킬 빗장이 없다
불행은 오래 산 내 몸을 만나면
여름 벌레처럼 날개치며 잉잉댄다
배춧잎과 쌀의 혼숙인 나의 살
이불을 덮어주어도 추위 타는
정신의 임자몸인 내 육신 속으로
가끔은 발을 구르며 지나가는 불행이 보인다
윤기나는 저녁의 나무들을 거쳐
검은 밤 속으로 흰 살을 빛내며 걸어가는
아직 처녀인 추억이여 이제 다 왔다,
그곳에 너의 닳은 신발을 묻어라
떠도는 빗방울에도 생애의 반쪽이 젖어
이 추위 다 가릴 수 있는 이불이 없다
노동과 치욕을 비벼 먹은 밥들이
살이 되는 나날을 뒤로하고
내가 걸어가야 하는 뭍은 어디인가
한 볏단도 땀 없이는 거둘 수 없음을
가을은 물든 잎을 보내 나에게 가르친다
누가 경전에서 깨우치겠는가
쟁반에 담기는 밥상 위의 김치가
삶을 가르치는 책장인 것을
첫댓글 그래도 거기는 풍성한 가을을 만나는군요.
아파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 가을을 만긱할 수 있네요
이 가을에 고구마도 캐 보고 송이 채취해 보고 알밤도 주워 봅니다.
더구나 메뚜기잡이까지...
메뚜기의 아침, 점심, 저녁시간대의 습성도 대충 파악했고요^^
아무런 계획없이,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가을체험도 즐겁습니다.
메뚜기는 손으로 잡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살생하시면 벌 받으시질도 모르는데............
이른 아침에는 손으로, 한낮에는 메뚜기가 활발해져서 손 보다는 장비를 사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더라구요.
아시겠지만, 메뚜기는 농민들이 애써 가꾼 벼에 해를 끼치는 곤충이랍니다.
여느 농민들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 논에서 메뚜기를 잡는 걸 싫어하지 않거든요.
더구나 내가 불교 맹신자도 아니고 해서...^^
그래서 장비를 개발했군요. 손으로 잡는 모습만 보아서......
추석 전날 집안 남자들이 우르르 메뚜기 잡으러 가는데
페트병에 담아온 메뚜기를 동서가 손질해서 볶는데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못 먹겠더군요.
다음에 혹 메뚜기가 선물로 들어오면 저 주세요^^
메뚜기가 사람을 겁내지 않더군요^^
이른 아침엔 날개가 젖어있어서 달아나지 못하거나 잠에서 덜 깨서 겁내지 않을 거고,
한낮에는 발자국소리만 들어도 재빠르게 풀섶으로 달아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