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간 손녀가 해외로 교환학생 간다고 하면 용돈도 두둑하게 주고 싶고…."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한 김 모(80) 씨와 부인 윤 모(77) 씨 부부. 벌써 은퇴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큰 생활환경의 변화는 없었다.
은퇴 20년 된 80세 김 씨 부부
남천동 30평대 아파트 매매 후
해운대 신시가지 20평대로 이주
기존 연금에다 추가자금 확보
결정하기 전 부부간 대화 필수퇴직 이후 각종 자원봉사 활동과 문중 일, 교회와 취미활동으로 바빴다. 김 씨 부부는 최근 윤택한 노후를 위해 아파트 규모를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손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멋지게 보내야 추억을 남기지 않을까요? 생활에 여유가 좀 더 생기면 취미생활도 하나 더 해 볼 요량입니다."
■주택의 규모를 줄여라 "괜스레 5억 원 짜리 집을 깔고 죽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참 열심히도 살았다. 공무원으로 아들과 딸을 서울의 번듯한 대학에 유학까지 시켰다. 큰아들은 부산에 취직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10년 전 해운대신시가지에서 남천동으로 이사를 왔다. 1억 6천만 원가량을 주고 샀던 집은 지금은 아파트 재건축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시가가 5억 원까지 이르렀다.
"그런대로 시류를 잘 탔어요. 당시 아들이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살자고 권유해서 옮겨왔는데…."
친구들은 김 씨를 '복노인'이라며 부러워한다.
20년 전 은퇴할 당시 퇴직금을 일시금 대신 종신 연금으로 결정했다. 김 씨는 "딸이 '연금을 받으면 훨씬 더 오래 산다. 일시금을 받으면 나중에 힘들어진다'며 강력하게 권유했다"고 전한다.
동료 상당수가 일시금으로 받아서 주식에 투자했다. 금리도 높아서 이자소득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매달 250만 원씩 연금을 받는 자신을 부러워한단다.
김 씨는 "부모님 퇴직금과 재산으로 행복한 은퇴를 즐기라고 말해 준 아들과 딸이 고마울 뿐이다"고 말한다.
■거주 지역을 옮겨 보자 제사도 7년 전부터 큰아들 집에서 치르고 있다. 딸도 부산에 오면, 시댁이나 친정오빠 집에서 지낸다.
"30여 평짜리 아파트가 이젠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90세까지 살아도 10년도 남지 않았는데…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부부의 고민은 의료비다. 지난해 아내가 어깨를 다쳐 입원하니 병원비 부담이 심각하더라는 것. 자녀들에게 짐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다.
"큰 병에 걸리면 3천만~5천만 원씩 들기도 하잖아요? 250만 원 연금만으로는 무리여서 현금을 더 갖고 있으려고요."
현재 김 씨가 사는 부산 수영구 남천동 아파트 재건축이 사실상 결정됐다. 집값도 많이 올랐다. 처음에는 같은 동네 작은 평수 아파트를 찾았다. 하지만, 이 일대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10평을 줄여도 1억 원 안팎의 차익밖에 없었다.
아내와 몇 달간 의논했다. 결국 같은 동부산권인 해운대 신시가지의 부산도시철도 장산역 인근 아파트를 선택했다. "부산도시철도 장산역 인근 아파트 가격이 24평에 2억 5천만 원. 그중 1층은 2억 원 조금 더 주면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마음을 정했죠."
■결정은 부부가 충분히 논의하자 처음에는 주저했다. 재테크에 실패해서 집을 줄여 가는 듯한 타인의 눈도 의식됐다. 기껏 쌓아 놓은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것도 힘들었다. 또, 큰아들에게서 멀어진다는 섭섭함도 한몫을 했다.
"아이들도 다 큰 이상 이성적으론 집을 줄이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도, 정든 집을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풍족한 생활을 위해 새로운 생활에 적합한 집을 찾는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도시철도와 아들 승용차를 타고 몇 차례나 현장을 답사했다. 아파트 계약 직전에는 인근 장산노인복지관의 프로그램과 시설까지 확인했다.
"복지관 점심 식사도 훌륭해서 굳이 집에서 식사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리고 프로그램이나 시설도 좋았고요. 노인네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부터 확인했죠!"
바로 앞에 위치한 해운대백병원도 큰 안심이다. 무료인 도시철도로 남천동 아들 집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는 것도 위안이다.
게다가 백화점과 영화관, 다양한 개인병원, 해운대 온천과 교회까지 노인들이 살기에는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세밀하게 확인했다. 지역난방으로 인해 저렴한 난방비로 겨울에 따뜻하게 살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물론 아파트를 줄이면서 생기는 2억 9천만 원가량의 현금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본격적으로 고민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