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사무·연구직 “생산직이 임금협상 주도해 불공정”
2600명 별도 노조 추진, 전문가 “다른 기업들로 번질것”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의 총본산인 현대차에 MZ세대(밀레니엄+Z세대, 1980~2000년대 출생)가 반란을 예고하고 있다. 생산직 중심의 노조와 이별하고 ‘사무·연구직'을 위한 별도 노조를 설립하겠다며 행동에 나선 것이다.
현대차그룹 8년 차 이하 매니저급(사원·대리) 직원들이 주축이 된 사무·연구직들은 최근 카카오톡 채팅방, 네이버 밴드 등 소셜미디어에 모여 가칭 ‘현대차그룹 사무연구노조’ 설립에 나섰다. 중복 가입이 안 되는 네이버 밴드에는 1일까지 26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단순히 불만을 토로하는 차원을 넘어 정식 노조 설립 절차를 밟고 있다. 매니저급 5~6명으로 구성된 임시집행부는 지난 30일 회의록도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건은 노조 가입 대상, 집행부 구성 방식, 조합원 가입 범위, 조합 형태 등으로 노조 설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법적 문제까지 검토했다.
새 노조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MZ세대 직원들은 “아예 금속노조와 분리해 자체 교섭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사업부나 직군, 개인별 성과에 상관없이 생산직 중심 노조가 협상한 대로 일률적인 성과급을 받아왔지만 이는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기존 노조의 구시대적 투쟁 방식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새 노조 추진 멤버 중 한 명은 “1970~1980년대 비인간적 처우에 맞서 노조가 설립됐지만 현재의 노조는 개인의 사익만을 챙기는 조직으로 얼룩졌다”는 글을 카카오 채팅방에 올렸다.
MZ세대들은 회사의 처우뿐 아니라 경영진 실책, 조직 문화까지 타깃으로 삼고 있다. 채팅 방에는 “매년 연봉이 뒤로 가고 있다. IT 기업들은 인재를 뺏기지 않으려고 각종 수단을 강구하는데, 인재 대우 맞느냐”는 날 선 질문이 올라왔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이념이 아니라 실리와 공정을 추구하는 MZ세대의 반란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고 계속 번질 것”이라며 “생산직보다 연구직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미래차 시대로 가려면 이에 걸맞은 노사 관계 혁신이 필요하고, MZ세대는 그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장 위에, 노조 보호받는 ‘갓술’… 투쟁 말만 들어도 토나와”
‘현대차그룹 사무연구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이들은 현대차그룹 전 계열사의 사무직·연구직 직원들로 대부분 8년 차 이하 매니저급(사원·대리)이다. 이들 MZ세대는 과거부터 누적돼온 현대차 내 고질적인 문제들을 거침없이 지적하며 사무연구직 노조 설립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회사 경영진뿐 아니라 기존 금속노조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동안 없었던 제3의 세력을 형성하는 모습이다.
◇'갓술'이 뭐길래… 근태 지적하니 “현장 탄압”
현대차 직원들 사이에는 최근 ‘갓술’이라는 표현이 오르내리고 있다. ‘갓’(God·신)은 ‘최고’를 뜻하는 요즘 인터넷 은어로, 현대차에선 ‘기술직’(생산직과 연구소 내 일부 기술직)이 최고의 지위를 누린다는 의미다. 최근 현대차 직원이 사내 익명 게시판에 올린 한 그림에는 정의선 회장 위에 올라 앉은 존재로 등장했다. 한 현대차 연구직은 본지에 “일부 권위적인 고연차 기술직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도 부탁을 해야만 겨우 해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