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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문정왕후의 태릉ㅡ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도첩제를 실시하여 승려를 뽑고 전국 300여 개의 절을 공인하는 등 당시의
유교지향 정책을 무시하고 불교 중흥을 도모하였다.
양주 회암사에 있던 승려 보우를 맞아들여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고 훗날 중종과 함께 묻힐 요량으로 봉은사
근처(정릉)에 중종의 능을 천장하기도 하였다.
폐지되었던 승과를 부활시켰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불교 교단은 활기를 띠고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유생들은 문정왕후의 불교 중흥 노력에 심한 반발을 시작했다.
각지에서 보우를 타도하라는 상소와 종단 및 승과 폐지의 상소가 빗발쳤다.
요승 보우를 죽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다 못해 성균관 유생들이 성균관을 비우는 집단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문정왕후는 불교 중흥 정책을 그만두지 않았으며, 그녀의 지원을 받은 보우는
도대선사가 되었다.
그러나 문정왕후가 승하하자, 성난 유생들은 회암사로 몰려가 불상의 목을 자르고 절을 불질러 버렸다.
명종 역시 문정왕후의 불교를 중흥하라는 유언을 무시하고 깊은 산 절로 도망친 보우를 체포하였다.
전국에서 보우를 처형하라는 여론이 빗발치기 시작하였고, 율곡 이이 등이 이를 만류하였으나,
명종은 보우를 제주도로 유배 보냈다.
보우는 이곳에서 험악한 여론을 살피던 제주목사 변협에 의해 결국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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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에 어찌그런일이 ᆢ ㅋ ㅋ
잼나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읽고 마음에 새겨봅니다 감사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길이라도 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며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성취의 한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