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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약속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4:1~3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 4:4~11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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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있어도 이르지 못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고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때와 달리 하나님 백성에게는 안식할 때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고, 순종하지 않는 본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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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약속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4:1~3
약속의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1절)라고 권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과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듣고도 그 약속을 배척하다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안식에 대한 약속을 받았을지라도, 그 안식에 이르지 못할 수 있음을 두려움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라는 예수님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봅니다. 약속의 말씀을 듣고도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그 약속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은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 약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온전히 신뢰하고 붙들 하나님 약속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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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 4:4~11
안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안식은 천지 창조를 마치신 하나님이 제7일에 안식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으로 인해 약속으로 받은 안식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습니다.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다’는 표현은(6절)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성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 안식은 불완전했습니다(8~9절). 성도의 안식은 천국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교훈 삼아 믿음과 순종으로 참된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 땅에서도 예수님 안에서 쉼(안식)을 누릴 수 있지만(마 11:28), 궁극적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은 다가올 천국에서 이루어집니다.
● 더 깊은 묵상
여호수아 때의 안식과 장차 성도가 들어갈 안식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현재 순종하는 삶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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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안식에 들어가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애굽)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것으로 구원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불순종에 불순종을 거듭하다가 결국 광야를 통과하지 못하고 죽은 이가 부지기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 이들이 ‘안식’을 누리지 못했다고 표현한다(히 4:1~3). 오늘날 우리는 궁극적인 안식, 곧 새 하늘과 새 땅의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가 제안하는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항상 믿고 의지할 말씀을 우리에게 심어 주셨다. 말씀을 따라 살고, 그 말씀을 따라 양육받음으로써 영생을 누리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은 있다가 사라지는 돈이나 명예를 자랑하지 않고, 그런 것들로 인생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함부로 혀를 놀려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 말씀으로 사람을 살린다.
‘소유’는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정보’는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말씀이 역사하도록 늘 우리의 자리를 성령께 내어 드리는 것이다. 인생이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더 큰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끝까지 한눈팔지 않으며 참된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한다.
시험을 만나거든 / 박대영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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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 : 히브리서 4장 1~2절
복음을 '듣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받았지만, 모두 그 땅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만 모두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을 약속하는 복음이라도 믿지 않고 듣기만 하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마지막 때일수록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선택과 판단을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영원한 안식은 '자신'이 아닌 복음, 곧 '예수님'을 믿을 때 얻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신선한 공기 속에서 숨 쉬는 것처럼 평안하고, 용서 안에서 안식할 수 있다. - 밥 조지
오늘의 기도
하나님, 천국을 그토록 소망하면서도 말씀을 가벼이 여겼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딱딱하게 굳은 제 마음을 성령으로 갈아엎으셔서 부드럽고 겸손하게 바꾸어 주소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그리스도와 연합해, 불순종의 본에 빠지지 않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521 구원으로 인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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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기쁜 소식을 듣고, 그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는 기쁜 소식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1.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두려워해야 하며, 창조 때 하나님은 쉬셨고, 안식을 하셨음(1~5v)
2. 기쁜 소식을 듣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이 주어질 것이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서야 함(6~11v)
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힘이 있어서 그 어떤 것도 감출 수 없음(12~13v)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기쁜 소식을 우리의 믿음과 잘 결부시켜 나가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더욱 더 성장시켜 나가고,
성숙해져 가는 토대로 세워 나가도록 하자
② 주님께서 주시는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그분의 제자로, 그분의 일꾼으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자
③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아가고, 하나님과 더욱 더 친밀한 관계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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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순종의 본을 따르지 말고, 오직 말씀을 굳게 붙잡고 안식에 들어가기를 애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때의 안식은 구원과 같은 것으로 ‘이미’와 ‘아직’의 중간개념입니다. 안식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하늘나라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힘 쓴다’라는 말은 '재촉하다', '열심히 노력하다'의 뜻으로 의지를 나타나는 용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정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로 있어야 하지요. 구원은 사람의 애씀과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히브리 기자는 구원에 대해 결코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 명백한 예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신실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극렬하게 대조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의지와 노력 없이도 그냥 저절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진행형 없는 완료형은 없습니다. 구원은 계속 진행형입니다. 완료될 때까지 우리는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장차 그 나라에 갈 것이지만 현재도 주님과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환경과 조건과 상황에 구애됨이 없이 하늘나라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을 살지 않으면 누가 천국을 살지 답을 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사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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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신 하나님이 안식에 대해서만큼은 두려워하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4:1)
세상도 사람도 상황과 환경도 먹는 것과 마시는 것도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눅12:29~30)
그러나 자기 앞에서 천국 문이 닫히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심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25:10~12)
주께서 우리를 싫어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민14:34)
우리에게는 주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참으로 복되고 복된 놀라운 언약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32:40~41)
그러나 이런 약속이 남아 있더라도, 누구든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으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4:2)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주의 모든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켜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기 원합니다"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4:11)
참으로 주의 복된 언약의 말씀과 지엄하신 명령의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킨 우리는 반드시 저 안식에 들어가는 줄 믿습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4:3)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씁시다(11절)’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이집트로부터 나온 세대는 모세를 포함하여 예외 없이 그 안식의 땅, 가나안으로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그토록 기다렸고 밟고 싶어 했던 그곳이 만약 진정으로 최종 목적지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선택을 선택할 수도, 기대할 수 있게도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땅은 장차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모형이며
그곳은 오직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했기에
그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으로는 한 발도 들여놀 수가 없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완고함과 불순종을 그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겸손과 순종의 결단,
믿음으로 행함으로 결국 우리를 영원한 그분의 안식에 거하게 하고,
놀랍고 측량할 수 없는 그 은혜에 머무르게 함을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변치 않는 사랑과 그 열심의 사건이 날마다 우리의 영혼 안에서 새로워지고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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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하여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핵심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는 자들에겐 경고의 소리이며
성도들에게 큰 위로의 소리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 경고의 소리가 두려움이 된다면 그것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쳐야 합니다. 이 경고의 소리는 성도들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것은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경험한 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함으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고 천사와 모세보다 우월하십니다.
모세가 약속한 안식보다 더 나은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하여 굳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굳게 붙둘지 않는 사람들은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끝까지 예수님을 굳게 믿어 가장 복되고 영원한 안식을 차지하는 주인공들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의 참 의미를 기억함으로써 한없는 하늘의 기쁨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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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을 누리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라(1절)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안식이 우리에게 주어 졌지만 그 약속이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안식에 들어가길 힘써야 하는데,
그 조건은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말씀이 유익하고 살아 있는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요소와 결부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양식이기 때문(2~3절)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일을 끝마쳤으므로,
그때부터 안식이 있어 온 것입니다(3절,새번역).
즉, 안식에 대한 약속은 이미 창조 때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40년 동안이나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방황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절).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내 자신이 언젠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들은 이 땅에 잠시 머물다가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그네들입니다.
세상은 내 자신이 안주할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역의 장소입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서야 할 그 날이 있음을 늘 기억하며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믿음으로 안식을 소망하는 삶이어야 합니다(6~11절).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6절)
안식에 들어가는 조건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야’(7절)합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온전한 안식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8절).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로 곧바로 이스라엘은 안식을 잃어버린 시대가 도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준 안식과 인간이 주는 안식은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안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9절).
참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복음 안에서의 안식입니다.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쉬신 것처럼 자기의 일을 쉬게 됩니다(10절).
이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족함이 없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좋은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불순종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안식은 참 안식이요, 결코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안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안식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완전한 안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고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때에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장차 올 안식의 약속을 우리는 믿고,
오늘 그 말씀을 순종하며 소망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현실의 삶에 안주하거나, 낙심하여 먼 산만 바라보고 있지 말고,
믿음으로 참 안식을 소망하며 부지런히 오늘을 일구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자의 자격
1. 택함을 받은 자
쉴새없이 바쁜 세상에서는 누구나 평안한 쉼을 원한다.
그러나 인간 쉼은 잠시 잠간이며 완전하지 못하나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의 안식은 영원하다(시95:11).
2. 복음을 믿는 자
택함을 받음으로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 참 안식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요1:12).
3. 유혹을 이기는 자
세상의 온갖 유혹이 달려들지라도 끝까지 싸워 믿음의 승리를 이루는 자만이 영원한 안식을 맛볼 수 있다
(벧후1:10)
오늘 본문은 우리가 들어갈 안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안식이 있음
믿음은 결국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소유함으로 얻으려는 구원과 안식이 거짓이요
우리에게는
참다운 구원과 안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가는 곳은 의무만 가득한 어떤 곳이 아니라 안식의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사모하는 안식의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그 안식의 자리를 사모하고 그곳에 가도록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식의 자리를 놓치면 땅을 치며 통곡해야 하는 곳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1절)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아직 안식의 자리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더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그 안식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두려워해야 하는 가장 큰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다른 것은 어떤 것도 우리를 두렵게 하지 못합니다.
안식의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안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누리는 안식입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9절) 우리에게 안식의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고 있는 그 천국의 자리,
안식의 자리를 바라보며 가야 합니다. 그래야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안식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진정 믿고 있습니까?
세상의 안식의 방법(돈, 명예, 은퇴 자금..)이 아니라
우리의 방식(말씀과 기도와 시험)으로 안식을 향한 여정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은퇴계획이 구체적이어야 하듯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2.정직한 결산
우리가 마지막 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을지 않을지는 아주 공평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심판될 것입니다.
그 심판의 기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결코 생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질적이기 보다는 너무 실제적이고 분명하여 더욱더 놀랄 것입니다.
그 실제적이고 적나라한 심판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말씀입니다. 우리 손에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심판의 그 날에 우리의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는니라"(13절)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안식에 들어가는 그 날에 있는 결산은 정직한 결산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철저히 말씀을 가지고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직 심은대로만 거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들어갈 안식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안식을 좇아가지 말고 들어갈 안식을 좇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안식의 방법을 두려워하지 말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들어 갈 안식은 정직한 결산 이후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말씀에 의해 철저한 정직한 결산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말씀을 들을 때 마치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심판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 날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속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말씀을 속이지 말고 말씀 앞에 정직한 결산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날의 결산 때에 웃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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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순종함으로 안식에 들어가십시오
본문:히 4:2-11
안식(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 열심내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천국 가기 위해 힘써 순종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천국 가기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천국처럼 육적으로 잘 살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지상낙원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써야 하는 일은 지상낙원이 아니라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순종(일)해야 안식이 있습니다
안식은 일을 전제하기에 안식은 우리의 해야 하는 일 곧 순종을 전제합니다. 힘들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은 사람은 쉴 자격이 없듯이 하나님께 수고하여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수고한 자에게 주시는 천국에서의 안식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6절)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순종치 아니하면 안식도 없습니다.
순종도 아니하고 어찌 안식을 바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일하지 않고 얻으려는 도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11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쓰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산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쉽기 때문에 우리에게 말씀을 따라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 길을 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천국에서의 안식을 바라는 사람은 이 땅에서 더 열심히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힘서야 할 것입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와 값싼 은혜는 다릅니다
천국을 위하여 어떤 값을 치루었습니까?
어떤 값을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천국은 가장 좋은 것이고 가장 소중한 것이니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치룰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 때로는 그렇게 순종하며 치루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위해 아들 이삭을 값으로 치루어야 했듯이.
우리는 여전히 믿음이 값싸지 않습니까?
값싼 것(일주일에 한 시간?)은 치룰 준비가 되어 있으나
그 이상의 것은 치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값싼 것으로 취급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은혜는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값입니다.
그러니 힘써 순종하는 값을 치루어 안식에 들어가도록 노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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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옛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안식을 약속한 복음이 틀렸거나 하나님의 안식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복음을 듣고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기 때문'이고, '복음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불신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안식의 문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 두셨습니다.
안식이 요원해 보이고 그리로 가는 길이 험난할지라도,
“애굽으로 돌아가자" 했던(민 14:4) 옛 이스라엘처럼 되지 말고 믿음과 순종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입시다(민 14:6-9).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은 순종이다.
순종하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수긍해야만 한다.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필요한 것이 순종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요구하시는 것은 순종이다.
순종하는 오늘을 다짐해 본다.
순종하라고 하신 말씀을 깊게 새긴다.
9월5일 상동역에서 퇴근후
7-10절 :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우리에겐 아직 구원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안식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인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안식에 다다른 것이 아님을 설명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영원한 안식이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지 수백 년 후에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라'는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완전한 안식의 모형이었을 뿐,
안식의 완성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우리도 하나님의 안식을 향해 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아직 쉴 때가 편안함을 찾을 때가 아닙니다. 고단한 현실을 견뎌야 하고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이미 구원받았다는 생각으로 믿음의 걸음을 멈추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더 가야 합니다. 남아 있는 안식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 나아갑시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가다가 중단하는 것은 가지 않은 것과 같을 것이다.
완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천국에 이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그 길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다.
사탄은 끊임없이 그 길을 못 가게 한다.
삶의 현장 속에서 어려움을 준다.
마음속에 불평을 심고 낙심을 심는다.
그러나 이겨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
선한 싸움을 힘써 싸워야 한다.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을 받아써야 한다.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길 간구한다.
오늘도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길 기대한다.
9월5일 청라호수공원에서 오후
11-13절 :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 말씀 앞에 자기를 세워야 합니다. 말씀 앞에 서지 않으면 믿음이 있다고, 순종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말씀은 해부하는 칼처럼 우리의 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티 없는 거울처럼 우리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매일 말씀 앞에 서서, 말씀으로 내 삶을 고치고 조정해야 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믿는 자들의 최종 목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길을 안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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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오히려 지켜주시고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안식에 거하기 위해
오늘도 택하여 부르시고 그 말씀을 듣게 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한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서 있다고 착각하지 말게 하옵소서
나의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밖힌 것을 바라볼 때에만
복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으로 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시며 적나라하게 드러내시고,
나의 민낯을 보게 하여 주사 내 삶을 고치시옵소서
말씀과 순종으로 힘쓰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복된 자녀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생명을 내어주심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날마다 기억하며
흔들리지 않는 증인으로 담대하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일으켜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 맡은 신음하는 이들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넘치게 임하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그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엎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