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C&L뮤직/Gielen Michael am tisch foto swr lamparter
말러 음악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지휘자 미하엘 길렌이 타계했다. 고인이 1986년부터 1999년까지 이끌었던 남서독일방송교향악단(SWR)은 길렌이 오스트리아 몬트제의 자택에서 운명했다는 가족의 전언을 9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사인은 폐렴이다. 향년 91세.
고인은 1927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제프 길렌은 무대 연출가였으며,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이었던 어머니 로제는 쇤베르크 학파의 저명한 피아니스트 에두아르트 슈토이어만의 누이다. 1940년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온가족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아버지 길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에서 연출가로 일했다.
고인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에르빈 로이히터(Erwin Leuchter)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애초에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데뷔했다. 1946년에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으며 1949년에 쇤베르크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연주해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콜론 극장의 보조 지휘자로 일하면서 지휘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1950년 가족과 오스트리아 빈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1950년대 초반부터 60년까지 빈 국립가극장에서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레멘스 크라우스 등의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이후 스웨덴 왕립 가극장과 독일 쾰른 오페라극장,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 미국 신시내티 교향악단 등을 지휘했다. 특히 1977년부터 약 10년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을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이끌면서 그의 명성은 최고 지휘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1986년부터 1999년까지 남서독일방송교향악단(SWR Sinfonieorchester Baden-Baden und Freiburg) 상임지휘자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명연을 남겼다. 그는 2002년에 이 오케스트라의 명예지휘자 칭호를 받았다.
2014년 시력 악화로 지휘계에서 은퇴했던 고인은 바흐에서 현대음악까지, 오페라에서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대중 친화적이기보다는 진지하고 학구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특히 20세기 현대음악에 대해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죄르지 리게티의 ‘레퀴엠’,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의 ‘병사들’ 같은 곡들을 세계 초연했다. 현대음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도르노상, 지멘스 음악상 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베토벤, 말러,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서도 일가를 이뤘다는 평이 나온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가 남서독일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녹음한 말러 교향곡 사이클이 애호가들의 높은 지지를 받는다. 감정을 과잉하거나 음향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음악의 구조를 차분하게 투시하는 해석으로 명성이 높다.
경향신문 문학수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