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난 유행처럼, 사람들이 이미 본 영화를 OCN을 통해 본다. 영화제목이며 예고편은 텔레비전을 통해 수없이 들었던터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화면을 통해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는 오랜만에 추억에 빠져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난 이발관이나 이발소라는 말만 들어도 어렸을 때부터 친척 중에 이발소를 하는 사람이 유독 많아 친근한 느낌을 가졌다. 태인 출신으로 전주 이발소에서 이발일을 하다 나중에 가수가 되었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 주위엔 이발사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면도를 가죽에 무두질 하는 것이나 난로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과 스킨냄새라도 풍겨올 것 같은 분위기가 실감나게 느껴졌다.
물론 효자동이란 이름 자체가 갖는 전통적인 뉘앙스와 이발사란 직업을 통해 사람들과 친해지는 정담이 어울어진다는 면에서 새삼 독특한 이야기 소재를 포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청와대 담장을 옆에 둔 이발소의 이발사라니. 이전 임권택 감독의 영화 <노는 계집 창>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여전한 사람들의 습속처럼 그렇게 이 영화 속에서도 칠십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시간의 흐름이 정치적인 사건과 함께 일상으로 들어와 있다.
구라무스인가 하는 전염병으로 설사를 하는 주변 인물들을 간첩단으로 엮어넣는 정보정치와 그 희생자로 그려지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강박관념처럼 우리에게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이전의 무의식적 소재를 악몽처럼 다시금 떠올리면서 추억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자진해 파출소로 보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은 이야기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그 갈등을 풀어가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주된 축은 청와대 이발사로 일하면서 정보부장이나 경호실장과 같은 실장으로 불리는 한 사람의 주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저 소박한 이발사에게 권력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생겼지만 그는 권력자가 아니다. 전염병과 고스톱 간첩단 사건은 설사하는 주민들 앞에 놓여진 폭력적 현실을 드러내면서 그 안에서 이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권력자와의 만남을 그린다. 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의 갈등, 그 안에서 대통령의 머리를 깎으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해프닝들이 그저 정치적 현실이 아니라 그저 이웃집 이야기처럼 다가온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저 구라무스병으로 마을 사람들이 잡혀들어가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더니 자신의 아들놈이 설사병에 걸려 경호실장의 눈치를 보다 자진 충성하느라 파출소로 데려간 것이 서로 넘어가 결국 아들이 전기고문을 당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아들을 내보낸 후에 이발사는 아내가 주었다면서 인삼을 경호실장에게 선물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댄데 청탁이야 하면서 권총을 들이대는 위협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경호실장은 그가 준 인삼을 가지고 간다. 그 속에서도 대통령은 이발사를 불러 술 한 잔씩을 하는데, 그 자리에 경호실장과 정보부장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안에서도 한 아이가 아직도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고가는 경호실장의 비아냥에 화가 나 있는 정보부장(육사선배), 대통령은 이발사의 표정이 밝지 않은 이유를 묻는데, 아이 때문이라고 말을 하자, 아이들은 바깥으로 나가 돌면서 크는 것이라고, 자신도 학교 교사로 일을 하다 만주로 떠났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들이 풀려났다. 노심초사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발사의 아내는 밧줄에 묶인 채 쓰러져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아이를 끌어안는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온 아이는 전기고 문의 후유증으로 혼자 일어설 수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런 아이를 수없이 일으켜 세우지만 아이는 그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자신의 과잉충성에 대한 자책, 아내의 성화에 시달려 왔던 이발사는 아이를 치료 시키기 위해 용하다는 한의원,침쟁이들을 찾아다닌다. 마지막으로 그가 동자승이 그려주는 그림을 따라 한 겨울 눈내린 개울을 건너 찾아간 곳은 산 소 깊은 곳에 은거하는 한 노인이었는데 그는 머지 않아 용이 죽는데 그 용이 죽으면 용의 눈을 파서 국화꽃과 함께 달여먹으면 낫는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돌아와 다시 청와대이발사로 일을 하고 아이는 걷지 못하는 아이로 지내면세 세월이 흐른다. 세월은 한 어린아이가 머리를 감는 장면에서 훌쩍 자라버린 채 머리를 감는 화면으로 나타난다. 머리를 숙였다 들었는데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의 머리를 깎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오늘 술 한 잔 하는데 자네도 올텐가. 아닙니다. 각하, 나랏일 하시는 자리에 저 같은 사람이 어찌. 그래, 난 자네의 그런 모습이 좋아. 언제봐도 겸손하고 또 성실한 모습이. 내가 자네한테 머리를 깎은 지가 몇 년 되었지. 네 십 이년 되었습니다. 각하. 그래. 자네도 이 일을 오래 하는구만. 네 각하도 참 오래 하십니다. 순간 일그러지는 대통령의 얼굴,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주워담을 길이 없다.
그 다음날 그는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라디오방송을 듣는다. 그는 대통령의 영정을 모신 곳에 조문을 갔다. 그리고 대통령의 얼굴을 쳐다본다. 자신 가까이에 있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해 겨울 자신의 아들을 위해 어느 산 속의 도사가 내려주었던 처방을 생각한다. 그는 밤에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있는 곳으로 가 면도칼로 대통령의 눈 부분의 물감을 벗겨내려고 하지만 쉬 용기가 나지 않아 멈칫거리지만 결국 흐느끼듯 그 영정사진에서 눈 부문의 물감을 살짝 긁어낸다. 거의 표가 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찾아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누구냐면서 묻는데 그는 멈칫거린다. 그는 자신의 일이 들통이 날까봐 물감통을 입으로 삼킨다. 중에 보니 그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아니 정실장님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로. 마지막으로 영정사진을 한 번 보려고.그는 위기를 모면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날 국장을 알리는 플래카드 앞으로 국화꽃으로 둘러싸인 차가 지나간다. 사람들의 흐느낌 소리 속에서도 그는 그 행렬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는 화장실에서 그날 밤 먹은 물감통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효자동 이발소 앞에서 국화꽃 차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이승에서의 인연을 아쉬워하는 듯 멈추어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뱃속에서 다시 나온 물감통을 열어 그 가루와 국화꽃을 달여 아들에게 마시게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내의 놀란 목소리에 바깥으로 나와 보니, 아이는 한 발 두발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얼마 후 청와대 이발사로 계속 일해볼 생각이 없냐면서 젊은 사람이 찾아오지만 그는 거절한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청와대 이발소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느 날 머리가 없는 사람이 와 이발을 해달라고 해 갖는데 별다르게 손 볼 것이 없어서, 머리가 더 자라면 그 때 오겠습니다고 말을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그는 마대 자루 같은 곳에 담긴 채 차에서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그 앞에는 아들과 자전거를 타면서 행복해하는 효자동 이발사의 모습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그저 한 아이의 목소리로 나래이션 되듯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추억과 효자동 이발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권력층과 동네의 이야기가 칠십년대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반공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아야 했던 시대, 권력의 심장부 주변에서 펼쳐지는 그저 평범한 효자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네 지난 삶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물론 그 안에는 무엇이 옳고 그르고 하는 걸 떠나서 그저 조작적이고 또 힘이 우선한 시대였지만, 그 그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행복이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시대의 풍속도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의 유년 시대의 추억에 빠져보기도 하고 강박관념처럼 자리잡고 있던 우리들의 시대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영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권력의 담장을 안밖으로 오고가는 청와대 이발사의 이야기를 통해 그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시대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어떤 문제를 다룬 건 아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강호란 사람의 변신이나, 또 이발사 캐릭터를 통해 만나게 되는 권력과 일상의 접근이 독특하게 다가왔다.나는 내내 그저 철지난 영화를 한 편 보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우리 주변에 있는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포착해 작품에 담아낼 것인가 하는 아이디어에 초점을 두었다. 지난 시절의 추억어린 이야기들 또한 충분하게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했던 시절의 뒤안길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