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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난 글에서 우리는 유조선 전쟁으로 인해 호르무즈가 봉쇄 위기에 놓인 상황을 다루었습니다. 더불어 이 전쟁이 전쟁당사자들과 GCC 국가들에게 어떤 교훈과 정책적 결말을 낳게 만들었는지도 보았지요. 하지만 곧 종전 40년이 되어가는 만큼 상황은 그 때와 같을 수는 없고, 전후의 기조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르무즈를 둘러싼 정치적 행동들을 지켜보며, 어떠한 정책적 수정으로 나아갔는지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분열의 시작을 2015년의 JCPOA로 잡았을까요? 전반적으로는 진일보한 핵합의였음이 분명함에도, 이 스노우볼이 굴러가면서 GCC가 분열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국별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이란 공조기구로 활동했던 GCC의 분열이 어떤 식으로 봉합되는지를 추적하면서, 이들의 대이란 정책이 어떻게 수정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번 글의 목적입니다.
JCPOA 이전 상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사항들.
다만 JCPOA 타결 시점으로 즉시 이동하는 것은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 것이 눈에 선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전의 굵직한 사건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JCPOA의 여파는 결과고, 그 결과를 만들게 된 여러 요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시계를 돌려 2003년으로 가봅시다. 이란은 역내 가장 위험한 나라로 다시 등극하게 됩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아들 부시가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을 완전히 박살내버리면서 이란을 견제할만한 세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란의 반체제 인사들이 주장했던 이란의 핵 개발이 실체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종전한 지 15년밖에 안되어서 아직도 기억 속에 전쟁 끝물임에도 엄청난 규모의 혁명수비대와 바시즈를 징집해서 바스라로 돌격시키던 것이 떠오르는데, 그런 이란이 핵무기까지 다루게 된다? GCC를 선도하던 사우디는 이런 미래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시점에는 미군이 이란 동서로 주둔하고 있었고, 이란과 핵 협상에 들어갔기 때문에 비교적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2011년으로 가봅시다. 바로 아랍의 봄이 있던 해이죠. 철권을 휘두르던 아랍권의 독재자들이 별의별 방식으로 축출당하고 사살당하자 걸프 국가들도 잔뜩 긴장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바레인에서 정치 개혁을 외치는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자신들의 힘으로는 진압이 힘들어보이자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GCC 국가들에게 파병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기꺼이 파병하여 바레인군과 함께 “질서를 유지하죠”. 이란 외교부는 비난하는 성명을 냈지만, 결국 왕정이 승리했습니다. 이때 당장 GCC 안에서는 커다란 위협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이집트나 튀니지와 같이 집권세력인 왕정이 쫓겨날 수도 있다는 실존적인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시기에 한 언론을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알 자지라 지인데, 사우디가 보기에 여기가 아랍의 봄을 키운 중대한 요인이었던 겁니다. 알 자지라 지는 중동의 가장 광범위한 여론 형성 장치였고, 각국의 국영 매체를 제외하면 아랍 민중들에게 접근이 편리한 전지구적 언론사였으며, 그러면서 국소 지역의 목소리를 중동 전역에 퍼뜨림으로서 혁명에 연료를 꾸준히 넣어주는 촉매재 역할을 꾸준히 해왔던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튀니지와 이집트가 무너지고 리비아와 시리아, 예멘 정부가 흔들리는 등 파급력이 컸기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알 자지라의 뒤에는 카타르 정부가 있었고, 이들은 동시기 무슬림 형제단과도 연계하는 등 GCC 국가들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일을 해왔던지라, GCC 내부의 반목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15년으로 가봅시다. 이번에는 예멘이 불타기 시작합니다. 이란이 뒷배로 있는 후티와 사우디 주도 GCC가 후원하는 정부군 간에 내전이 일어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의 프록시는 강성하고, 홍해 교통로가 위협받고, 걸핏하면 본토로 미사일은 날아오는 등의 사건을 겪으며 이란과의 대결이 호르무즈를 넘어 전 중동지역으로 범위가 넓어졌음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JCPOA는, 사우디 입장에서는 이란에 의해 중동 정세가 혼란해지는 시점에 합의됩니다.
2015~2018; JCPOA 타결부터 카타르 축출까지
JCPOA는 2015년 7월 14일에 합의됩니다. 이란과,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 5개국과 독일을 의미하는 P5+1 사이에 있던 핵 합의에 GCC 국가들은 겉으로는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란이 핵을 가지는 사태가 일어나고, 그로인해 역내에 핵확산이 일어나는 상황은 아랍 국가들에게도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사우디나 UAE의 경우 뒤로는 복잡한 셈법을 굴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에는 지금껏 우리가 봐온 것들에 있었습니다.
우선 문제가 된 것은 이란의 프록시 문제였습니다. 헤즈볼라,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후티 할 것 없이 이란의 시아파 벨트는 중동과 역내 해양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쏘는 탄도 미사일도 문제가 되었죠. 이 모든 것을 JCPOA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또한 합의는 이란의 농축된 핵물질을 주로 다루었을 뿐 이란의 재래식 전력을 다루지 않았던 부분도 문제였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Pivot to Asia 전략을 통해 중동에서 전력을 빼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몇몇 GCC 국가들에게 JCPOA는 핵물질과 이란의 다른 모든 제재를 맞바꾼 안보적 재앙에 가까워보였던 겁니다.
이렇게 되어버리자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워보인다고, GCC 내부에서 카타르 비토 여론이 올라옵니다. 카타르는 이란과 짝짜꿍 하면서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도 나눠먹고, 아랍의 봄 당시에도 알 자지라로 일은 키워놓고 무슬림 형제단 등과 공조하면서 주요 대체 권력을 밀어주는 등 카타르 혼자서 내정 간섭도 충분히 가능한 포텐을 보여주었고, 그러면서 우리만큼 대이란 관계에서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등등. 이에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을 주축으로 2017년에 행동을 시작합니다.
2017년 6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과 이집트는 카타르에 13개 조항을 요구하며 이에 불응할 시 단교할 것을 알렸습니다. 이 13개 요구사항에는 우리가 지금껏 봐온 문제들이 단교라는 행태로 폭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조의 이란과의 관계 격하. 문제의 중심에 있었죠. 3조의 알 자지라 폐쇄와 4조의 카타르 지원받는 언론매체 폐쇄는 카타르 언론의 파급력에 대한 불만에서 나왔습니다. 2조의 무슬림 형제단, 헤즈볼라 등 테러 조직과의 단절, 8조의 내정간섭 중단과 9조의 야권 세력 접촉 금지. 역시 아랍의 봄 때 보여준 가능성을 지워버리려는 조항입니다. 11조의 GCC 및 아랍 국가들과 공조 요구 역시 그러합니다. 그리고 카타르가 이 요구사항에 이행을 거부하며 GCC 국가들의 카타르 봉쇄가 시작됩니다. 단기적으로는 봉쇄국들 사이 대이란 강경 연대가 강화되는 듯 했지만, 카타르는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하고 역내에 튀르키예를 끌고 옴으로서 개의치 않아하며 독자 노선을 가져가는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대이란 봉쇄망을 짜려고 했으나, 메꾸고 싶었던 그물의 구멍이 생각보다 컸음을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된 겁니다.
2018년, 현재 모든 문제의 원흉 트럼프가 JCPOA를 파기하자 GCC 내 강경파였던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이 가면을 벗고 환호합니다. 대이란 제재는 이어질 것이고, 이것이 이란의 프록시 촉수질과 탄도미사일 개발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예측은 분명 틀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도 트럼프는 이란산 원유 제재를 가속하고 항모전단을 전개하는 등 대이란 관계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려고 했으니 좋아할 여지는 분명했죠. 그럼에도 이러한 행복회로를 깨트려버리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버리니 바로 2019년이었습니다.
2019~2025; 호르무즈 위기와 GCC 차원의 정책적 수정으로
2019년 5월 12일 푸자이라 인근에서 상선 4척이 공격을 당합니다. 조사 결과 림펫 마인이라고 하는 해상용 흡착지뢰에 당한 것이었습니다. 상선은 침몰당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UAE의 우회수출 전략이 간파당했다는 충격은 컸습니다. 이틀 뒤인 5월 14일, 이번에는 페트로 라인의 펌프장에 후티의 미사일이 떨어졌습니다. 이 두 가지의 공격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습니다. 호르무즈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만든 우회수단도 공격에 취약하다. 곧 해협 밖이라고 해서 위험이 헷징되는 것은 아니다.
6월에도 암울한 소식이 이어집니다. 13일에는 오만만에서 2척의 상선이 공격당합니다. 공격 방식은 푸자이라 건과 같았으며, 이란은 전면 부인했습니다. 20일에는 호르무즈 인근에서 미국의 정찰용 글로벌 호크가 격추당합니다. 트럼프는 이란 영토 내의 자산에 대한 보복 공습을 시도하려다가, 작전 개시 10분 전에 취소시킵니다. 이 공격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미군 자산이 전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국제수역에서 민간 상선들이 공격을 받음에도 그 누구도 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의 안보자산은 역내 안정과 이란 견제의 역할 대신 호르무즈 위기를 증폭시킬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여름에는 선박 억류전이 지속됩니다. 7월에 영국이 지브롤터에서 이란 유조선을 억류하자, 이란도 이에 질세라 호르무즈에서 영국 유조선을 나포합니다. 8월에는 연료 밀수 명목으로 외국 유조선 1척을 추가 억류하고, 주변국들과 거래하는 소형 선박들을 수시로 압박하고 검문하지요. GCC 국가들이 보기에는 이건 유조선 전쟁 때 질리도록 보던 광경이었죠. 이걸 막자고 우리가 미군 자산을 들이고, 대이란 강경책으로 나갔던 것이 아닌가?
클라이맥스는 9월 14일 사우디 아람코 시설 공격이었죠. 9월 14일 새벽에 수십 대의 자폭 드론과 순항 미사일이 바레인 인근의 아브카이크 정유시설과 리야드 동쪽의 쿠라이스 유전을 공습합니다. 전 세계 석유 공급망의 5% 가량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국제 유가는 하루만에 15~20% 폭등하게 됩니다. 이런 거 막자고 비싼 값 들여 가져왔던 패트리어트는 초저고도 공습에 무용지물이 되었죠.
잔류 GCC 국가들이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미군이 역내에 온갖 자산을 전개했음에도 이란은 호르무즈에서, 후티는 홍해에서 온갖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GCC 누구라도 생각하게 됩니다. 아, 미국과의 안보 공조와 봉쇄만으로 막아내기에는 이미 쟤네 체급이 너무 커졌구나. 저들과 소통 없이 고립시키려는, 할슈타인식 정책으로 역내의 위험을 관리할 수 없겠구나. 정면대결이 너무 비싸졌으니, 그 시절 서독과 같은 결론으로 가게 됩니다. 일단 내려놓고 대화해야지.
전 세계가 코로나 폭탄을 맞은 2020년을 지나 2021년이 되자마자, 카타르를 봉쇄하기로 했던 4개 국가가 알울라 선언을 하며 관계복원을 하게 됩니다. 1월 5일의 이 선언에서, 주권 존중, 내정간섭 금지, 테러 대응 협력, 상호 비방 중대 및 연대와 안정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13개 요구조항은 온데간데없고, 국교는 복원하고 서로간 있던 별별 소송과 보상 건을 취하하기로 함으로서 카타르가 GCC가 복귀할 여지를 주었습니다. 카타르가 외교적으로 완승했다고 평가받음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이것을 밀어붙힌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와 협상에 임하기 전에, GCC 내부의 분란부터 해결해야 다시금 우리로서의 협상력을 낼 수 있겠다.
2021년 4월에는 사우디와 이란이 직접 대화를 시작합니다. 이라크의 중재로 만난 양국은 오만과 이라크의 지원 아래 2016년 단교 이래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2022년 8월에는 UAE는 6년만에 격하된 이란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며, 테헤란에 대사를 복귀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2023년 3월 10일, 중국의 중재로 7년 만에 양국은 국교정상화를 하게 됩니다. 2024년에 강고한 반이란 강경축이었던 바레인까지 이란과 정치관계 재개 협의를 개시하면서, 온 GCC 국가들이 이란과 대화를 시작하게 된 셈입니다. 서로 이란을 대할 때 하드파워에 있어서는 다른 강도로 투자할지언정, 소프트파워에 있어서는 이란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죠.
그리하여 GCC 국가들의 40여년 전의 정책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만의 중재자로서 역할은 역내가 불안정해질수록 더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카타르의 대이란 유화정책은 극한의 대결구도를 거치고 나니 새로운 대안으로 보여졌고요. UAE는 증명된 푸자이라의 취약성 때문에라도 이란과 척질 수 없게 되자 차라리 실용주의 노선을 강화하기로 하여, 이란의 석유를 텍갈이하여 팔아주는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바레인은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아파와 자신들의 왕정을 지켜준 사우디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Vision 2030으로 대표되는, 야심가 빈 살만의 큰그림이 찢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란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트럼프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마무리하며; 2026년, 그리고 다시 돌아온 호르무즈 위기
우리는 JCPOA 타결부터 10여 년간을 다루며 페르시아 만 역내 국가들의 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지켜보았습니다. 핵합의로 시작된 ‘안보 불안 증세’는 대이란 강경책과 카타르 봉쇄라는 정치적 사건으로 돌아왔고, 2019년 이란과 프록시들의 공격은 GCC 국가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때 만들어진 정책적 수정이, 적어도 이 전쟁 전까지는 안정적인 기조로서 유지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호르무즈 위기 앞에서 페르시아 만 국가들은 다시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이들이 서 있는 자리는 1980년대와 같지 않습니다. 오늘의 호르무즈 위기는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그 수정된 전략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