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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의 권능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이유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본문해설
[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예리하여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니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습니다.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우리는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권능 4:12~13
하나님 말씀에는 하나님의 크신 권세와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12절)라는 말은 말씀이 지닌 생명력에 대한 묘사입니다. 죽은 것에는 살리는 힘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만이 죽은 영혼을 살리는 권능을 발휘합니다. 살아 있는 말씀은 우리 삶에 뿌리내린 악한 습관을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인격 안에 감춰진 불의한 생각을 감찰해 참회를 이끌어 냅니다(12절).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13절). 성도는 권세 있는 하나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굳게 붙들 때, 권능의 말씀이 함께하며 이끌어 주시는 인생이 됩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 말씀에는 어떤 능력이 있나요?
최근에 하나님 말씀이 나의 내면을 깊이 만지시고 변화시키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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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이유 4:14~16
하나님 아들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이십니다(14절). 레위 지파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드린 제사는 완전한 구원을 제공하지 못하기에 매년 드려야 했습니다. 그도 속죄가 필요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 아들로서 완전한 구원을 이룬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번에 완벽한 구원을 이룬 희생 제사였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당하셨기에,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마다 때에 알맞게 주시는 전능자의 은혜로 만족할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성도가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은혜의 보좌 앞에서 내가 하나님의 긍휼과 도움을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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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아시기에
지금 육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나요? 주님도 겪으셨습니다. 오해받고 멸시당하는 사람이 있나요?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이 당신을 배신했나요? 주님도 그런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동정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슬픔과 걱정 속에 있고, 실망과 좌절을 겪는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능히 우리를 도우십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불행할까?”라고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향한 계획과 뜻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태어났는지’보다, 태어난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가 없으신데도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을 경험하신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뿐만 아니라 고통과 슬픔, 외로움과 절망의 현장에서도 건져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 앞에서 ‘외롭다.’, ‘상처받고 버림받았다.’, ‘나는 쓸모없고 가치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예수님을 믿고 복받은 하나님 자녀다. 주님이 내 슬픔과 고통을 다 아시고 나를 인도해 주신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와 치유와 회복이 우리 삶에 풍성히 임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기적 / 이영훈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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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히브리서 4장 16절
구약 시대에는 1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갔지만, 오늘날 우리는 원하는 때 언제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그분 몸으로 친히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고,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휘장을 찢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는 우리 힘으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예수님 보혈에 힘입어 나아가면 하나님의 긍휼을 얻고, 제때 주시는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으로 죄의 사슬이 끊어졌기에 우리는 언제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 아서 핑크
오늘의 기도
주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시고 정확히 판단하시는 말씀의 능력 앞에 제 삶을 세웁니다. 추악한 저를 낱낱이 아시고도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가장 정확 한 때에,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간구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00 달고 오묘한 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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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며,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친히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대제사장이 되어 주시고, 죄 많은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어 주시고, 몸소 희생 제사를 드려 주신 주님의 그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고, 늘 감사를 올려 드리도록 하자
②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시고, 기꺼이 그 모진 고난을 받으시고, 순종하신 주님의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지 가슴 깊이 새기고, 또 아버지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받으들이실 수 있게 하여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분의 일꾼으로 맡겨 주신 일에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③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영원한 구원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면서, 주님의 참 일꾼이 되도록 노력하자
9월6일 동인천 지하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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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고 했는데, 이는 곧 능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아 있지 않는 것 곧 죽은 것에는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1866년 8월 미국의 상선 한 척이 조선 땅에 들어왔습니다. 제너럴 셔먼호의 통역사인 토마스라는 사람은 평양 대동강까지 들어와 체포됩니다. 그는 참수형을 당하면서도 한자로 된 성경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친 ‘박춘권’이라는 사람은 그 책을 읽고 변화되어 평양교회의 장로가 됩니다. 그리고 질 좋은 종이라고 자기 집 벽 종이로 사용한 ‘박영식’의 집은 나중에 평양 장대현 교회가 됩니다. 종이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의 능력입니다.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변합니다.
시대와 사상, 철학, 자연과학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질은 입자보다는 파동으로 관측될 수 있다는 양자역학으로 인해,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도 진단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어제까지 아니 방금전까지 굳게 먹은 마음이 바뀌는 것이지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것은 부동입니다. 세상을 창조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말씀이 변한다면 우주는 혼돈에 빠지고, 지구는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문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파워가 있습니다. 예리하여 사람의 영혼을 파헤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과 동기를 분별해 낸다는 점입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 어루만져 줄 수 있고,
실력이 좋은 선생님은 학생들의 마음을 알아 오답 노트가 되어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수의사가 힘든 것은 동물들이 말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탁월한 수의사는 동물들의 마음을 압니다. 그래서 아픈 데를 정확히 판단해 고쳐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람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정확히 마음의 생각과 뜻을 아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데, 사람이나 상황이나 환경 등을 통해서 하십니다.
하지만 분별력이 약하거나 훈련이 되어있지 않는 사람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으로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신비한 점은 그 말씀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려 3,000년 전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말씀으로 들린다는 점입니다.
그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그것을 체험하고 깨달은 사람은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해부할 수 있습니다. 낱낱이 드러나니 두렵습니다. 그래도 나아가야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그분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과 싸워 도무지 이길 승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성경을 읽습니다. 내일도 읽을 것입니다. 단 한 순간도 성경을 놓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들어야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우리 문제의 해결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계시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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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인 믿음생활을 하십시오
본문:히 4:12-16
우리의 믿음생활이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가장 실재적이어야 합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하는 식의 믿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믿음생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께 고백하는 실재적인 믿음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속에서 실재적인 믿음생활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13절) 이 말씀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선악간의 모든 일이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특히 인간의 삶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수기운 것이 하나없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벌거벗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도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성공적으로 숨겨지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숨기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드러날 것임을 알고 미리 부끄럽지 않도록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심판의 때에 하나님 앞에 드러나기 전에 우리는 오늘 우리의 허물과 죄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일찍 드러내어 고쳐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12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운동력을 가져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은 바로 이 운동력을 느껴야 합니다. 이 운동력이 그 안에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은 우리의 깊은 내면의 것까지 다 드러냅니다. 말씀은 우리의 여러 생각과 유혹과 합리화를 구분합니다. 무엇이 내 생각이고 무엇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인지 구분하게 합니다. 때로는 말씀을 보아도 혼동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말씀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며 시간이 지나면 말씀이 무엇을 말하였고 나의 어떤 생각이 말씀을 혼동케 하였는지 구분이 갑니다. 말씀은 예리한 검과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분명한 구분을 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심판의 때에 우리 안에 거짓과 죄악으로 가득한 채 우리가 벌거벗김을 당하기 전에 말씀으로 우리 자신의 깊은 내면의 거짓까지도 드러내고 치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위로만 받으려 하지 마시고요. 말씀으로 우리의 거짓을 드러내고 치유하십시오. 우리의 영혼은 말씀으로 드러나고 치유되어야 합니다. 속은 썩어져 가고 있는데 막연한 희망으로 단지 피상적으로 "잘 될거야"라는 말만 반복하지 마십시오. 구체적으로 말씀으로 치유하는 삶을 사십시오.
실제적인 믿음생활을 하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15절)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그 중보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더 잘아시고 이해하시며 공감하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첫째는 그 분 앞에 우리가 너무 나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이 아닌 나태함도 잘 아십니다. 우리는 연약함과 나태함을 잘 구분해야합니다. 그 분은 직접 체휼하신 분이기 때문에 연약함과 나태함을 잘 구분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태함을 연역함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나태함은 연약함과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겉으로는 비슥합니다. 그러나 그 안은 정반대입니다. 연약함은 하려고 하나 연약하여 하지 못하는 것이요, 나태함은 할 수 있느나 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음에도 나태하여 하지 못하고 연약한 채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기 보다는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을 그렇게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은 실제적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때에 예수님의 도우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연약하여도 담대히 앞으로 나가십시오. 연약하여도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가십시오. 포기하여 먼저 넘어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아직 당신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연약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가 넘어지기 전에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예수님은 몸소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나약함까지도 몸소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속일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어 아십시오. 많이 드러내어 실제적인 믿음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두려움과 나태함에 숨어 있지 말고 말씀앞에 자신들 드러내고 치료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가 치료하십시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가시도록 내 맡기십시오. 오늘 하루하루 내안에서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십시오.
각주> 12절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속의 깊은 것의 미묘한 숨겨진 차이들까지도 드러내고 진리를 들 수 있게 하는 말씀의 특성을 말함
13절 상관하시는 자 관계된 분. 우리가 계산(기억)해야만 하는 분으로서 하나님을 의미함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 안식에 들어갈 것을 또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저 안식으로 이끄시는 실패를 모르시는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4:14)
또한 우리의 대제사장은 군림하는 대제사장이 아니라,
우리의 눈높이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항상 도와주시는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제사장은 친히 자기 피를 가지고 땅에 있는 성소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해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갈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을 다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을 의지하면 저 안식에 넉넉히 들어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10~11)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2)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며, 큰 대제사장의 이름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간구하기 원합니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광야에서 한 줌의 흙으로 묻혀버린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그 말씀의 수술대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길만이 우리에게 사라져가는 생명력을 새롭게 할 능력을 주고 우리의 영혼에 암덩어리와 같은 반역을 도려낼 수 있는 메스와 같이 결국 우리를 치유의 길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아무런 감정 없이 수술하는 의사와 같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보다 더 극심한 아픔도 감당할신 십자가의 수치와 고통을 감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넘치는 자비와 한없는 긍휼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그 어떤 이들에게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오직 의지할 그분 앞에 모든 인생의 짐과 무게를 내려놓고
오직 보혈의 능력을 구하며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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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씀에 붙잡히는 삶이어야 합니다(12~13절).
오늘 우리가 온전히 순종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습니다. 마치 예리한 검처럼 우리의 환부를 도려내고 고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비참한 죄악 가운데 있던 인간은 말씀 앞에서 벌거벗은 것과 같이 죄와 허물은 물론이거니와 생각과 뜻조차 그대로 드러냅니다.
말씀에 붙잡힐 때 우리의 속사람이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과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살아 있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 서게 될 때, 내 자신이 철저한 죄인 됨이 더욱 명확해 지는 것입니다. 내 삶의 평가하는 척도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영혼의 수술을 통해 우리를 온전한 구원에 완전한 안식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여 말씀에 붙잡히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으시므로 은혜의 보좌로 인도하십니다(14~16절).
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큰(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14절). ‘큰 대제사장’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은 이제까지 성전에서 섬겨 온 다른 제사장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대제사장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당한 고난을 예수님도 똑같이 경험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능히 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15절).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은혜의 보좌 앞에 즉 법궤 앞에서 때를 따라 우리를 도우시는 은혜를 얻으라고 권면(16절)하고 있습니다. 법궤 앞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차례 들어갈 수 있는 지극히 제한적인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우리는 구약의 대제사장보다도 더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나의 죄와 연약함을 아십니다. 육체의 피곤함과 연약함을 아십니다. 오늘 나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고, 이해하셔서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 그 이상을 주님은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그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중보자가 되시는 우리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한한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시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인도해 가십니다.
오늘도 이 땅에서부터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의와 희락과 기쁨,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하심과 보호하심을 소망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애쓰며, 자신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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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를 잇는 다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은 사람이면서 죄인이었기에 그 역할을 맡기에 부족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시험을 똑같이 받으셨으면서도 죄가 없으시기에 대제사장으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론의 후손이 아닌 점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아론을 불러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계통)를 따른 대제사장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보다 더 위대하고 완전하신 대제사장이시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완벽한 중재자이십니다. 옛 대제사장 덕에 옛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의 중재를 받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더욱 견고함이 분명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14-16절 :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옛 이스라엘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서도 지성소에 있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대제사장의 중재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누렸듯이, 우리는 광야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 예수님의 중재 덕에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당당히 은혜를 구합시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버거울 때마다 포기를 생각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출처 : 매일성경 7/8월호
주님 때문에 살 길을 얻었다.
친히 고통 당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도 다 아신다.
연약함을 도우시기 원하신다.
내가 기도 못할 때에도 친히 기도로 도와주신다.
극한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힘 입어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근심 걱정 밀려올 때라도 의지할 분은 예수님이심을 기억하자.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없을지라도 채우실 것을 기대하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 하셨으니 그 능력을 의지하자.
친히 고통 당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시지 않은가?
이길 수 있는 힘을 도우실 것이다.
이 하루도 낙망되는 일에 빠지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소망을 갖자.
광야의 길을 걸을지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리라.
오늘도 의지할 분은 오직 주님 뿐임을 믿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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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자들은 이미 안식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안식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에너지를 힘써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우리를 다스리는 증거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주신은 안식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知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월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존귀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완전한 인간, 완전한 신)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이암아 들으심을 얻음
☆ 대제사장은
1)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선택된 대표자이며 (1절)
2) 자신의 연약을 알고 백성을 동정할 수 있으며(2절)
3) 하나님의 주권적 임명에 의해 세움을 받은 자이다 (4절)
☆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후손이므로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어떻게 정통성을 설명할 수 있는가?
저자는 아론의 대제사장직이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므로 그리스도가 아론 계통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이 세우시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아론 이전의 멜기세덱 계통을 따르는 것이라 하여 그 정통성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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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도우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그 은혜의 보좌 앞에 엎드립니다.
믿는 우리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합니다.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신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백성을 위한 속죄제도 드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렸듯이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단 위에 자신을 완전한 희생제물로 단번에 영원히 드리신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가 겪을 시험을 모두 받으시고,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으니 그 구원을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드리옵니다.
옛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서도 대제사장의 중재로 지성소에 있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누렸듯이
광야 같은 인생 길을 가는 동안 우리도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중재에 힘입어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을 받을 수 있으니 감사를 드리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하나님의 최후 심판으로 부터 보호해 줄 것임이 확실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서 무한 감사를 드리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잡으신 손을 놓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고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아
날마다 그 복된 소식 증언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이끌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