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오늘 교회는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아기를 주님께 바친 일을 기념합니다.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히브 2, 17) 하였던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백성의 다른 맏아들들처럼 부모의 손으로 성전에 바쳐지십니다. 아기 스스로 자신을 바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바칩니다. 실제로 그리스 말 원문은 ‘봉헌’ 과는 조금 다른 ‘나타내 보이다, 출현하다, 소개하다.’(present)라는 뜻을 가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오늘 복음을, 드디어 오신 구세주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대표하는 두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 백성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고 하십니다. 일종의 상견례인 셈이지요. 제1독서에서 구세주께서 “자기 성전으로 오[시]리라.”(3, 1)라고 한 말라키 예언자의 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곧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뒤 처음으로 성전에서 아버지 앞에, 그리고 백성 앞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축성 생활’(vita consecrata)의 날을 꽤 오랫동안 ‘봉헌 생활’ 의 날로 불러왔기에 축성 생활자들이 주님께서 성전에 바쳐지신 것과 같은 의미로 봉헌된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5년 전 이를 ‘축성 생활’ 로 번역하여 쓰기로 한 주교회의의 결정은 이런 혼란을 바로잡고 축성 생활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축성’ 은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봉헌’ 과는 쓰인 낱말과 그 뜻이 다릅니다. ‘축성 생활’ 은 “서원을 통하여 …… 세 가지 복음적 권고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삶, 곧 “복음적 권고의 서원으로 이루어지는 신분”(교회 헌장, 44항)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수도자를 포함하여 복음 권고를 서약하는 모든 이가 축성 생활자입니다. 올해 ‘한국 교회 축성 생활의 해’ 를 지내면서 축성 생활 성소를 위하여 더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