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6/17(화))
7:30 기상.
8:00 세면.
8:30 아침 식사.
9:30 칭기즈칸 시대의 수도로 다섯 개의
봉우리를 가진 이흐 몽골산을 지나
몽골
마지막 왕이 즐겨 찾았던 한빈 사원과 현명한 여왕 만투하이
체첸하틍의 기념비를 돌아봄.
이흐
몽골산에는 108개의 탑으로 둘러싸인 에르덴조 사원이 있었다고
함.
11:30 말 타기.
12:00 점심 식사.
1:30 울란바타르로 이동.
7:00 '서울의 거리'에 있는 코리아 하우스에서
저녁 식사. 한국에 있는 어지간한 밥집이
무색해지도록
메뉴가 다양하고 음식 맛도 괜찮은 편임.
침게
사장님의 휴대전화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림.
8:00 울란바타르 시내의 아파트 입구에서
막내와 헤어짐.
8:40 테를지로 이동.
10:30 호텔식 숙소에 투숙. 비싼 요금에
놀라며 친구에게 국제전화를 함.
샤워
시설, 문 등이 부실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어 손과 컵 따위로
물을 받아 끼얹으며
간신히
고양이 샤워를 함.
11:30 취침.
아침에 말을 타는 것이 이제는 지극히
자연스러워졌다.
그 덕분에 입맛도 좋아지고,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흐뭇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유난히 골격이 가늘어 체력마저 약한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샀던 내가,
물이 바뀌고 기름진 음식이 입에 설어도
배앓이 한 번 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진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밥심’이라는데
타국에서 쓰러지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감사히 잘 먹어야 하고,
다른 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짐이
되기 싫다면
내 몸 하나는 추스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야 한다.
이것이 몽골에서 얻은 또 한 가지의
수확이었다.
점심을 먹고 몽골의 마지막 왕이 자주
찾던 한빈사원 근처로 들어서자
나무와 바위, 건물 등이 어우러진 몽골에서
처음 보는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연출되었다. 폐허
틈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나무들의 초록빛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때 이 땅을 지배했던 청나라가 몽골인의
부흥를 억제하기 위해
라마 불교를 융성 시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장자를 제외한 다른 아들을
모두 승려로 출가 시키는 간교한 정책을
폈고, 그 결과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게 되었을
정도로
몽골인들의 신앙심은 두터운 것이었다.
그러다 인민혁명 당시 ‘종교는 아편’
이라는 사회주의식의 구호 아래
종교 탄압을 받으면서 이 절에 머물던
300여 명의 승려가
학살되거나 추방되고, 아름다웠던 사원도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다.
현재는 띄엄띄엄 놓여진 몇 채의 건물들이
있을 뿐인데
사찰 안에서 진행 중인 모금을 통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었다.
본당 내부는 알록달록한 빛깔의 천과
부처상, 각양각색의 탈 등으로 꾸며져
과거의 영화를 희미하게나마 재현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8세의 소년 왕과 결혼하여
섭정을 했다는
‘만투하이 체첸하틍'(현명한 만투하이
여왕)의 기념비에 들렀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어리고
무능하여 도저히 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외적의 침입을 막아낸
여걸이며 진정한 군주였고
전쟁터에서 아이들을 낳은 위대한 어머니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수수한 돌 비석으로만 남아 있지만,
전반적으로 남성들보다 훨씬 강인한
몽골 여인들의 가슴 속에
따라야 할 모범으로 존재하고 있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도 길지 않은 몽골 여행 일정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곳이었다.
체첸하틍의 추모비를 지나오면서 백조가
살고 있는 테흐트 호수를 보았다.
말 그대로 ‘백조의 호수’였던 셈이다.
정말이지 몽골의 넓은 땅 위에는
바다를 제외한 천연의 지형 구조들이
죄다 펼쳐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울란바타르 시내를 벗어나면
대부분 불통이 되어 버리고 마는
휴대전화 사정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몽골은 지리학 전문가들에 의해 산악
지형으로 분류된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일본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전용 요리사까지 포함된 여행상품이
만들어져 인기를 얻고,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에게는
몽골이 정비사까지 이끌고 여행을 올
정도로 최고급 관광지로 인식된다고 하니
그이들이 몽골에서 찾아가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 이 여름, ‘몽골에서 말 타기’라는
화두를 품고 여기까지 온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몽골은 아직 채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세계 10대 지하자원 보유국이자
3대 축산국이 되었으며,
또한 그 가능성이 무한대에 가까운 최고급
관광국의 지위를 얻었다.
하지만 정작 많은 수의 몽골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당장의 현실적인 일자리가 보장되는
공장과 같은 생산 시설의 증가와
다른 나라와 유사한 형태의 근대적인
발전이다.
몽골인들에게 오래 전부터 ‘솔롱고스’('무지개'라는
뜻의 '솔롱고'에서 유추하여
'무지개의 나라'일 것으로 추정됨.)라고
불리며 친근하게 여겨졌다던
우리나라의 경우는 광물자원공사에서
소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정도이며,
본격적으로 상업적인 규모를 갖춘 투자는
아직 없다고 한다.
대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투자가 많고,
선교 활동과 같은 민간 차원의 교류가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울란바타르 시내에는 ‘서울링
보담쥐’(‘서울의 거리’)로 명명된
한 블록 정도 길이의 거리가 있다. 그
길을 따라
반가운 한국어 간판을 단 음식점과 상가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시내로 들어서니 낡은 자동차 배기가스가
풍기는 시큼한 냄새 때문에
벌써 공기부터 달라진다. 택시 요금이
버스 요금과 비슷한
250투그릭(1투그릭은 1.1원 정도로 우리
돈과 가치가 비슷) 정도로 매우 저렴하여
시내를 택시로 관광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어지간한 버스며 택시들은 우리나라에서
제 몫을 다하고 수출된
중고차인 듯 싶었다. 성능이 조금 의심스러울
정도로 노후된 차량들이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역할들이
남아 있었던 게다.
유목민들의 겔에서도 간간히 발견하고
신기해 했던 파라볼라 안테나가
도시로 들어오니 더 자주 눈에 띈다.
몽골의 TV 방송은 공중파의 경우,
몽골 국영 TV(MN TV), 울란바타르 TV(UBS),
Eagle TV(미국 자본) 등
4~5개 정도의 정규 채널 및 특별 편성
채널을 가지고 있는데,
케이블과 위성을 통해 아리랑 TV를 비롯한
한국 방송과
독일, 중국, 일본, 미국 등지의 외국
채널도 비교적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단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유목민 마을의
위성 TV라는 조합이 썩 개운치를 않아
돌아와서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그건 위성 수신 안테나와
흡사한 모양의 태양열 집열기일 가능성이
크단다. 그러면 그렇지.
한편,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기로 유명한 한국 드라마는 이곳
몽골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막내 역시 아리랑 TV를 통해 방영되는
<가을동화>를 비롯하여
<장미와 콩나물>, <피아노>,
<첫사랑>, <그 여자네 집>과 같은 드라마와
청소년 대상의 <나>, 청춘 시트콤
<논스톱> 등을 즐겨 보았다고 한다.
장난기 많고 재치 넘치는 막내가 손을
위로 치켜들고 흔들면서
‘사랑한데이~ 알러뷰~’를 외치는 <피아노>의
한 장면을 흉내내자
차 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우리의 한강에 해당하는 톨강을 지나
다시 테를지로 이동했다.
어느덧 밤 9시로 접어들었지만 창 밖은
여태 밝았다.
이제 한국의 뉴스 시간에도 조금은 무뎌지는
것 같다.
시간에 맞춰 하루를 정리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아까부터 길섶에는 노란 들꽃과 야생의
붓꽃(아이리스)이 지천이었다.
또한 향긋한 허브들이 가득한 들판을
지날 때는 차창 안으로 그 향기가 배어들어
기분까지 상쾌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천지간에 만발한 것이
여간 장관이 아니라 하여, 잔뜩 기대를
품고 갔던
테를지의 ‘차강 올 체첵’(에델바이스)은
아쉽게도 제 철이 아니었다.
칭기즈칸이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테를지 국립공원 입장료는
3000투그릭이다. 몽골의 영웅이면서
세계를 호령한 그를,
이곳의 사람들은 엄청난 경외감과 자랑스러움을
품고 늘 기억하는 듯 했다.
‘족스’(멈춰!)라는 신호와 함께 잠시
멈춰진 차는 코끼리 바위, 원숭이 바위,
거북 바위와 공룡 캠프 등을 지나서
천천히 이동하며
주변의 경관을 비교적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공룡 캠프는 캠프 밖에 커다란
공룡 모형이 세워진 것으로 유명한데
얼마 전 70만 달러에 거래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테를지 내부에서도 경치가 가장
수려한 곳에
사뭇 느낌이 다른 몇 개의 캠프들이
보였다.
물어보니 국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캠프란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관광지 입장이나
상품 구입시
내-외국인 차등 가격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고,
몽골에도 그러한 모습이 남아 있어 다소
불만을 품기도 했었는데,
국가 정책적 차원으로 가장 좋은 입지를
찾아 건립된 청소년 캠프와
국립 도서관, 국립 무용 오페라 극장
등의 공공 문화 공간들을 보니 부럽기도 했다.
이는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라면
결코 이뤄지지 못했을 본받을 만한 미덕인
듯 했다.
호텔식 숙소 프론트에 있는 국제전화는
1분에 3달러 50센트라는
엄청난 요금을 내야 했다. 떠나오기
전 친구들과 여행 루트를 살펴보며
아무래도 전화가 귀한 지역일 테니 호텔식
숙소에 묵는
셋째 날과 다섯째 날 저녁에만 연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리 약속했던지라,
비싼 비용을 감내하며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간단한 안부를 전하는
데 걸린 시간은
연결 소요분까지 모두 합쳐 6분. 그런데
요금은 21000투그릭이란다.
시간도 요금도 일치하지 않고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달러로 지불할 경우에는 제 값을
받지 못하는 환율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몽골 내에서는
달러보다는
자체 화폐 단위인 투그릭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
그리고 정작 숫자에는 약하면서도 억울한
손해에는 민감한 사람이라면
미리미리 현지의 화폐로 환전하는 편이
좋다는 것.
방으로 돌아와 씻으려고 보니 일반 수도꼭지에서
샤워기로
물의 방향을 전환하는 조절 밸브 부분이
아예 빠져 있었다.
사정이 열악하기는 다른 방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방문이 안 잠기는 곳도 있었다니
더 말해 무엇하리.
말 그대로 손쓸 수도 없이 ‘고장 난
수도꼭지’를 부여잡고
한동안 망연자실해 있다가, 양치 컵과
손을 이용한 고양이 샤워에 돌입했다.
한 시간 여의 고투 끝에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책 읽고 밑줄긋기 대회에서 함께 수상하며
고마운 나의 룸메이트가 된
배재이 언니가 먼저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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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받은 내용입니다.우리 학교 박민혜 학생도 책읽고 밑줄치기 행사에 당첨되어 몽골에 가는 행운을 잡았다는군요.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