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라!"
"끄아아악!!"
요란한 포탄소리가 바다를 뒤 흔들 듯 끊임없이 울려퍼지며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반주를 하 듯 어우러져 마치
한 곡의 커다란 즉흥곡처럼 신나게 울려퍼졌다.
시커먼 어둠을 대포가 쏘아지며 만들어낸 불빛이 환히 밝히며
반갑지 않은 훤한 밤까지 연출되고 있었다.
"크하하, 날려버려!!"
리안은 먼지가 낄 정도로 오래 된 와인 병을 들고 병째로
입에 털어넣으며 기분이 좋은 지 블리타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인간은 이게 게임인 줄 아나봐.'
안전하고 아무에게도 거슬리지 않는 선실의 지붕 위에 올라
앉아있던 파일로는 껄껄 웃으며 연신 다 죽여라! 라고 부하들을
부추기는 리안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에 반해 가까이 다가온 리튼 호의 트리알은 흥분했는지 얼굴이
시뻘게져 부하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저 리안 놈의 대갈 통을 날려버리란 말이다!!"
"블리타를 박살내버려!!"
"그거 하나 못맞춘단 말이냐? 이런 멍청한 자식들!!"
파일로가 두 선장을 관찰하는 사이에도 여전히 커다란 욕지거리와
꽝꽝 포탄 터지는 소리는 사방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총이나 칼은 안 쓰고?'
자신과는 아무도 관계가 없는게 분명한 싸움을 무심히 내려다보던
파일로는 문득 무언가 깨닫고 궁금증이 들었다.
어둠 속을 뚫고 다가오던 리튼 호는 어느 순간 돛을 내리고 정지해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대포만 실컷 쏘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은 블리타도 마찬가지였다.
리튼 호와 블리타 호 사이에 무언의 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거리는 대포 외의 칼은 물론 총으로도 닿지 않는 거리였다.
그러니 그 두 배의 전쟁이란 것은 뻔했다.
무식한 대포들이 마치 돼지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 듯 훨훨 날아다니며 서로의 배를 박살내고 가끔 재수 없는 해적의
머리통도 박살내는 상황이었다.
만약 블리타가 대포를 수십개 쯤 달고 있었다면 상황은 순식간에
끝났겠지만, 블리타 호나 리튼 호나 속도만 놓고 봤을때는 당연히
블리타가 월등히 앞서지만서도 무기나 크기 쪽에서는 별반 다를 것
없이 서로 엇비슷했기 때문에 싸움은 쉽사리 끝나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 블리타 가라앉아버리는 거 아냐?'
파일로가 슬슬 이런 걱정을 시작할 정도로 블리타의 몸뚱아리의
구멍이 많아지고 있었다.
하기야 서로 죽어라 대포만 쏘아대니 그러지 않을 쏘냐,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무식한 전쟁이었다.
게다가 블리타를 목숨처럼 아끼는 리안이 이 광경을 그냥 보고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사실 리안은 술 맛도 확 떨어졌는지 거의 경악에 찬 표정으로 슬슬
변해가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아름답고 완벽한(리안의 생각으로) 블리타의
몸에 상처가 그것도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려가고 있는 것을 보며
태평히 술이나 마실만큼 그는 마음이 넓지 않았다.
'왜 가만히 있는거야?'
파일로가 리안의 머리 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혹시 손을 머리 속에 집어넣으면 뇌가 잡히지 않을까?
하는 실 없는 생각에까지 도달했을 즈음, 느닷 없이 블리타가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난데없는 행동은 리튼 호의 트리알에게도 당황스러운
행동이었다.
"피, 피해라! 저 자식의 총알이 닿을 거리에서 벗어나!!"
그러나 모두 대포에만 매달려 무식하게 꽝꽝 쏘아대던 리튼 호와,
리안의 조용한 명령에 따라 제 위치에서 배를 조종하며 공격하는
블리타 호의 행동이 같을 수는 없었다.
탕 탕 탕!!
여전히 칼과 몸싸움은 힘든 거리지만 리안에게는 더 좋은 무기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무기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충실히 적의 몸뚱아리로
날아가 픽픽 박혔다.
"으아악!!"
대포의 심지에 불을 붙이려던 리튼 호의 해적들이 순식간에 손을
뚫어버린 총알에 비명을 질러댔다.
'내 배에 더 이상 흠집 내면 죽일테다.'
리안의 강렬한 푸른 색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파일로는 그 모습에 상황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푸하 웃음이
나왔다.
먼저 싸움을 걸어놓은 사람이 누군데 지금 배가 좀 부서졌다고
되려 화를 내고 있는거란 말인가, 저 인간은 대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파일로는 블리타가 부서질 걱정은 더 이상 안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에 두 손바닥을 등 뒤를 향해 뻗어 바닥에 대며 편한 자세로
그 들을 지켜보았다.
뻔뻔하다면 낯짝이 총알로도 안 뚫릴 것 같이 얼굴 두껍게 뻔뻔한
리안의 모습에 당황한 건 트리알 쪽이었다.
"저, 저, 저 멍청한 자식이!! 네 놈이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었잖아!!
지금 어따대고 총질이냐!!"
"내 기억엔 네 놈이 야밤을 타 야습하려 한 기억 뿐인데."
원래 사람의 기억력이란 야비해서 자신이 저지른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 따위는 아예 머리 속에서 싹 지워버릴 정도로 쉽게 잊어
버리면서도 남이 저지른 나쁜 짓은 평생 기억하고 욕하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리안의 경우는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기기' 였다.
"네 놈이 분명히 가만있던 나를 건드렸잖아!"
"술 먹자고 불러내서 날 무인도에 던져버린 게 누군데."
파일로는 그제야 리안이 왜 무인도에 있었는지 이유를 알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맥이 확 빠지는 대답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반란이 일어나거나 배신을 당해 갑작스레 일어난 싸움에 저항도
제대로 못한 채 잡혔지만 결국 굴복하지 않고 차라리 무인도에
버려지는 쪽을 택했다.' 라는 스토리가 아닌 '저 놈이 술을 먹자고
하길래 좋다고 리튼 호로 옮겨탔다가 술에 취해서 밤에 푹 자고
일어나보니 어이 없게도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혼자 버려져 있더라.' 라니.
"흥, 멍청한 놈."
파일로는 왠지 이번 트리알 말에는 동감해주고 싶었다.
적의 배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룰루랄라 넘어가서는 술까지 진창
퍼마시고 게다가 잠까지 늘어져 자다니.
트리알이 목숨을 살려 준 게 더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아그렌이 그렇게 한심한 표정으로 리안을 구하러 왔던거군.'
파일로는 키르텍 섬에서 실컷 생태계를 파괴해 제 배를 채운 뒤
해변가에 늘어져 잠을 자고 있던 리안을 발견했던 아그렌의, 세상의
모든 생물체가 우울해 질 것만 같은 한숨 소리와 암울한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네 놈보다는 멍청하지 않아."
"뭐야?! 이 새우 뇌만도 못한 게!!"
"새우 뇌 크기 만큼의 뇌도 없는 게."
"내가 하려던 말이 그거다!!"
왠지 싸움은 또 다시 유치한 말싸움으로 번질 것 같다는 예감이
파일로의 머리 속에 스멀스멀 피어났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파일로의 예감은 리안의 행동으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이제 슬슬 지겹지 않나?"
아무 표정 없이 차가운 총신을 트리알의 이마 가운데 들이민 리안이
이해하지 못할 질문을 내뱉었다.
갑자기 진지해져버린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해적들이 자신의 선장들의
유치한 말싸움을 배경으로 칼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트리알은 말 없이
리안의 파란 색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그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장난끼도 보이지 않았다.
진심으로 트리알을 죽이려 하는 것일까?
리안의 감정 없는 차가운 얼굴은 충분히 그런 가능성을 실현 할 것
같아 보였다.
챙챙 하는 칼 부딫히는 소리와 해적들의 욕 섞인 거친 목소리들로
소란스러운 배 위에서 파일로는 리안이 입을 여는 것을 보고 자신의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우리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끝나겠지, 이 게임은."
제대로 들은 것 같지만 이해 할 수 없는 리안의 말에 아리송한 표정이
된 파일로는 순간 리안이 총을 든 손을 움직이는 것을 보며 갑자기
자신의 몸이 강하게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기분을 받았다.
"으아아아아!"
주변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칼싸움을 벌이고 욕을 내뱉던 해적들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기분과 함께 정신의 끈을 서서히 놓던 파일로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리안의 손에 들려진 푸른 빛을 뿜어내는 아키온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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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것에 어울리지 않게 빠져서
요새 도서관에 맨날 와서 공부 모드에
돌입중입니다.
뭐, 공부 하는 것도 꽤나 재밌어요.
사실 아무 생각도 안들지만(...)
어쨌거나,
공부하다가 질려서 컴퓨터 하다가
짠! 한 편 올리고 갑니다.
하핫
바쁘실텐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꼬릿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보세요! 주말도 아닌데 왔잖아요!<-)
첫댓글 파일로가다시현재로돌아가는걸까욬ㅋㅋㅋㅋ
히힛 곧 돌아가겠죠!
하핫 님 바쁘신데도 올려주셨네요~덕분이 증폭된 궁금증과 함께 전 주말을 기다리겠습니다^^ 리안은, 정말 알고싶은 인물이네요.
꼬릿말감사합니다. 바쁘신데도 꼬릿말 달아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