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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주일설교.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사도행전 2장 29~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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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간의 사순절이 지나고 부활절의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무한한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의 소망과 영생복락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바라며, 예수님이 부활 하신 것 같이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모든 면에서 강력한 부활의 능력이 회복의 역사로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고린도 전서 15장을 일컬어 ‘부활장’이라고 부릅니다. 이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만약 죽은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5:13), /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15:14), /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15:17), /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부활을 믿다가 이미 죽은 자들) 자도 망하였으리니(15:18),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15:19)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기독교에서 부활이라는 의미는 그야말로 “All or Nothing”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최종적으로 부활 사건을 이렇게 정의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아멘.
이 말씀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죄 가운데(죄의 노예로) 있지 아니하며, 그리스도를 믿다가 이미 죽은 자들도 반드시 다시 살아날 날이 올 것이며, 부활을 믿는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뜻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인생의 대 반전이 부활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할 것 같은 “Nothing”의 상황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All”의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부활 사건은 온 인류에게 내려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최대의 은혜요, 최선의 반전을 이룬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 하시고 제자들에게 두 마디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눅 24:36)라는 말씀과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눅 24:38)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부활 하신 이유가 바로 이 두가지 선물(은혜)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상황속에서도 마음에 평강(평안)을 지니고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심으로 모든 두려움을 물리쳐 주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부활 영생을 의심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살아가게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우리 주님을 순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일평생 평안과 믿음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 번 부활의 은혜와 능력이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축복하며, 일평생 우리 주님과 동행하시며 평안속에서, 믿음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기쁨으로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약 내 주변에서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 사실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마 단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자기의 눈으로 직접 학인하지 않고 그런 소문을 100% 믿는 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다는 괴상한 소문이 예루살렘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는 소문도 들렸고, 무덤에 들렀던 여인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의심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했던 제자들 조차 자신의 두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으시죠. 아멘으로 대답하시는 여러분의 믿음이 대단 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신 대로 여러분들은 참으로 복되고 복된 분들이십니다. 부활 후에 제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은 부활의 소문을 전해 듣고도 도무지 믿지 아니하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다(막 16:14) 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의심이 많다고 혼이 났지만, 부활절에 우리 교회를 찾아 오신 주님은 너무나도 기쁘실 겁니다. “내가 살아났다는 소문만 듣고도 그 사실을 철썩 같이 믿어주는 너희들의 순전한 마음을 보고 내가 심히 기뻐하고 칭찬하노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저도 여러분을 많이 칭찬해 드립니다. 너무나 잘 하고 계십니다. 계속 부활의 영광과 은혜 가운데 곧장 하나님 나라로 나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두려워하고 의심했던 제자들이지만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눈으로 보게 되었고, 40일 동안 부활의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로 영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보는 경험이 있어야만 진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육성을 종합해 보면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내 두 눈으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똑똑히 보았는데, 그 분이 나를 찾아오셔서 일생 동안 내 곁에 함께 계시면서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내가 어떻게 그 분을 부인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결코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유언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야만 비로서 완성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만 믿음이 반석위에 굳건하게 자리잡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만 예수님이 구원자(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담대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만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고 충성하고 헌신하면서 영생의 나라를 향해 당당하게 전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부활이 아니고서는 이 모든 것이 차례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직후에 제자들은 세상이 무너지고 인생이 다 끝난 것 같은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 하신 것을 직접 목격한 이후에는 그들은 더 이상 낙심과 슬픔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 하셔서 당장 눈 앞에 안 계신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근심하는 제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오직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 하나만을 굳게 믿고 함께 모여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열흘이 지난 후에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은 더 이상 예전의 두려워하고 의심이 가득했던 나약한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강력한 믿음의 사람으로, 강력한 부활의 증인으로, 강력한 복음 전파의 사명자로 거듭 났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을 보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시는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의 믿음과 성령 하나님을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 진짜 주인공들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첫 번째 복음 전파의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베드로였고, 이 날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난 후에 신도의 수가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고 하니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어마어마 했었는지 가늠조차 되질 않습니다.
고기잡이 어부출신의 베드로가 갑자기 돌변하여 엄청난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서 뭇 사람들을 감동 시키는 대단한 웅변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제일 놀란 사람들은 몰려든 군중들이 아니라, 같이 생활하던 동료 제자들이었을 겁니다. 우리 각자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베드로 사도처럼만 하시면 됩니다. 베드로 사도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설교한 시간이 제 삼시, 우리 시간으로는 오전 9시 였습니다.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여러 나라 말로 방언을 말하자 사람들은 제자들이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하게 된 것임을 설교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설교 내용이 길기 때문에 세세하게 내용을 다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설교 내용의 핵심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는 32절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윗 왕을 예로 들어 증언 하기를, 다윗 왕은 죽어서 무덤에 있지만 그가 살아 생전에 먼 훗날 이러한 부활의 사건이 일어날 줄을 미리 알았으며, 자신의 영혼이 음부에 버려지지 않을 것이며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그 예언의 말씀대로 에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내용입니다. 다윗왕은 부활의 예언자였고, 베드로 사도 자신은 부활의 목격자이며 증언자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33절을 읽어 드립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아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셨고, 오른손으로(권능, 권위)로 예수님을 높여 주셨습니다. 높여 주셨다는 의미는 빌립보서 2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아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만주의 주, 만왕의 왕, 만인의 심판주로 높여 주셨습니다. 높임을 받으신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 주셨고, 그 성령이 내게(베드로 자신 에게) 말하게 하심으로 너희들이 지금 술취했다고 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된 것이고, 내(베드로)가 말하는 부활의 증언을 듣게 된 것이라고 설교 했습니다.
일이 되어진 순서를 정리해 드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 살려 주시는 일이 일어났고, 살아 나심으로 인해 높임 받으시는 일이 일어났고, 높임 받으심으로 인해 성령님을 보내 주신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는 겁니다.
말할 것도 없이 지금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있는 현재적 상황이 일어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점은, “하나님이 이 예수를 살리신지라”,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확실하게 부활 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역사의 현장임을 강력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아마 저 현장에서 “하나님이 이 예수를 살리신지라” 라는 베드로 사도의 선포을 들은 군중들의 온 몸에는 전기에 감전된 듯한 강한 전율이 흘러 넘쳤을 겁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시 다윗왕의 이야기를 합니다. 34, 35절을 눈으로 보시면 제가 설명해 드립니다. 34절,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하나님) 내 주(예수님)에게 말씀하시기를, 35절, 내(하나님)가 네(예수님) 원수로 네(예수님)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네 발 아래 무릎끓게 하기 까지-사탄이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는 최후 심판의 그날까지) 너(예수님)는 내(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아멘.
이 말씀은 다윗이 지은 시편 110편 1편“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을 인용한 것입니다.
다윗왕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높임 받으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실 것과 최후의 심판자로서의 권세를 지니고 계심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예언한 이 시편 말씀의 핵심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윗왕이 천년 전에 예언한 말씀과 지금 자신이 성령으로 선포하는 내용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모든 군중들에게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단 것에 설교의 방점을 두고 있지만, 예수님이 왜 죽임 당하셨는지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 갑니다.
36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아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셨고 또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으나, 너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았다는 두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둡니다. 부활 신앙을 갖는 다는 것은, 누가 예수님을 살리셨고,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살리신 분과 죽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부활 신앙은 전혀 형성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너희들, 즉 이스라엘의 온 집(유대인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유대인들에게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우리들 때문에, 나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죽게 만든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이 확인 되고, 인정 될 때 비로소 믿음이 생기고, 회심의 기회가 주어지고, 부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십자가 죽음에 대해 설명 하시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빵을 훔치다 5년형을 선고 받은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과 수십명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 살인범 중에 누가 더 중대한 범죄자 입니까?”, 당연히 살인범이죠. “그럼 연쇄 살인범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인 사람들 중에 누가 중대한 범죄자 입니까?” 당연히 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들이죠.
교수님이 말씀 하시길, “네, 맞습니다. 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은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중대 범죄자들입니다. 그 중대 범죄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이 교실 안에 있는 나와, 여러분 모두입니다. 우리는 신을 죽인 용서 받지 못할 범죄자 중의 범죄자들입니다. 나는 신을 죽인 범인입니다. 내가 신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나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다“는 사실이 깨달아 지고, 찔리는 마음이 생겨 견딜 수 없을 때, 여러분은 진정으로 부활신앙의 강력한 믿음을 경험 하시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교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을 겨냥해서, 너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다고 말했지만, 우리들은 “나 때문에, 내 죄 때문에, 내 사망과 형벌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나는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다” 라는 절절한 신앙고백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이 고백은 부활절을 기점으로 매일 같이 내 삶에서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나 때문에 나의 주님 예수님이...”라는 고통스러운 고백이 진실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참회의 눈물이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온다면, 그 이후에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하나님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라는 부활의 메시지가 들려 오면서 평안가 기쁨의 은혜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다는 철저한 부활 신앙의 믿음 vs 나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참회, 이 두가지가 균형 있게 작동 할 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만큼 성장하고 인정 받게 될 것입니다.
구름 같이 모인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너희가 십자가에서 예수를 못 박았다”라는 말에 반응이 나왔습니다. 37절에, 그들(군중들, 특히 유대인들)이 마음이 찔렸다고 하면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38, 39절을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 드립니다.“38.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세례 받고, 용서함 받고, 성령 받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에, 복음의 선포를 들으면 찔리는 마음이 생기고, 돌이키려는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내 가족, 내 이웃에게 이런 기회를 우리들이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에 다 기록되지 않았지만 베드로 사도가 다른 많은 말로 구원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는데 그 숫자가 무려 삼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숫자 이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면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더 많은 숫자의 부흥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삼천명이나 되는 이 많은 사람들은 이 후에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4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아멘.
한 번 은혜 받고, 한 번 성령 체험을 한 경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회심한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 시키고, 변화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공동체를 이루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엄청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현장에는 어부 출신인 베드로가 있었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강력한 선포(설교)가 있었습니다. 그 설교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는 부활을 증거하고, 부활을 증언하는 설교 였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부활 신앙으로 확실하게 무장한 베드로는 더 이상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완벽하게 변신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베드로가 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나도, 여러분도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부활절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정리해 드립니다. 꼭 가슴에 새기십시오.
① 부활 신앙이 없으면 내 믿음도, 내 소망도, 내 구원도 헛 것이 됩니다. 남의 이야기만을 듣지 말고, 내가 경험하고, 내 눈으로 보고, 내 입술로 부활의 예수님을 날마다 고백 하십시오.
② 평생동안 내 입술에서, “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과,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이 예수를 나의 주인, 나의 구원자, 나의 왕으로 영원히 모시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라는 선포를 멈추지 마십시오. 매일 매일 감사의 고백으로 영광 돌리십시오.
③ 베드로에게서만 삼천 명을 회심시키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베드로처럼 강력한 성령 충만, 복음 충만으로 무장하여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살리시고,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우리 주님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일평생 전하며 살겠습니다. 선포하고 실천하는데 내 일생을 바치겠습니다. 충성되고 헌신 된 제자의 길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부활절 아침에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에게 성령 충만의 은혜가 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이는 영안이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죽인 죄인이라는 참회가 날마다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살리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그 분이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 되심을 날마나 고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의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여 내 가족과 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 사용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죽겠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다시 살려내실 겁니다. 굳게 믿고, 소망하고, 부활의 증인으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승리의 길, 기쁨과 평안의 꽃길 만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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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죽음과 사망의 형벌에서 벗어나게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항상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자랑하고, 증거하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며,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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