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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의 자리에 던져진 은혜의 밧줄 (히3-12)
2026년 6월 29일 (월요일)
찬양 : 시선
본문 : 히12:1-29절
☞ https://youtu.be/JQgAanJ0_Aw?si=xWaJv316c26btjon
주일에 작은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드리며 주님을 기억하며 그분을 경배하는 자 되려고 몸부림을 치며 주일을 보내고 또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다. 2026년 상반기가 이제 금주로 끝이 나고 하반기가 시작된다. 시간의 빠름을 실감한다.
오늘은 내일 있을 공동체 예배를 준비한다.
지금 나의 상태는 예배를 준비하고 사역을 감당하는 일이 설렘이 아닌 부담이 되어 빨리 내려가 나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런 내게 주님은 오늘 무엇을 말씀하실까?
히브리서 12장은 영적 침체에 빠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고, 오늘을 믿음으로 살며 영적인 침체를 경험한 이들에게도 소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히브리서가 가진 삶의 자리를 다시금 살펴보자.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길어지는 핍박과 고난 속에서 '영적 탈진' 상태에 빠져 있었다. 히브리서는 로마의 대화재가 일어난 64년 이후 네로 황제가 모든 원인을 기독교에 전가하면서 생긴 대 핍박의 시대에 쓰여진 성경이다.
그 상황에 성도들은 4절에 고백한 대로 <너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기록한 것처럼, 순교의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투옥과 재산 몰수 등의 고난이 지속되고 있었다. 핍박으로 인한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성도들은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라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과 의심이 솟아나던 시기며 유대교로 돌아가는 이들이 발생하던 시기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영적 침체의 늪에 빠진 성도들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세 가지로 전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징계가 버림받음이 아니라 참 아들의 증거라는 선언이다. 8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여기서 히브리서는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징계(파이데이아, παιδεία)'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이 단어는 판사가 범죄자에게 내리는 형벌이 아니라,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를 훌륭한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행하는 '엄격한 교육과 훈련'을 뜻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신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사생자'가 아닌 '친아들'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외친 것이다. 그러기에 이 훈련에는 목적이 있다. 10-11절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징계는 고생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10절)' 하고 '의와 평강의 열매(11절)'를 맺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선포한다. 28절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브리서 저자는 바로 앞 구절에서, 세상의 모든 것—로마 제국의 권력,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 우리의 재산과 육신의 건강까지—은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진동하고(흔들리고) 사라질 것들'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았다고 선포한다.
여기서 '받았은즉(파랄람바논테스, παραλαμβάνοντες)'은 현재 분사형으로,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영원한 나라를 계속해서 누리며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세상의 경제가 흔들리고, 내 건강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평가가 요동쳐도, 내 안에 심어진 하나님 나라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를 흔드는 상황(고난) 때문에 핏값으로 우리를 사신 복음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 기회는 그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은혜를 받고 감사를 고백하며 예배하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혁명적 선언이다.
세 번째로 히브리서는 영광스러운 경주를 완주하기 위한 유일한 비결로 지금은 크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할 때라는 것이다. 1-2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써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 2절의 <바라보자(아포론테스, ἀφορῶντες)>란 두 개의 헬라어가 합쳐진 합성어다.
아포(ἀπό): '~로부터 멀리(away from), ~에서 떠나'
호라오(ὁράω): '보다, 시선을 두다(to look, see)'
즉,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의 핵심은 <지금 내 시선을 빼앗고 있는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look away), 오직 한 대상에게만 시선을 완벽하게 고정하는 것(fix one's eyes upon)>을 뜻한다.
나의 믿음의 창시자(Author)요 십자가의 수치를 참으시고 마침내 승리하신 '우리의 영원한 앵커 주자'이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경주자는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해서는 안 된다.
설렘을 잃고 전반전의 삶을 정리해야 하는 시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주님은 오늘 세 가지로 나에게 말씀하신다.
첫째, 이 시간은 끝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며,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자녀만의 특별한 훈련의 시간'이라고 하신다.
둘째, 이 시간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은 자로서 마땅히 '은혜를 굳게 붙잡고 감사해야 할 때'라고 하신다. 오늘 이 말씀이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다.
셋째, 그러기에 지금은 내 시선을 빼앗는 흔들리는 상황들로부터 눈을 돌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께만 시선을 완벽히 고정시켜야 할 때'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의 친아들이기에 반드시 거쳐야 할 온전한 훈련코스라는 사실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이 훈련의 핵심은 결국 나를 진실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참된 예배자'로 세우시는 데 있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흔들리는 것들로 채우려 했던 나의 예배가,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은혜를 누리며 감사하는 진정한 예배로 변화되기 위해 오직 예수님께만 시선을 고정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오직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며 나아가겠나이다.
한줄 묵상 :
<인생의 흔들리는 시간은 예수님께만 완벽히 시선을 고정하며 진짜 예배자로 빚어질 때입니다.>
적용질문 :
1. 현재 나의 삶과 섬김의 자리에서 기쁨과 설렘을 잃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무거운 짐'처럼 여겨지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2. 뜻대로 풀리지 않는 답답한 현실과 고난을, 하나님의 '친아들로 빚어내시는 훈련'으로 받아들일 때 내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3. 흔들리는 세상의 평가나 나의 연약함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오직 예수님께만 완벽하게 시선을 꽂기 위해 오늘 내가 결단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