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논어』 1편(2-1)
인과 예가 펼쳐진 좋은 세상을 꿈꾸다
춘추시대의 시작
기원전 770년, 주나라의 수도 호경(장안 근처)이 불타오릅니다. 원인은 신후(申侯)의 반란이었습니다.
그 당시 주나라는 유왕(幽王)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신후는 유왕의 장인입니다.
유왕이 포사에게 빠져 황후를 내쫓자, 화가 난 황후의 아버지 신후가 견융족을 데리고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유왕은 살해당하고 평왕이 황위를 잇지만, 강성해진 견융족이 문제였습니다.
수도를 약탈하고 주나라를 압박합니다. 힘에 부친 평왕은 어쩔 수 없이 호경(지금의 시안 근처)을 버리
고 낙읍 (지금의 뤄양)으로 천도합니다. 그에 따라 주나라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주나라가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으로 천도한 이후를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주나라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전의 주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황제의 권위가 실추되고,
제후들의 힘이 강해져 서로 패권(우드머리) 다툼을 벌이게 되었으니까요.
역사가들은 낙읍 천도 이전을 ‘서주시대’, 이후를 ‘동주시대’라고 부릅니다. 춘추전국시대가 곧 동주
시대인 것이죠. 춘추전국시대는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원전 221년까지 계속됩니다.
구슬을 파는 사람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아름다운 구슬이 있다면 상자에 넣어서 보관해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상인에게 파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합니다.
“팔아야지. 팔아야 하고말고. 나는 상인을 기다리고 있다네.”
공자는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상인을 만나 자신의 재능을 팔려고 했습니다.
좋은 상인은 뜻을 알아주는 제후를, 구슬은 공자 자신을 말합니다. 그는 왜 천하를 돌며 제후를 찾아다
녔을까요? 그 의문을 풀면 그의 사상은 물론이고 인간 공자의 진면모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춘추시대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춘추시대 말기였습니다. 전쟁은 끝이 없었고, 권력자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
배를 채우는 난세였습니다. 사상은 시대와 관련이 깊습니다. 시대의 문제에 응답하기 위한 노력에서
사상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를 살피면서 시대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나라는 문왕과 그의 아들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입니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유명한 강태공이지요. 주나라는 독특한 봉건제도를 확립합니다. 천자는 전국을 여러 지역으로
나눈 후, 제후를 임명하여 대리 통치했습니다. 땅이 넓어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문제도 해결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 공이 있는 사람들을 달래는 카드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분봉(分封)한다’고 합니다.
임명된 제후 대부분은 황제가 믿을 수 있는 친인척이었고 일부는 공이 있는 신하였습니다.
주나라 초기에는 황제와 제후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황제는 책봉(분봉과 비슷한 말)하고 제후는 황제
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들의 아들로 이어지면서 황제와 제후
사이가 사돈의 팔촌쯤으로 멀어져 버렸습니다. 힘이 약해진 황제의 말을 따를 이유가 사라진 셈이죠.
아침에 도를 들으면
이렇게 혼란한 시기에 공자는 자기를 팔려고 했습니다. 자기를 팔아 혼란에 빠진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려 했던 것입니다.
공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하는 사람입니다.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자기를 알아주는 제후들을 찾아다니고 있을 때, 장저와 걸익이라는 은자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자로가 나서서 나루터로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장저가 수레에 고삐를 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자로가 공자라고 알려줍니다.
그러자 걸익이 말합니다.
“천하가 큰물처럼 거세게 흘러가는데 누가 그것을 바꿀 수 있겠소? 당신도 나쁜 사람이나, 피해 다니는
사람을 따라 다닐 것이 아니라 혼란한 세상을 피해 우리돠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찾아다니는 짓은 그만두고 자기들처럼 은둔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였
습니다. 자로가 돌아가 그 일을 공자에게 말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짐승들을 그대로 놔두고 어떻게 못 본채 한단 말이냐. 내가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누가
함께하겠느냐? 천하에 도가 이루어졌다면 내가 구태여 나서서 바꾸려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점이 노자나 장자 같은 도가 사상과 다름 점입니다. 도가가 혼란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
친화적 삶을 대안으로 삼았다면, 유가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
습니다. 문제를 푸는데 푸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공자는 힘이 많은가 적은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혼란할 때
작은 힘이라도 보태서 제대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사람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問道 夕死可矣).”라는 말에서 그의 의연하면서도 간절한 열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올바른 길을 찾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는 실천가의 온전한 모습이 『논어』
에 담긴 공자의 모습입니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