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마리아 성모님을 사랑합시다 “정주, 경청, 순종”
2026.3.25.수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이사7,10-14;8,10ㄷ 히브10,4-10 루카1,26-38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시편40,8ㄴ과 9ㄱ)
자비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바로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이런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마땅한 응답이 감사와 더불어 찬미입니다.
바야흐로 피스카의 봄철, 파스카의 봄새싹들이 곳곳에서 돋아나고 파스카의 봄꽃들, 민들레, 제비꽃등 여러 들꽃과 더불어 샛노란 산수유꽃도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오래 전 써놓고 애송했던 <봄햇살 붓으로> 란 시가 생각납니다.
“오, 하느님 붓으로
바야흐로 그림 그리기 시작하셨네
생명의 화판 대지 위에
부드러운 봄 햇살 붓으로
연한 초록색 물감
슬며시 칠하니
조용히 솟아나는 무수한 생명의 새싹들
피어나는 초목의 꽃들
오, 하느님 붓으로
당신의 화판 봄의 대지 위에
그림 그리기 시작하셨네”<2009.3. >
바로 17년전 이때쯤 시입니다. 해마다 파스카의 봄철 되면 우리가 살게 될 대지위에 봄햇살 붓으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자비하신 하느님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영원히 믿고 희망하고 사랑할 분은, 신망애의 대상은 이런 하느님뿐입니다.
바로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앞서 3월19일 성 요셉 대축일과 쌍벽을 이루는 성모님 대축일로 흡사 사순광야시기에 맞이하는 오아시스와 같은 위로와 평화의 대축일로 이 또한 자비하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께서 오랜 기다림 끝에 결정적 때가 되자 구원의 섭리 활동을 펼치십니다. 주님은 나자렛의 마리아 처녀를 당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찾아 오신 것입니다. 바야흐로 제1독서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이름뜻의 <임마누엘> 예수님! 얼마나 은혜로운 이름인지요! 깊이 들여다 보면 주님과 하나되어 사는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 역시 또 하나의 은혜로운 이름 <임마누엘>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이런 미천한 처녀 마리아를 방문하는 겸손으로 표현됩니다. 바야흐로 보잘 것 없는 변방의 나자렛이 중심지로 부각되는 순간입니다. 과연 마리아 성모님은 어떤 분이셨기에 하느님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첫째, 마리아 성모님은 <정주의 사람>이었습니다.
정주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늘 거기 그 제자리에서 한결같이 충실히 제 책임의 몫을 다하며 제대로 살았던 정주와 인내의 마리아를 하느님은 당신의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방문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눈밝으신 하느님께서 이런 마리아를 놓치실리 없습니다. 오매불망 꿈에 그리며 사랑하던 마리아를 겸손히 찾아 나서 만났을 때 기뻐 환호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정주의 믿음, 정주의 인내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누가 보아주든 말든 제자리에서 제 몫의 책임을 다하며 묵묵히 정주의 삶을 살아 온 믿음의 마리아를 찾아 오신 주님입니다.
둘째, 마리아 성모님은 <경청의 사람>이었습니다.
경청 또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침묵의 경청, 경청의 겸손, 경청의 관상입니다. 잘 귀를 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경청은 기도와 대화의 기초입니다. 주님의 천사 가브리엘의 호의 가득한 인사말에 놀란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하여 마음이 담아둡니다.
위대한 영혼의 능력은 이처럼 담아두는 마음의 능력에 있다 합니다. 바로 마리아는 관상의 대가. 렉시오 디비나의 대가임을 깨닫습니다. 언제나 주님 말씀을 경청하며 마음 깊이 담아두고 곰곰이 깊이 되새겼을 마리아입니다. 주님 천사의 활동은 그대로 하느님 마음의 표현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그대로 이런 하느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이어 마리아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축복이 차고 넘칩니다. 모두가 책임이 따르는 축복입니다. 하느님의 마리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흡사 요셉에게 천사를 통해 구원섭리의 속내를 다 밝혔던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역시 그 속내를 다 밝히십니다. 참으로 깊은 경청으로 표현되는 믿음의 마리아는 우리 믿음의 영원한 모범입니다.
셋째, 마리아 성모님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의 겸손, 순종의 믿음입니다. 순종을 통해 검증되는 겸손이요 믿음입니다. 모든 속내를 다 밝혔을 때 가브리엘은 물론 하느님께서도 조마조마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절대 일방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자발적 협력하에 구원 역사를 펼치십니다. 이점에서는 전능하신 하느님도 무능합니다. 하느님께서 상대방을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새삼 하느님의 무궁한 인내의 믿음, 인내의 사랑에 감탄하게 됩니다. 마침내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순종의 절정, 믿음의 절정입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역시 요셉의 순종때처럼 하느님께서도 마리아의 순종의 믿음이 참으로 고마웠을 것입니다. 모전자전, 이런 마리아 성모님의 순종을 그대로 보고 배웠을 예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바로 제2독서 히브리서에서 두 번이나 계속되는 예수님의 기도가 이를 입증합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새삼 마리아 성모님의 순종의 믿음은 그대로 아드님 예수님께 계승되고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주님의 이런 믿음은 우리에게 전수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궁극적 삶의 목적과 이유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평생 묵상하고 실행할 사항이 구체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주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 또 하나의 임마누엘이 되어 나에게 주어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마리아 성모님을 닮아 믿음의 사람으로, 즉 정주의 믿음, 경청의 믿음, 순종의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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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리아 성모님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의 겸손, 순종의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