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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이 내리쬐는 멍석 위의 고추. 찬란한 가을의 풍물은 기업화된 이즈음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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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椒(고초)는 매운 맛을 가진 열매를 맺는, 아메리카 원산인 고추의 본래 말이다. 苦草(고초)라고도 쓰고 倭草(왜초) 唐椒(당초) 蕃椒(번초) 南蠻草(남만초) 南椒(남초)라고도 한다. 倭草는 왜놈 풀이란 뜻이니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말이겠다. 唐椒니 蕃椒는 일본 한자말. 저들은 唐이나 蕃을 외국이란 뜻으로 썼다. 南蠻도 서양이란 뜻이다. 南椒는 南蠻椒를 줄인 말. 일본에도 서양을 통해 고추가 전래되었다.
脾胃(비위)가 약한 일본사람에게 고추는 毒草(독초)였다. 이에 착안하여 壬辰倭亂(임진왜란) 때 조선 사람을 毒殺(독살)하려고 가져왔다 한다. 웬걸, 毒草를 먹은 조선 사람들이 죽기는커녕 더 건강해졌다. 우리나라 사람이 꾸민 이야기가 아니다. 백여 년 전 일본 사람 쓰네야 세이후쿠(恒屋盛服·항옥성복)가 쓴 朝鮮開化史(조선개화사)의 이야기이다.
매운 맛을 내는 양념은 여러 가지이다. 五辛(오신)은 매운 맛을 내는 양념을 통틀어 부르는 말. 蔥(파 총) 蒜(마늘 산) 薑(생강 강) 芥(겨자 개) 胡椒(호초) 다섯 가지이다. 胡椒는 '후추', 나중에 소리가 바뀌었다. 五辛은 五?菜(오훈채)라고도 한다. 불교에선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금하는 먹을거리이다.
조선 사람들은 고추에 熱狂(열광)한 나머지 飮食文化(음식문화)를 뿌리째 뜯어 고쳤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도 山椒(산초) 川椒(천초) 胡椒 등으로 매운 맛을 냈지만 이제 고추는 매운 맛을 平定(평정)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고추는 햇볕 아래 붉은 보석처럼 빛난다. 외국에서 들어온 다른 것처럼 우리 것이 되고야 말았다.
출처:국제신문 글 임형석 경성대 중어중문학과 외래초빙강사
첫댓글 한자를 깊이 알면 알수록 순수한 우리말이 사라지네요. 우천님 덕분에 고추의 자원을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