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komme susser tod
자게글 아님
질문한것도 아니고
대게보다 더 유명해졌으면 하는 벽산 김도현 선생님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들려주고
영덕에 갈 때 생각이 난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작성하는 글
벽산 김도현 선생님은 1895년 단발령을 기점으로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서
의병운동을 하신 분이자 대표적인 유림으로 알려져 있어
그리고 김도현 선생을 기리고자 아직도 행사가 열리고 있음!
이곳은 김도현 선생님의 생가이고 영덕에 가면 볼 수 있음
김도현 선생은 1895년 의병부터 시작하여 정미의병 그리고 이후에 의병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서 일제에 저항하고자 하였고
당시 스승이었던 이만도 선생과 함께 안동에서 활동을 하였어
1905년에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영남의 선비들과 상경하여서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자결로 순국하고자 하셨지만
동지들의 만류로 실패한뒤 귀향하게 됐어.
하지만 1914년 한일 합병 이후에 부친이 사망하자
영해의 관어대에 나아가 유서와 시를 남기고 바다에 투신하여 자결하셨음.
김도현 선생은 마지막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그대로 걸어가셨고 시신도 떠오르지 않았다고해
이 모든 과정을 사람들이 지켜보았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하였고 벽산 김도현 선생의 자식들은
김도현 선생이 생전 쓰던 <도해일기>의 뒷 부분을 마저 쓰면서
의병활동을 알리고자 했었어.
도해일기의 내용을 보면 “나는 한 번 이 바다에 들어간 이후로는 맹세코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바닷물에 빠질지언정 어찌 원수같은 오랑캐 땅의 심복이 되겠는가?”
라는 내용이 있고 김도현 선생이 일제에 강하게 저항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어
조선왕조 오백년 마지막에 태어난 나
붉은 피 온 전신에 엉키었구나
중년의 독립운동 19년에
머리칼은 늙어 서리 끼었는데
나라가 망하니 눈물이 하염없고
어버이 여의니 마음도 아프구나
머나먼 바다가 보고팠는데
이레가 마침내 동지이더라
홀로 외롭게 서니 옛 산만 푸르고
온갖 헤아려도 방책이 없네
희고 흰 저 천길 물속이
내 한 몸 넉넉히 간직할 만하여라
이건 벽산 김도현 선생님이 남긴 임절시야
조선은 망했어야한다..어쩌고 식민사관 뉴라이트적인 댓글 안받음
봐줘서 고맙고 영덕에 방문하면 한 번쯤 생각해주길!
첫댓글 글 잘봤어!! 근데 영덕은 꽃게가 아니라 대게가 유명한 동네야 ㅎㅎ 꽃게는 안난답니당 ..
헐 미안 수정해야겟다 ㅋㅋ ㅜㅜ
@Komme susser tod 응응 본문 수정도 해야겠다!! 오타랑 별개로 영덕 사는데 저분 몰랐네 ㅜㅜ 시간나면 함 가봐야겠어... 좋은 글 고마워!
@체리실랑 고마워! 수정했어!
좋은 글 고마워!! 나는 영덕하면 장사상륙작전 기념관 생각나거든!! 감사한 위인이 계신줄 몰랐네!!!
좋은 글 고마워 여샤!! 영덕 매년 가는데 김도현 선생님은 처음 알았네... 다음에 갈 때 생가도 들러봐야겠다!
고마워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