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시인
김성식 선장
오래 전 여름, 서울 한강에서 '한국해양문학제'를 펼친 적이 있다.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만 해오던 행사를 강으로 옮긴 것은 그해에 스폰서가 나타난 때문이었다. 바로 한강유람선 '세모'를 인수한 '세븐마운틴'이었다. 그날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관광버스 옆좌석에 앉은 부산 해양대학 K교수로부터 김성식 선장시인에 관한 얘길 처음 들었다. 1942년 출생하여 60년을 살다가 그 무렵 타계했다지만 난 그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 동승한 문인들 중에서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고서야 그가 세상을 잘 살다 갔구나 했었다. 바로 어제 참새가 방앗간을 들락거리듯 단골로 자주 찾는 부산 서면 선술집에서 김 시인 작품을 처음 만났다.
옹이가 박인 좁다란 판자에다 푸른 바다 그림을 넣고 그 밑에 시를 적었다. 그림 속 바다는 김 시인의 모교인 부산 영도 국립해양대학 전경이었다. 주모는 내가 김 시인을 안다는 게 신기한 듯 옆 테이블 단체 손님들에게 소리를 질러가며 놀라움을 표했다. 서너 평 될까한 좁은 공간 두 벽면에 자천타천으로 가렸을 시들이 여러 점 걸렸으나 난 김 시인 작품만 카메라에 담았다. 며칠 전 우편으로 받은 책자에도 앞뒤 표지 가득 푸른 바다가 들어 있었다. 현직 때 우리나라 발전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서울 원로선배가 국립해양대학 재학 때인 1957~ 1958 해외 항해실습을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였다. 선술집에 걸린 시인의 시는 아쉽게도 글자 크기가 들쭉날쭉해서 아래에 다시 옮겨 본다.
'멀구나
아득한 동해바다가 너무 멀어서
오늘은 약지 끝에도 묻어나지 않는구나
파나마운하를 통과한지 만 하루
중남미 코스타리카를 끼고
달리는 뱃머리로
하얗게 부서지는 물이랑 너머
광안 앞바다는
8천 해상마일 저쪽에 누워 있고
가슴에 닿지 않는 거리로 앉아
물안개 밑에서 춤을 추고 있구나'
"배를 타다 싫증나면, 청진항 도선사가 되는 거야"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선장시인 김성식의 '청진항'
바다에 배를 띄워 짐이나 사람을 실어 나르며 돈벌이를 하는 해운업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대신 바다를 소재로 한 해양문학 동산 산책을 위한 오솔길을 걷고픈 만년의 서정에 젖어 타계한지 19년 지난 金盛式 선장시인을 떠올려 본다. 한국 문단에서 해양문학 또는 해양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 김 시인은 1942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나 평생을 해상직원 주변을 맴돌면서 짝퉁 해기사란 칭호까지 받으며 살았기에 동시대의 뱃사람들 한국해양대 16기 입학동기들에게 들은 얘기가 시인에 대한 전부다.
1971년 '淸進港'으로 한국문단 최고의 등용문인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으로 등단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4권의 시집을 내고 30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발표하여 해양문학의 선구자적 개척자로 필명을 날렸다. 그는 문단 등단의 지름길로 알려진 중앙 일간지의 신춘문예 당선이란 힘들고 영광된 고지를 내로라하는 젊은 문단 지망생들을 제치고 배를 타는 선장이란 열악한 조건에서 등극을 했다. 거기다 한국해양대에 입학은 했으나 졸업장은 받지 못하고 국가 자격시험을 통해 해기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항해사로 배를 타고 선장으로 활동하는 33년 동안 '세계로 바다로 미래로'란 해양한국의 슬로건 아래 5대양을 두루 누비며 범양상선 등 원양상선을 타고 대양을 항해하면서 겪은, 파도와 싸우며 지내온 망망한 대해 항행 경험을 바탕으로 바다 냄새가 물씬 나는, 바다를 소재로 한 해양 시 300여 편을 남긴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시는 대부분 바다 위에서 해양도시 부산을 중심으로 한국문단에 '해양시'라는 독특한 장르를 정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성식 시인은 외항선 선장으로 바다를 항해하는 마도로스라는 상징성과 이미지 그리고 낭만적 요소가 플러스 알파로 작용한다.
'청진항'에 버금가는 1986년 발표작,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와 1999년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가 있네' 등으로 대표되는 시인의 가장 은유적이며 탁월한 표현의 문장이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바다에 대한 향수를 자아낸다. '겨울날 감자떡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 싱싱한 바다 냄새 더불어 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쉬는 소리'에서는 누구나 엄마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는 환상을 불러 오게 된다.
2002년 3월 작고한 김 시인은 33년 원양상선 승선활동과 선장직무 수행 중 무사고 운항기록과 선원들의 권익보호 및 해운산업 발전을 통해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 몇 해 전 '바다의 날'을 맞아 정부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타계하기까지 줄곧 우리 문단에서 해양시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해왔다. 그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0년 말 승선 중 투고한 시 '청진항' 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선작으로 뽑히면서부터다.
'77년 첫 시집 '청진항'을 출간한 이래 2000년 하선하기까지 4권의 시집을 발간하기 전 김 시인은 월남 후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바다를 주제로 한 시를 써 백일장에서 수상하는가 하면 늘 물결을 타듯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일관해 왔다는 게 해양문학을 승계하고 있는 후배 문인들의 일관된 평가다. 살아생전 그리도 호방하던 김 시인은 배를 타던 중 하선하여 종합검진에서 임파선 암 판정을 받고 치료 중 점차 나약해 죽어가면서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시를 쓰겠다며 펜을 놓지 못하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고 한다.
김 시인의 작품을 정리하고 편찬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한국해양대 황을문 교수와 수년 전 타계한 목포해대를 졸업, 승선 후 해운전문 기자를 거쳐 해기사협회 기관지 편집장을 지낸 김동규 수필가 등 동료 문인들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김 선장은 험한 파도와 싸우며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도 유독 갈 수 없는 항구 고향땅 청진항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성식 시를 깊이있게 연구하는 일부 교수들은 그의 시가 단순하게 바다를 무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해양 리얼리티를 확보함으로써 해양시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담보하고 질적으로 위상을 높였다고 강조한다.
어느 학자는 시인이 선장으로서 33년 동안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며 쓴 230여 편의 시는 해양문학을 대표한다고 평가받는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필드를 뛰어넘는 해양시인이며 해양문학 작품이라는 점을 주장해 눈길을 끈다. 그러나 배를 타다 싫증이 나면 청진항 도선사가 되겠다던 김 선장은 결국 청진항에 돌아가 보지도 못하고 2002년 겨우 회갑의 나이에 동아대학병원서 안타깝게 타계한바 그 애석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시인은 떠났고 지금은 부산 한국해양대학에 세워진 그의 시비만이 바닷바람에 얼굴을 씻고 있다.
청진항
배를 타다 싫증나면
까짓것 청진항 도선사가 되는 거야
오오츠크 해에서 밀려나온
아침 해류와 동지나해에서 기어온
저녁 해류를 손끝으로 만져가며
회색의 새벽이 밀물에 씻겨 가기 전
큰 배를 몰고 들어갈 때
신포 차호로 내려가는 명태잡이 배를 피해
나진 웅기로 올라가는 석탄 배를 피해
여수 울산에서 실어 나르는
기름배를 피해 멋지게 배를 끌어다
중앙부두에 계류해 놓는 거야
청진만의 물이 무척 차고 곱단다
겨울날 감자떡을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
싱싱한 바다냄새 더불어
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 쉬는 소리
엄마 가슴에 한 아름 안기지만
이따금 들어오는 쇠 배를 보느라고
추운 줄 모르고 서 있었단다
잘 익은 능금 한 덩이 기폭에 던져놓고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별을
기폭에 따다 넣고 햇살로 머리 빗긴
무지개를 꺾어 달고 오고 가는 배들이
저마다 메인마스트에 태극기를
올 엔진 스탠바이 훠 샷클 인 워터
레츠 고 스타보드 엥커
방파제 넘어 닻을 떨어 뜨려
나를 기다리면 얼른 찾아가
나는 굿 모닝! 캡틴
새벽별이 지워지기 전
율리시즈의 항로를 접고서
에게해를 넘어온 항해사
태풍 속을 헤쳐 온 키잡이
카리브해를 빠져 온 세일러를 붙잡고
주모가 따라주는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면서
여기 청진항이 어떠냐고
은근히 묻노라면
내 지나온 뱃길을 더듬는 맛
또한 희한하겠지
까짓것 배를 타다 싫증나면
청진항 파일럿이 되는 거야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