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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바티칸 박물관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이른 시간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줄이 이렇게나 길었다.
글을 기록하는 지금 눈에 띠는 것은,
사람들이 당시에는 아직 종이 지도와
정보가 담긴 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렸지만,
이것도 여행의 일부라 생각한다.
바티칸박물관과 사피에트로 대성당이 속해있는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제일 적은
인구 900명의 나라다.
가톨릭 신도의 정신적인 구심점인
교황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무솔리니와의 협약을 거쳐서
1929년 2월
교황령에 의해 독립국가가 되었다.
독립국가인 만큼
신문사, 방송국, 우체국 등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라오콘은 아폴로를 섬기는 트로이의 제관(祭官)이었다. 트로이전쟁 때 그리스군의 목마(木馬)를 트로이성 안에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사,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살해당하였다. 조각은 큰 뱀에게 칭칭감겨 막 질식당해 죽으려고 하는 라오콘과 두 아들의 마지막 고통과 격노를 표현하였다. 작자는 로도스섬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 등 3명이라고 전해지며, 제작연대는 BC 150∼BC 50년경으로 짐작된다.
이 지도의 방은 그레고리 13세 때 교황청이 있었던 이탈리아 주변과 교회가 소유했던 지역을 그대로 그려놓은 방이다. 이 지도의 방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1580~1583년의 지리적 상황과 지도 제작법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금빛의 조명으로 방 전체가 화려한 느낌이라 바티칸박물관 내에 있는 방 중 가장 고급스러운 방이 아닐까 한다.
1511년, 라파엘로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등 54명의 현인을 그렸다. 르네상스 전성기의 모습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자, 현세대의 사람들이 위인으로 말하는 분들이 그려져있는 작품이다.
그림의 정중앙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옆쪽에는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 계단 한가운데에는 무욕의 철학자 디오게네스, 그림 왼쪽 앞에는 피타고라스, 그림 앞쪽 계단에 앉아 혼자 펜을 잡고 있는 남성은 헤라클레이토스, 그림 우축에 허리를 굽혀 컴퍼스를 돌리고 있는 유클리드, 별이 가득한 천구를 들고 있는 조로아스터, 지구를 들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려져있다.
바티칸 시국의 경비는 스위스 용병만 맡을 수 있다. 현재는 100여 명의 용병이 바티칸 시국을 지키고 있다. 유니폼은 미켈란젤로가 직접 디자인한 옷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교의 정신적인 수도이자, 가톨릭 순례 여행의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예수가 죽은 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전도하던 베드로는 현 교회 언덕에서 64년 네로 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었다. 이후 로마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4~349년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바실리카를 지었다. 1506년 교황 니콜라스 5세가 새로운 바실리카 건축을 명하면서 거대한 대성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120여 년 동안 콜로세움이나 판테온에서 수많은 자재를 약탈해 건물을 지으면서 로마 문화재가 많이 훼손되고,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발행해 나중에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빌미를 제공하는 등 수많은 사연을 남기며 세계 최고의 건물이 탄생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이다. 깊이 218m, 높이 137m, 총 면적이 22,067㎡이다.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기둥 778개, 제단 44개, 모자이크 135개, 동상 395개로 구성된다. 쿠폴라(돔)는 1547년부터 대성당의 건축에 끊임없이 정진했던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그의 제자인 쟈코모 델라 포르타가 맡아 1590년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돔 내부의 직경은 42.56m, 정상까지의 높이는 136.57m이다. 돔에서 내려다보는 시내 전경이 매우 아름다우니 꼭 올라가 보자.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정면은 카를로 마데르노의 설계로 1612년에 완성되었다. 폭 114.69m, 높이 45.55m로 거대한 창문들과 입구, 로비로 이어진다. 최상단에는 넓은 공간이 있고 하나의 발라우스트라(작은 원주들) 위에 6m 높이의 조각들이 있으며 옆에는 두 개의 탑(종탑과 시계탑)이 있다. 가운데 창문은 교황의 강복대이다. 교황이 새로 선출되었을 때나 성탄절과 부활절에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도시와 세상에)"라는 축하 메시지를 전해주는 곳이다.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 중 하나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며, 성모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조각상을 말한다. 이 조각상은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머물던 시절, 프랑스 추기경의 주문으로 조각하였다.
피에타는 성모마리아가 그리스도보다 더 젊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는데 이는 성녀를 묘사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피에타가 대단하게 느껴진 것은 채색 없이 대리석으로만 옷의 주름을 표현한 부분 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채색된 조각을 별로 안 좋아해서 푸른색의 마리아 옷도 대리석으로만 표현했다고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하고 장엄한 공간에 압도되고 호화롭게 장식된 내부에 말문이 막히게 된다. 성당의 내부 길이는 현관을 포함해 211.5m이며, 천장 높이는 45.44m이다.
쿠폴라 아래에는 베르니니가 제작한 발다키노(천개)가 중앙 제대를 덮고 있다.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요청으로 만든 것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과 함께 르네상스, 바로크의 양대 예술작품 중 최고로 일컬어진다. 네 개의 나선형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올리브 가지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발다키노의 높이는 29m이며 중앙 제대 아래는 성 베드로를 비롯한 초기 기독교 시대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교황 요한 23세(1963년)와 바오로 6세(1978년)의 무덤도 볼 수 있다. 대성당 지하 무덤 출구 앞에 있는 성 베드로의 청동좌상은 13세기 플로렌스 출신의 조각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작품이다. 베드로의 오래된 대리석상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다. 중세부터 이곳에 다녀간 신자들이 베드로의 발에 입맞춤해서 오른쪽 발가락이 거의 다 닳아 버렸다.
바티칸을 나와 성 베드로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힘든 여정에서 맛있는 식사는 언제나 즐겁다.
맛집을 찾으려고 제법 발품을 팔았던 기억이 난다.
폴로로 광장이다. 여기에서 군중이라는 의미의 'People'이 유래하게 되었다고 한다. 1589년 교황 식스토 5세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세기에 주세페 발라디에르에 의해 완성되었다. 중앙의 오벨리스크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 정복 후 가져왔다. 남쪽에 있는 쌍둥이 교회 산타마리아 데이 미라콜리와 산타마리아 인 몬테산토는 교황 알렉산드르 7세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18~19세기에는 이 광장에서 종종 공개처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스페인 광장은 로마 시내에서 가장 활기차고 화려한 지역으로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7세기에 이곳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던 데에서 광장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특히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배경으로 나온 스페인 계단 주변이 유명하다.
계단 바로 앞에 있는 바르카차의 분수(Fontana della Barcaccia : 낡은 배의 분수)는 테베레 강에서 와인을 운반하던 낡은 배(바르카차)를 본떠 만든 것으로 이탈리아 바로크를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르토 베르니니가 제작했다. 로마에 홍수가 지나간 후 이곳에 조그만 조각배가 하나 남아 있었는데, 이 조각배에서 영감을 얻어 17세기에 만들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이란 이름은 그 앞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동상의 이름인 콜로소(Colosso)에서 와전되었는데 이는 라틴어 'Colossus', 즉 거대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217년 화재, 442년에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그 후에는 성당 건물들이나 귀족들의 저택을 짓기 위한 건축자재와 대리석의 채석장이 되어 파헤쳐지기도 했다. 1744년 베네딕트 교황 14세는 이곳에서 순교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콜로세움을 신성시했다.
콜로세움은 기원후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세우기 시작해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완성시킨 4층의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nfiteatro Flavio)이다. 장축지름은 187m이고 단축지름은 155m, 둘레 527m, 높이 48m의 타원형 건물이다.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으로 각 층마다 양식을 달리했으며 외벽은 아치 80개가 둘러싸고 있다.
이 경기장에서 로마인들은 치열한 검투사의 격투 시합, 맹수 등의 사냥 시합 등 목숨을 건 잔인한 전투 경기와 모의해전(이를 위해 경기장에는 물이 채워졌다) 등을 즐겼다. 티투스 황제는 100일의 축제 기간 동안 5,000마리의 맹수가 도살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이 경기장에서 경기를 했던 검투사들은 전쟁 포로들로 시합에서 일정한 승리를 거두면 자유의 신분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로마 최전성기시절의 영토를 나타낸 지도가 포로로마노로 가는 길에 있었다.
지금의 영국과 포르투칼, 터키와 지중해 연안의 모든 지역이 로마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의 명소 중에 하나이다. 카피톨리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의 저지대로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였으며 사법, 정치, 종교 등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곳이다. 원로원, 로물루스 신전, 2개의 개선문 등 과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기둥이나 초석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고대 로마의 가장 신성한 언덕으로 생각되었으며, 원래는 언덕 위에 있었던 유피테르 신전(神殿)을 가리켰으나 언덕 전체를 가리켜 말하기도 한다. 이 신전은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의 3신을 제사한 신전이며, BC 509년에 완성되어 로마 국가종교의 중심이었다. 집정관 ·속주총독(屬州總督)의 취임서약, 개선장군의 환영도 여기에서 행하여졌다. 1547년 미켈란젤로의 구상으로 건설된 캄피돌리오광장에는 로마의 현제(賢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청동 기마상(騎馬像)을 중심으로 카피톨리노미술관과 팔라초 콘세르바토리가 있다.
판테온이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이 합쳐져 만들어 졌다. 아그리파 집정관에 의해 처음 건축된 판테온은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었고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를 재건하기 위한 계획으로 다시 건축되었다. 당시 판테온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전하는 바 없으며 현재는 신전으로만 알려져 있다.
원형 본당(本堂)의 안지름과 천장의 높이 43.2m, 벽의 두께 6.2m. 북측 입구에 코린트식 8주 전주식(前柱式)의 돌출랑(突出廊)이 있으며, 기둥 높이는 12.5m이다. 당 내부에는 7개의 벽감(壁龕:神像을 안치한 작은 방)이 설치되어, 제우스·아폴론·아르테미스·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 등 다신교였던 로마에서 중요 신들이 모셔졌다. 채광은 돔 정상에 설치된 지름 9m의 천창뿐이며, 벽면에는 창문이 없고, 거대한 본당의 외형에는 전혀 장식이 없다. 그 수적 비례의 미와 강대한 내부 공감의 창조라는 당시의 경이적인 토목기술로서 서양건축사상 불후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르네상스 시대 판테온은 무덤으로 사용되었는데 이탈리아의 거장 화가였던 라파엘로와 카라치가 묻혀져 있고 이탈리아의 왕 빅토리오 임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도 판테온에 묻혀져 있다. 현재의 판테온은 가톨릭 성당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미사가 집전되거나 가톨릭 종교 행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로마에 있는 분수 중 최고의 걸작이자 가장 인기 있는 분수. 트레비 분수는 세 갈래 길(Trevia)이 합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분수를 뒤로 한 채 오른손에 동전을 들고 왼쪽 어깨 너머로 1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2번 던지면 연인과의 소원을 이루고, 3번을 던지면 힘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장면도 이곳을 한층 낭만적인 장소로 기억하게 한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상징되는 명물 중의 하나다. 트레비 분수는 1453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고대의 수도 ‘처녀의 샘(Acqua Vergine)’을 부활시키기 위해 만든 것에서 시작된다. 처녀의 샘이라는 이름은 목마른 로마 병정들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나 물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한 데서 유래한다. 그 후 1726년, 교황 클레멘스 13세 시절에 니콜라 살비가 설계를 담당하고 30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이 분수 가운데에 있는 조각상은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이고, 그의 아들인 반신반어의 바다의 신 트리톤이 나팔을 불면서 이끌고 있는 두 마리의 말은 각각 잔잔한 바다와 격동의 바다를 상징하는데 이 아름다운 배경 조각은 피에트로 브라치의 작품이다. 넵튠 신 좌우에 있는 석상은 풍요와 건강을 상징한다. 이 분수의 물은 기원전 19년 아그리파에 의해 축조된 수로를 통해 들어오는데, 왼쪽 상부에 있는 부조는 아그리파 수로 축조에 관한 사실을 담고 있다.
트레비 분수에 도착했을 때,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하나는 고단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습하고 더운 기온이었다. 밤이었는데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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