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디트 홈피에 빌레임비어에 관한 글이 있어서 소개하려합니다. 간단간단하게
요약하고 해석했으니 양해를^^;;;
"증오라는 표현은 너무 강한 표현 같다. 리그는 오락산업의 일종이며, 나는 기꺼이 악당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빌 레임비어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누구나 미워하고 싫어하길 좋아하는(?)
그런 선수였다. (Love to Hate~) 그가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어떻게 보면 그저 어린
나이에 키가 컸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otre Dame에 진학하고
1979년 경기당 7.3득점에 6.0리바를 기록하며 팀을 Final Four에 올리는데 공헌을 한다.
물론 4강에서 당시 전미 대학농구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한명으로 꼽힌 Ervin Magic
Johnson 이 이끄는 Michigan State에게 패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NBA 드래프트에
참가 하지만 전체 65위 3라운드에 겨우 클리블랜드에 의해 뽑히는데 그친다. 하지만
첫해 그의 활약은 3라운드 픽 치고는 꽤 준수했다. .503의 야투율에 9.8득점 8.6리바를
기록했다. 1년반 정도 클리블랜드에서 뛴 레임비어는 82년 trade deadline을 9분 앞둔
상황에서 당시 디비젼 꼴찌였던 디트에게 트레이드 된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디비젼
꼴찌에서 두번째 ㅡㅡ;)
빌 레임비어는 운동신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잘 뛴다던지 점프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굳이 있다면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섬뜩한 눈빛(?), 날카라운 팔꿈치(ㅋㅋ), 리바운드
능력과 함께 당시 빅맨으로서는 흔치 않은 좋은 outside shot을 가지고 있었다. (레임비어,
간혹가다 엉성한 폼으로 3점을 던졌죠. 의외로 잘 들어가서 놀랬다는 ㅋㅋ)
13년간 피스톤즈에 몸담은 레임비어는 9430개로 팀내 리바 1위, 937경기로 팀내 출장순위
2위(1위는 아이재이아^^), 그리고 82년부터 90년까지 리그내 전체 수비리바 1위를 기록했다.
결국 디트로이트는 두명의 co-captain이었던 아이재이아와 빌의 도움으로 89~90년 2연속
우승을 하게 되는데 당시 90년 포틀랜드와의 파이널 2차전서 리그 기록인 한 게임 6개 3점슛
성공 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걸작은 파이널 3차전서 나왔는데, 당시 상대였던 케빈
덕워스와 제롬 커시, 벅 윌리엄스를 골밑에서 농락(?)하고 괴롭혔다. (득점으로 가지고
놀았다기 보다는 온몸으로 승부를 ^^;;) 결국 6반칙으로 퇴장당한 레임비어는 야유하던
포틀랜드 팬에게 여러번 고개숙여 감사의 인사?를 던졌다고 한다. ㅋㅋㅋ
그는 4번의 올스타에 뽑혔으며, 19번째로 1만 득점 1만 리바를 잡은 선수가 되었고, 그가
리그내 싸웠던 선수들로도 올스타 로스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로버트 패리쉬, 밥
래니어, 래리 버드, 찰스 바클리, 브래드 도허티 등이 그들이다. 그가 리그에 있는 동안에
3,100개의 파울을 했고, 8만 5천 불에 달하는 벌금을 냈다. 이에 대해 레임비어는 일을
열심히 한 댓가 정도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93년 시즌 중에 36세의 나이로 은퇴를
하였는데, 그는 은퇴까지 출장 가능한 경기의 99%를 소화하였으며 선수로 뛰면서 9번만
결장하였다. 5번은 부상으로, 3번은 출전 정지, 1번은 감독 결정으로 빠졌다. (아주 옛날에
espn과 인터뷰한 내용을 봤는데 은퇴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샤크의 등장이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젊었을 때라면 샤크도 무섭지 않았겠지만 나이가 든 상황에서 샤크와
만나서 다칠까봐? 염려했다고 합니다.. ㅡㅡ; 정확한 표현은 the physical strength of
Shaquille Oneal이라고 했던 기억이...) 또 다른 이유는 아이재이아와 둘이 co-captain
이었는데 그때 당시 연습시합에서 아이재이아와 싸움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그때
레임비어는 싸우지 않고 그냥 등을 돌렸다고 했답니다. 등 돌린 레임비어에게 아이재이아는
주먹을 날렸는데 오히려 아이재이아의 손이 부러졌다고 ㅡㅡ;; 암튼 역시나 팀내 사정과
나이는 속일 수 없는만큼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레임비어의 은퇴는 리그내 많은 선수들이 반기게 되었는데 호레스 그랜트는 그날 자신의
집에 큰 파티가 있을것이고 누구든 와도 좋다고 했다고 한다. ㅋㅋ (호레스와는 관련 없지만
생각나는게, 90년 동부지구 결승이었던가요, 디트의 거친 수비에 흥분한 피펜이 골밑에 공격해
들어가던 레임비어를 그대로 덮쳐서 flagrant foul 당한 적이 있죠. 그때 시카코 front는 너무
기뻐서 피펜의 벌금을 대신 내줬다고 합니다 ㅋㅋㅋㅋ) 레임비어의 등번호 40번은 95년
2월6일날 영구결번식을 가졌고, 그는 가족사업에 뛰어들면서 사업가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2002년 그는 다시 palace로 돌아와서 WNBA의 디트로이트 샼의 고문으로 일하다가
결국 감독직을 맞게 되죠. 2003년 그는 리그 최하위의 디트로이트 샼을 그해 우승에 앉히며
그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에 이어서 우리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도 03~04시즌
우승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해에 또 NHL(북미아이스하키 리그)의 Tampabay Lightning도
우승을 하게 되는데 이 3팀다 우리의 구단주 Davidson이 소유주죠 ㅋㅋ (연세 많은 양반이
돈도 많아ㅡㅡ;; 욕심도 많네.. ㅋ) 최근에는 피스톤즈의 tv방송 네트워크에서 선수시절 태그
팀메이트(tag teammate)였던 릭 머혼과 함께 디트로이트 경기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작년에는 뉴욕 닉스의 감독으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구여...
옛날 봤던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레임비어에게 경기중에 너무 선을 넘어선 수비를 했던게
아니냐고 물어봤을 때, 자신은 절대 선을 넘은 적이 없었다고 당당히 말했죠 ㅋ 자신을
chippy player라고 생각한답니다. 즉, 누구를 다치려고 하는게 아니라 다른 선수의 주위에
맴돌며 귀찮게 해서 그 선수로 하여금 흥분하게 만든다는거죠 ㅋㅋㅋ 90년대에 많은 분들이
로드맨의 활약을 많이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다 레임비어의 작품들이었다고 할 수
있죠 ㅋㅋ 암튼 80년대 후반 릭 마혼과 빌 레임비어는 최고의 태그팀 파트너였던 것 같습니다.
진짜 당시 WWF나 함 나가보지 ㅡㅡ;;
위 내용은 디트 홈피에 가시면 보실 수 있구여, 중간중간에 제가 미국 있을 때 봤던 인터뷰
내용도 좀 첨가 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잘봣써용~~^^
잘봤습니다~
으하하~로드맨의 스승..수비에 대해 "악착같이 상대의 바지를 물고늘어져라(?)"라고 말했다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