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일반적으로 한자 독음으로접(蝶)이라고 한다. 그러나 漢詩나 古典에는 호접(蝴蝶),호접胡蝶),봉접(鳳蝶) 표기되어 있다. 예로써 莊子(BC290)의 호접몽(胡蝶夢)이란 故事가 있는데 蝴蝶을 胡蝶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는 데, “나비”가 胡國에서 많이 살았기 때문에 胡를 상투적으로 붙여 썼다는 설이 있다. 호접몽의 내용은 다알고 있지만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놀다 깨어나고 보니 "자신이 꿈에 나비가 되었던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가?“하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었다.지금이야 한자가 5만자가 넘지만, 2,300여년전 공자, 맹자 시대에는 한자가 1萬餘字 남짓했으니 대충사용했다. 특히 벌레-蟲이 들어가는 글자는 지금도 옥편에 340여자 밖에 안되니 어찌 오만여종의 나비와 이십만종의 나방 벌레의 이름을 340자 속에 다 넣겠는가? 그리고 현재 조사된 110만여종의 동물중에서 80%이상이 벌레(절지)종류이다. 문제는 글자가 아니라 호접몽에 담긴 장자의 물아일체의 철학이다.
즉 자신이 나비인지 장자인지 구분이 안 되듯이,세상의 사물도 선악(善惡)이나 아름답고 추함 따위로 구분할 수 없고, 만물은 일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꿈과 현실 그리고 저것과 이것 모두가 구별이 없고, 다만 눈에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일 뿐이라는 주장이다.<莊子>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나비와 나방, 그리고 범과 호랑이의 고유명사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고자하는 것이다.족보 이름과 주민증 이름이 다른사람과 있듯이.. 나비(蝶)와 나방(蛾)은 분류학상(亞科) 같다. 나비는 봄이나 여름에만 있을 같지만 사계절 모두 나비는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알(卵)상태로 겨울- 애벌레(幼蟲) 봄- 번데기(蛹)로 가을-(생략-불완전변태) 성충(成蟲)로 여름을 네 번의 단계를 거치면서 완전변태를 한다. 4 단계마다 먹이가 다르고, 번데기(굶고),먹이 다툼이 없으니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종(優占種)을 차지한다.
조선의 나비(범(地支-寅)나비)가 처음으로 歌辭體로 기록된 것은 1558년 (선조21년)鄭澈이 지은 松江集, 松江歌辭, 文淸公遺詞 등에 실려 전하며 孤臣戀主(고시연주)의 지극한 정을 유려한 필치로 묘사했다.
이조실록광해군 일기 광해군 9년 (1617년)7월 20일 함경도 갑산부에서 백접(白蝶)=(흰나비)이 무리를 지어 동북으로 와서 남으로 날아갔는데 그 형상이 긴 뱀 같았고 3일간 하늘을 덮었고 북청부에서도 백접이 무리지어 북으로부터 와서 남쪽 해변으로 날아갔는데 2일간 연이어 하늘을 덮었다고 南兵便玄輯이란 사람이 이 사실을 궁중에 보고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82년 <버틀러 BUTLER>가 函館,橫濱,神戶 포시엣 등지에서 채집한 것을 기록한 것인데 <페리>란 사람이 조선에서 채집해서 대영박물관으로 보낸 것을 기록한 것으로 총 38종 중 조선 것만을 정리하면 15종이다. 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白蝶이란 줄흰나비 (Pieris napi.L.f.dulcinea.Butler) 종이다. 19세기 신작(申綽)1769.8.1생. 字 漢叟, 號 紫霞)이란 사람의 鳥獸蟲魚草木名이란 책에는 날개를 모은 것이 앉을 때 날개를 모으는 것이 나비(접)이고, 날개를 펼치는 것이 나방(蛾)이라고 기록되어 나비와 나방의 특징을 구별하였다.
또 趙在三이란 사람이; 지은 松南雜識이란 책에는 호랑나비의 이름의 유래가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즉 큰 나비를 봉자(鳳子)라고 하며 이 봉자란 것은 지나문헌(支那文獻)에 있는 것인데 江南에서 귤(橘)나무 잎을 먹는 벌레가 큰나비가 되는 데 그것을 鳳子라고 하다가 그대로 조선에 경입(輕入)하여 큰나비는 무조건 봉자, 봉나비라고 하다가 범나비로 와전(訛傳)된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설은 설일 뿐이다.
나비가 시에 나타난 최초 문헌은 정철의 思美人曲에 한자로 호랑접(虎狼蝶) 호랑나비란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 호랑나비, 범나비에 대한 기록은 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