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大韓帝國) 순종(純宗) 황제(皇帝)의 마산(馬山) 행차(行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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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者 註]
관련(關聯) 기록(記錄)에 따르면, 순종(純宗)은 1909년 1월 7일 오전(午前) 특별궁정열차(特別宮廷列車)를 타고 남대문역(南大門驛)을 출발(出發)하여 대구(大邱)와 부산(釜山)을 거쳐 10일 오전(午前) 11시 25분 마산역(馬山驛)에 도착(到着)하였습니다.
위에 인용(引用)된 그림을 살펴보면, 행렬(行列)이 지나가는 방향(方向)의 도로(道路) 오른쪽(右側)에는 일본식(日本式) 건물(建物)들이 잘 보입니다.
청계천(淸溪川) 책방(冊房)에서 옛날 사진(寫眞)들을 모아서 만든 <1백(一百) 년전(年前) 사진첩(寫眞帖)>이라는 자료(資料)에도 부산(釜山), 마산(馬山), 진해(鎭海), 대구(大邱), 평양(平壤) 등(等)의 인구(人口)가 많은 곳에 일본인(日本人) 상가(商街)가 즐비(櫛比)한 사진(寫眞)들이 있다고 합니다.
첫댓글 대한제국의 성립 후에는 그 정치체제를 놓고 개화파인 독립협회파와 집권한 친로수구파 사이에 정치적 견해가 크게 대립되었다. 독립협회는 열강이 침략을 시작하여 이미 이권을 많이 빼앗아간 조건에서 전제군주제는 취약한 것이므로, 국민에게 참정권을 주고 의회를 설립하여 국정의 중요한 사항과 외국과의 모든 조약은 반드시 의회의 동의를 얻어 통과해야 효력을 발생하는 <입헌대의군주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집권한 수구파는 전제군주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의회를 개설하여 입헌대의군주제를 만드는 것은 민권을 신장시키고 군권(君權)을 감소시켜 황제의 지위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키백과/정조편: 정조(正祖, 1752년 음력 9월 22일 ~ 1800년 음력 6월 28일)는 조선의 제22대 임금이다.
휘는 성(祘)[1],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 사후 시호는 정종문성무열성인장효대왕(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이며 이후 묘호가 정종에서 정조로 바뀌고
'''대한제국 때 선황제(宣皇帝)로 추존'''하고 존호를 더하여 정식 시호는 정조경천명도홍덕현모문성무열성인장효선황제(正祖敬天明道洪德顯謨文成武烈聖仁莊孝宣皇帝)이다.
즉=> 대한제국과 정조는 관련이 있었다라는 이야기 인데요....
개인적인 시각입니다만, 조선의 마지막 왕은 고종이나 순종보다는 '정조'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 이후의 갈등은 그 왕권을 끝가지 유지하려했던 세력과 이미 그것을 버린 세력간의 갈등으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한제국의 한계는 정조이후 왕권에 집착했던 세력의 그룹이 대한제국의 중심세력으로 재 등장했다는 데에 있지 않을런지요?...
조선반도는 동학전쟁 실패후...청일전쟁후... 아니,애저녁의 프랑스의 북경침략 때 부터... 이미 청조의 영향권에서 양이들과 왜노들의 영향권으로 넘어갔다 보이니...
당연 조선반도 남녘 도시들에 섬 원숭이들의 판자집 잡상인 상가가 난립했을 가능성 많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