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명동에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될때 까지 있던 시민입니다.
어제 시위는 여러모로 뜻깊은 시위였으나 안타깝고 우려되는 지점이 있어 글을 남깁니다.
어제 전 경찰이나 국정원 등 기관에 의한 프락치 활동을 실제로 목격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기 위해서는 시민여러분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어제 목격된 기관에 의한 프락치 활동이라 추정되는 사례는 크게 세가지 경우입니다.
➀ 시민 지휘부를 프락치라고 대중선동하여 지휘부의 불신을 가중시켰습니다. 어제(26일)의 경우 어떤 40대 남성이 당시 앰프시설이 되어 있던 카니발(?)의 마이크를 사용하고 있던 운동단체인 모단체(이름은 뺍니다) 활동가를 다짜고짜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더군요. 주위에 있던 놀란 시민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프락치라며 소리를 지르면서 대중선동을 했습니다. 큰 동작을 통해 ‘그 만한사유가 있을 것’이라는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때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더더욱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이후 진정되는가 싶더니만 지속적으로 그 동지들을 프락치라며 선동하여 부추김당한 시민들과 함께 결국 쫒아내더군요. 결국 앰프시설이 있던 차량은 시위현장을 떠나면서 시민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지고, 경험 많은 활동가들이 프락치라며 손가락질 받으며 쫏겨 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프락치들의 선동에 아군이 아군을 축출시킨 것입니다.
➁ 위와 같이 직접적으로 지휘부를 불신켜 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명(40대 초반의 짧은 상고형, 분홍색 가로줄무늬 남방, 베이지색 면바지)은 그때 경찰버스가 대오를 막고 있어 ‘차빼라’라는 구호가 간헐적으로 외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앰프시설이 있던 우리측 차량을 향해 ‘차빼라’라는 구호를 지속적으로 선동하여 위 사건과 함께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자신들의 무기인 방송차량을 향해 ‘차빼라’라는 구호를 외치게 선동하더군요. 제가 잡아서 무슨 짓이냐고 따져 물으며 ‘당신 프락치 아니냐’고 하자 황급히 인파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민들을 규합하고 통제 가능한 앰프시설을 잃어버리면 그 상황에서 대오는 급속히 빠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➂ 세 번째는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기긴 한데, ‘사거리에 완전 무장한 병력들이 포위하고 진압준비중이니 조심하라고 뒤로 전달’ 하라는 전달문을 유포시키는 경우입니다. 언제는 경찰이 없었습니까. 그리고 일부로 ‘완전무장한병력’은 뭡니까. 이는 명백히 대중들의 공포를 자극시켜 소극적 참여자를 대오에서 이탈시키겠다는 것입니다. 3~4차례 계속 뒤로 전달하라여 와서 옆에 있던 순진한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종이를 말아서 뒤로 전달하길레 제가 ‘득될 것이 없으니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고 만류했는데 그 뒤로도 4, 5번 정도 더 그런 전달이 앞에서 계속 나오더군요.
이상과 같은 모습을 보았을 때 의심하지 않을래야 안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버스가 가로로 배치되어 있어 밀지도 못하고 반정부구호가 나온 시위대를 상대로 길을 터줄리도 없는 상태에서 그 자리를 고수케 한 것도 이들의 농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지휘부라면 물리적으로 경찰병력을 뚫거나-그러나 이것은 시민들간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비폭력투쟁이기 때문입니다.-우회 또는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처음엔 제가 시위대 후미에 있었는데 명동에서 뒤로 돌아가라고 앞에서의 전달을 받았은데 어느세 계속전진이더군요.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가보니 경찰병력이 막아서고 있더군요. 이때끼지만 해도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것도 프락치들이 조직적으로 과격한 요구로 지휘부를 압박하여 회군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25일 있었던 행진에서는 자연스럽게 회군하고 우회하고 병력을 뚫기도 하면서 ‘전진’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한번 명동에 갇히자 ‘우직스럽게’ 구호만 외쳤습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우리들의 삶을 위한 연민과 이웃에 대한 측은으로 싸우던 20대 초반 정도의 어린학생들에게 더더욱 미안합니다. 바락바락 열심히 소리지르며 싸웠는데 어제는 프락치들이 판을 치고 프락치들의 기만술이 효과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아고라에는 오히려 지휘를 맡았던 활동가들-십년이상 민중운동을 해온 동지들입니다-을 프락치라고 주장하고 있더군요. 어이상실입니다. 결국 프락치들의 선동행위로 부화뇌동하여 이적행위인줄도 모르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운동을 오래 끌고 가기 위해선 더 넓은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90년대 초반까지 경찰에 의한 사찰과 프락치활동은 극심했고 그런 야비한 전술은 기관의 저비용고효율 전술입니다.
시민여러분 잘보고 또렷이 판단합시다. 과격한 요구에 정서적으로 동해 부화뇌동해선 않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청와대로 처들어가자’느니, 광범위한 폭력을 선동하는 경우 등은 의심받아 마땅하며, 지휘부를 분열시키거나 튀는 발언 등으로 곤혹스럽게 해 지휘부의 불신을 만들어 냅니다. 이는 우리 투쟁의 명백한 해악이며 대중들이 확신을 잃어버리는 기제가 됩니다. 즉 ‘내분’이라는 가장 오래된 적과 다시 마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무조건 범국민대책회의를 불신하며 시위준비도 갖추지 못한자들이 무조건 광화문이라고 선동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광화문에서 먼저 가두시위를 하실 분들은 하시고 어린아이들과 주부, 노약자 포함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은 청계광장에서 노래도 부르고 결의도 다지는 것입니다. 당장 광화문에 모여서 뭘 하자는 것입니까. 파출서 털어서 총들고 청와대라도 가야 합니까. 거리가 아직 술렁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국면에서는 투쟁의 고양을 더 지켜봐야 하는 것이지 기분 내키는 대로 마구 선동질하는 것 또한 그 한 결에는 기관에 의한 정보차단과 분열책동이 있다고 봅니다. 시민여러분 더욱 면밀하게 주위를 둘러봅시다. 우리가 지킬려고 하던 가치의 무게에 비해 같은 동지로서 시민들이 가지는 입장차이는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인가요. 저들의 분열책동에 휘말릴 정도로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가치의 무게가 가벼운 것일까요.
내 뜻과 맡지 않다고 프락치라고 몰지 마시고 또 군중심리에 휘말려 ‘마녀사냥’에 자신이 동원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어제 시위는 그 적나라한 모습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