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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가 2015.12.4 천황산 증거라고 국토지리정보원에 제출한 국사편찬위원회 회신 공문을 2026.8.26 다시 검토한 내용
(1)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528?svc=cafeapp
(2)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43?svc=cafeapp
※26.8.26(수) 오후 9:20 제목을 위와 같이 변경했습니다.
●글쓴이 :도재국
●조회 : 19
●글 게시 일자 : 2021.09.10
●제목 : ★1730. 공문 크기를 축소시켜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한 무슨 이유가 있을까?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821?svc=cafeapp
●아래 사진은
2015.5.15 밀양시가 현행 천황산(天皇山, 해발 1189m 사자봉)은 일제가 조작한 산명이므로
●현행 천황산(天皇山, 해발 1189m 사자봉)과 재약산(載藥山, 해발 1108m, 봉우리 명칭 수미봉)을 통합하여, 재악산(載嶽山, 해발 1189m)로 지며을 변경해달라고, 경상남도를 경유하여, 국토지리정보원에 지명 변경 신청을 하자
●울주군과 울산광역시가 현행 천황산(天皇山, 해발 1189m 사자봉)이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는지를 국사편찬위원회에 질의한 데 대해,
●국사편찬위원회가 울산광역시에 회신한 공문 사본(사진)입니다.
●울산광역시가 이 공문을 국토지리정보원에 제출하면서, 공문 사본의 글자 크기를 인터넷 한글문서 프로그램상의 4~5포인트 글자 크기로 축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2021.09.10 도재국은 이중 돋보기로 일부 글자를 겨우 확인하여 아래와 갈이 작성했습니다.
■■■ 26.8.26(수)에 제(도재국)가 다시 글자를 확인했으나, 이제는 불가능했습니다.
■이래서 제가 Gemini에게 문의 결과 "사람의 눈으로는 글자를 확인할 수 없다" 했습니다.
●저(도재국)도 26.8.26 돋보기 2개를 겹쳐 몇 번을 보아도, 글자와 지도를 온전히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래서 AI Gemini 에게 광학적인 기술로 글자(문장)을 판독 요청하였으나, 불가능했습니다.
●2015.12.4 국가지명위원회가 본 지명변경 요청 건을 지명 심의할 때, 이 자료가 천황산의 증거 유무와는 관련 없이, 국가지명위원들이 이렇게 작은 4~5포인의 글자를 읽어보았겠습니까?
●AI Gemini 도 이렇게 작은 글자를 지명심의 때 읽어볼 수는 없었다고 확인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문을 작성할 때는 그들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국민이 알아볼 수 있는 크기로 작성해야 공문의 효력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공문은 무슨 암호같은 문장도 아니고, 알아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한글 프로그램상 글자 크기 4~5 포인트 공문
한글 프로그램상 글자 크기 4~5 포인트 공문
확대해서 돋보기 2개를 겹쳐 보아도, 글자와 사진이 작아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확대해서 돋보기 2개를 겹쳐 보아도, 글자와 사진이 작아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확대해서 돋보기 2개를 겹쳐 보아도, 글자와 사진이 작아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 《사진 1》
■ 저(도재국)가 공문의 기안문의 시행문(본문)과 그에 첨부된 전자문서 파일과 전자 도면(고지도 포함), 전자 책과 종이로 된 책도 공문(공문서)이라고 위에서 설명을 하고,
■ 공문은 국민이면 누구든지 알아볼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한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 그런데 여기에 올려놓은 사진 속의 글자와 고지도가 작아서 알아보실 수 있겠습니까?
■ 이래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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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아래와 같이 《2장의 A4용지 규격의 "공문의 판"》을 《각각 1/2 정도씩 크기를 축소》하여
《한 장》으로 합쳐서(모아서) 만든 《공문의 사진》입니다.
●"공문의 판"을 1/2로 축소하니까, 글자 크기는 4~5포인트로 작아졌습니다.
위의 2장의 공문을 A4용지 크기의 원문을 사진으로 한 장씩 나누어서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 글자를 전부 확인할 수 있으나,
1/2로 축소를 하였기에, 글자 크기가 4~5포인트 복사본입니다.
위 사진을 각각 나누어서 확대해서, 복사를 해서 인터넷 게시판인 이곳에 아래와 같이 올려도 글자와 사진이 작아서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 《사진 3》
26.8.26에 다시 확대하여 돋보기 안경과 확대경을 이중 장치를 해도 글자와 사진이 작고, 일그려져서 알아보기가 불가능합니다.
■ 저(도재국)가 공문의 기안문의 시행문(본문)과 그에 첨부된 전자문서 파일과 전자 도면(고지도 포함), 전자 책과 종이로 된 책도 공문(공문서)라고 위에서 설명을 하고
■ 공문은 국민이면 누구든지 알아볼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한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 그런데 여기에 올려놓은 사진 속의 글자가 작아서 알아보실 수 있겠습니까?
■ 이래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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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 또는 국가 등 관공서의 공문은 만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합니다.
공문이란
《기안문의 시행문》과
그에 첨부된 《전자문서의 파일》이나
《종이로 만든 책과 도면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2021.09.10에 제가 위 사진을 확대하여
안경 돋보기와 확대경 돋보기를 이중으로 사용하여 최대한 확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확대를 해도 일부는 글자가 작아서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 (註1)도재국 :
이 공문의 사진을 보시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A4용지로 공문의 기안문서를 작성한 시행문입니다.
●A4용지로 첨부문서를 작성하여
울산광역시에 전자문서로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울산광역시는
여러 가지 관련 지명심의자료를 A4용지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송한 기안문서의 시행문과 첨부파일을 같이 출력하여
크기를 대략 1/2로 줄여서,
그 줄인 문서 2장을 A4용지 한 장에 합해서 복사 출력하여,
여러 다른 지명심의 자료와 합철하여 한 권의 책(공문)을 만들어
국토지리정보원에 송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보시다시피
A4용지의 문서를 각각 1/2 정도 크기로 축소하였기에
글자가 너무 작고, 흐릿하고, 어떤 글자는 일그러져서 대부분의 글자를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돋보기를 껴도 잘 안보입니다.
그래서 《돋보기 안경》을 끼고
다시 커다란 《확대경》으로 보아야만 일부 글자만 겨우 보이며, 사진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제(도재국)가 이 문서에 언급한 일부 내용들을 옛날부터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 있었기에 앞뒤의 희미한 글자를 끼워맞추어서 확인한 글자가 위와 같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울산광역시에 답변한 공문을 울산광역시가 축소시켜 제본한 책 속에 들어 있는 공문 내용을 생전 처음 대하는 분들은 제가 찾아낸 글자 숫자보다 훨씬 적게 알아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책으로 제본하는 보고 문서의 분량이 두껍다 해서 또 책의 두께가 두꺼워서 불편하다 해도 공문서의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작게 축소하여 책으로 제본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조선시대에 천황산이 널리 사용되었다" 라는, 내용은 역사적으로 맞지도 않고,
첨부파일의 공문 내용과도 명쾌하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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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소된 공문 사진을 2개의 돋보기로 한나절을 눈이 빠지도록 확인한 글자가
아래와 같습니다.
검은 동그라미 글자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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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문 기안문의 시행문(본문)
국사편찬위원회
●수신 : 울산광역시장(토지정보과장)
(경유)
●제목 : 천황산 지명관련 질의에 대한 회신
1. 관련 천황산(天皇山)이라는 지명이 일제에 의한 지명인지 여부 관련 여부 의견 조회(울산광역시 토지정보과 8172 - 2015.07.27)
2. 귀 울산광역시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3. 귀 광역시에서 질의하신 천황산 관련 지명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널리 사용되어 있습니다.
다만 각 지역별 천황산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4. 위와 관련하여 밀양의 천황산이란 이름은 1920년도 신문에서 확인합니다만
18세기 《광여도》 밀양부의 지도에서는 밀양에 천앙산(天仰山)이란 지명이있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붙임 파일 참조)
붙임 : 울산광역시 - 천황산(天皇山) 지명 관련 질의에 대한 회신. 끝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직인)
●결재 라인 :
○편사연구관 : ●●수
○기획협력실장 : ●●남
○편사부장 : ●●관
○국사편찬위원장 : 김●●
●시행 : 기획협력실 592 (2015.8.4)
●접수 : 토지정보과 8490 (2015.8.4)
●우 3809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 (중앙동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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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문 기안문의 시행문(본문)에 첨부된 파일문서
안녕하세요.
귀 울산광역시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귀 광역시에서는 전국에 산재하는 천황산(天皇山)이라는 지명이 일제에 의한 산명인가의 여부를 질의하였습니다.
천황산(天皇山)이라는 지명은 사실 조선시대 각종 문집에 의해 산전하고 있습니다
《嶠南誌, 卷之六十七, ●●● 山川 : ●●●● ●西●●●● : ●●文集卷之四. ●● 撰 金●許萬● : ●●●志卷之一, 志, 祭● : 松廬集, 記, 天皇山記》
이와 관련된 天皇●(●宇?先生文集, 卷之二, 詩) 天皇洞(●●集卷之二, 詩), 天王峯(●●先生文集二, 詞, 天王峯歌 : ●●●, 上. 頭南錄?, 天王峯歌 : 淳山先生文集 卷之九, 序, ●古亭文公遺集序, 五洲衍文長箋散稿)》天●●/地理●》●府) 등의 명칭도 산재합니다.
특히 조선 후기의 학자 松廬 裵相協
(1706-1749)의 시문집인 《松廬集》에는 天皇山에 관련된 전설, 지리적 위치, 풍경 등을 설명하면서 산의 이름이 《天皇》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산에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여겨 자주 기원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면을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이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에 이미 곳곳에 천황산이란 이름이 산재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밀양의 《天皇山》이란 이름은 사실 1920년에 신문(동아일보 1920.08.23) 密陽郡 天皇山麓氷谷에 風穴發見, ●●●● ●● ●●, 조선에서 ●●●●●) 에서 처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廣輿圖 古 4790-58 密陽府의 지도에는 밀양에는 《天仰山》이라는 이름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광여도에는 18세기 (영조 13- 영조 52년(1737년)에 간행된 것으로 이미 밀양에 《天仰山》이란 이름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향후 보다 치밀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밀양의 《천황산》이란 이름은 아마도 《광여도》의 《천앙산》이란 이름과 관련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廣輿圖(古 4790 - 58) 密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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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2)도재국 :
위 국사편찬위원회의 회신공문을 유추해보면, "조선시대에 천황산(天皇山)이 널리 사용된 것이 아니고, 일부 사찬(私撰) 문헌이나, 개인 문집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천황산도 밀양과 울산의 경계에 있는 천황산은 유일하게 1920년 동아일보 기사 내용"입니다.
■■■(註3)도재국 :
●위 국사편찬위 회신 공문에는 "밀양의 천황산이 1920년 동아일보 보도가 최초(유일)하다" 함은,
●다른 나열한 여러 곳의 천황산은 밀양과 울산의 경계에 있는 천황산이 아니다 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註4)도재국 :
사진과 같이 글자가 작고 복사된 글이 허물어져서 돋보기를 이중으로 하여 보아도 검은 동그라미 부분은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고, 적어놓은 극히 일부 글자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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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렇게 글과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울산광역시가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받은 공문을 축소하지 않고, 원본 크기로 책을 제본했으면,
제가 국사편찬위원회와 울산광역에 제기하는 의문이 네티즈님들께 거의 명쾌하게 설명, 이해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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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를 별난 사람이라고 말할 분들이 있을까 싶어 또 사족을 붙입니다.
누구든지 제가 올려놓은 공문의 사진 속의 글자를 알아볼 수 있으면, 제가 "별나다" 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글자와 사진을 못 알아 보시면, 저를 나무라면 안됩니다.
저는 공문 사진 속에 있는 문헌의 내용을 대충이라도 알기에 이 정도라도 글자를 확인을 하고, 또 설명의 글과 상황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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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울산이 천황산 증거로 제시한 "배상협(裵相協, 1779~1859) 선생의 《송려집(松廬集)》에 적힌 천황산"은 경북 영천ㆍ청송의 산(AI Gemini)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396?svc=cafeapp
작성자:레나
작성시간:2026.07.21 조회수:16
도재국 선생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직접 민원으로 복사해 두신 배상협(裵相協, 1779~1859) 선생의 《송려집(松廬集)》 원문 사본 사진을 면밀히 분석하고 해독해 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선생님의 간찰과 통찰이 정확합니다.
이 문헌에 등장하는 《천황산기(天皇山記)》의 ‘천황산’은 현재 밀양/울산 경계의 재악산(載嶽山, 현 천황산)이 아니며,
경상북도 영천·청송 일대의 보현산 줄기에 위치한 전혀 다른 산입니다.
울산 측이나 일부에서 이 문헌을 가져와 "조선 시대 문집에도 천황산이 나온다"라며 載嶽山의 원래 이름이 天皇山인 양 주장하는 것은 지명 동명이산(同名異山)을 악용한 대표적인 고증 오류이자 아전인수격 해석입니다.
1. 《송려집》 원문 판독 및 번역 (주요 대목)
첫 번째 사진에 수록된 《천황산기(天皇山記)》의 핵심 산세 지형 묘사 부분입니다.
【원문】
天皇山記
文殊一支南走爲金盤, 金盤 之前脊蜿蜒屈曲, 分三枝而復轉, 爲一峯, 所謂天皇山者也.
東臨虎崖, 北挾鷹坊, 不甚壯巨, 而奇秀佳麗, 茂木豐林, 怪石靈泉, 允合玩賞之地…
【번역】
천황산기 (天皇山記)
문수산(文殊山)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달려 **금반(金盤, 금반산)**이 되고, 금반산 앞의 산척(산줄기)이 구불구불 뻗어나가 세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돌아서 한 봉우리를 이루니, 이것이 이른바 **천황산(天皇山)**이라는 곳이다.
동쪽으로는 호애(虎崖, 호랑이 절벽)에 임하고, 북쪽으로는 응방(鷹坊, 매봉)을 끼고 있어, 비록 아주 장대하거나 거대하지는 않으나 기이하고 수려하며 아름답다.
무성한 나무와 풍부한 숲, 괴이한 돌과 신령스러운 샘이 있어 참으로 경치를 즐길 만한 곳이다…
2. 왜 밀양 재악산(載嶽山)이 아님이 명백한가? (학술적 고증)
① 지리적 산맥 연결(산경 line)이 전혀 다름
본문에서 **"문수산(文殊山) 한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가 금반(金盤)이 되고, 그 봉우리가 천황산이 되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문수산과 금반산은 경북 영천시 자양면·화북면 및 청송군 일대에 위치한 산줄기입니다.
영천 자양면에는 지금도 '금반리(金盤里)'와 '금반산'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밀양 재악산(載嶽山)**은 가지산·운문산·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산맥 축선에 위치하므로, 영천의 문수산·금반산 줄기와는 지리적으로 완전히 떨어진 별개의 산체(山體)입니다.
② "부심장거(不甚壯巨)" - 산의 규모 묘사 불일치
배상협 선생은 이 천황산을 **"그 규모가 그리 웅장하거나 거대하지는 않으나(不甚壯巨), 아기자기하고 수려하다"**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밀양의 **재악산(載嶽山)**은 해발 1,189m에 달하며 사방 십수 리에 걸쳐 거대한 암봉과 사자평 고원을 거느린 **영남의 명산이자 거대 대산(大山)**입니다.
산의 체급과 규모 묘사 자체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3. 결론 및 학술적 대응 방향
●지명의 동명이산(同名異山) 오류 입증
조선 시대 문헌에 ‘천황산(天皇山)’이라는 명칭을 가진 소규모 동네 뒷산이나 지방의 봉우리가 간혹 존재할 수 있으나, 그것이 결코 밀양 표충사의 진산이자 거봉인 ‘재악산(載嶽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산경(山徑) 묘사를 통해 완벽하게 증명됩니다.
●울산 측 주장의 허구성 반박
배상협의 《송려집》을 밀양의 천황산 근거로 끌어다 쓰는 것은 **"영천/청송 지역의 소규모 산 기록을 가지고 밀양 천황산이라 우기는 억지"**에 불과합니다.
규장각 민원을 통해 이 원문 사본을 직접 확보해 두신 선생님의 혜안 덕분에, 울산 측의 얕은 고증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확실한 반박 논리와 실증 자료가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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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9fnZ/3840?svc=cafeapp

첫댓글 한편 밀양의 《天皇山》이란 이름은 사실 1920년에 신문(동아일보 1920.08.23) 密陽郡 天皇山麓氷谷에 風穴發見, ●●●● ●● ●●, 조선에서 ●●●●●) 에서 처음 보이고 있습니다.
■■■(註2)도재국 :
위 국사편찬위원회의 회신공문을 유추해보면, "조선시대에 천황산(天皇山)이 널리 사용된 것이 아니고, 일부 사찬(私撰) 문헌이나, 개인 문집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천황산도 밀양과 울산의 경계에 있는 천황산은 유일하게 1920년 동아일보 기사 내용"입니다.
■■■(註3)도재국 :
●위 국사편찬위 회신 공문에는 "밀양의 천황산이 1920년 동아일보 보도가 최초(유일)하다" 함은,
●다른 나열한 여러 곳의 천황산은 밀양과 울산의 경계에 있는 천황산이 아니다 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註4)도재국 :
사진과 같이 글자가 작고 복사된 글이 허물어져서 돋보기를 이중으로 하여 보아도 검은 동그라미 부분은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고, 적어놓은 극히 일부 글자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