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졸업여행 (4)
민문자
『친구의 고향집』
아직은 회색 하늘이 염려되었다. 그러나 갈 길이 바쁜 우리는 지난 6월 개통한 고금대교를 거쳐 약산면 약산대교를 지나 당목 항에 다다랐다. 버스기사도 초행인지 사십 분 예정이던 거리를 어인 일로 한 시간 오십 분이나 걸렸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일곱 시에 약산, 당목 항에서 생일, 서성을 오가는 작은 여객선을 탈 수 있었다.
이슬비가 보슬비가 되어 내릴 때 우리는 버스 무릎에 버스는 배 무릎에 앉아 너른 바다를 가르며 평일도(금일도)로 향했다. 큰 바닷물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섬 섬 섬들의 경치, 우리나라 가장 남쪽 다도해지방의 풍경이다. 멀고 가까운 섬마다 짙은 녹음 위에 운무가 드리워져 있어 선계(仙界)에 와 있는 듯하다.
금일도 선착장이 가까워지자 하얀색, 붉은색 검은색 부표가 둥둥 떠 있는 큰 가두리 양식장이 바다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바람 따라 춤추는 부표와 여객선 꼬리를 따라오는 흰 물거품을 번갈아 바라보는 동안 평일도 작은 배들이 묶여 있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숲이 우거진 큰 산을 등지고 빨간 지붕, 파란 지붕의 올망졸망한 섬마을 풍경이 아름답다. 우리의 버스는 구불구불한 낯선 도로를 따라 약 삼십 분 거리의 K 집으로 달렸다. 논밭을 지나 언덕을 넘고 바닷가를 끼고 다다른 중심지는 쾌 큰 읍 소재지였다. 상상하던 섬마을이 아니라 육지의 어느 소도시에 당도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남쪽 끝이라고 할 만한 금일도( 평일도)의 생활상도 서울 변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상용품 상가를 비롯한 보건진료소, 경찰지서, 우체국,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농업기술센터, 한국전력공사출장소, 무선전신전화국 등 관공서가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으니 현대에는 유통망 덕분에 생활에 큰 불편은 없을 듯싶다.
농협마당에 버스를 세우고 K네 집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마도 이렇게 많은 손님이 들이닥치기는 처음일 터, 동네 어르신들이 길가에서 어느 집 손님일까 궁금하게 생각하다가 K를 발견하고 환한 웃음을 띠었다.
우리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내 고향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듯 했다.
돌담에 귤이 주렁주렁 달린 귤 나뭇가지가 늘어져 있는 K네 집으로 들어서자 K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섬이 싫다고 일찍 당신 곁을 떠나버려 섭섭한 마음은 잠시고 오랫동안 애면글면하면서 딸의 서울생활을 염려했을 터이다. 딸의 부모뻘이 되는 나이 많은 친구를 포함해서 열네 명의 손님을 맞이하면서 얼마나 딸이 대견스러웠을까.
‘오! 내 새끼, 서울에서 세상과 잘 어울려 살고 있구나.’ 아마도 이렇게 느끼셨을 것이다.
우리가 불편할까 봐 재미있게 놀라 하고 이웃에 있는 친정으로 자리를 피해주셨다.
뜰에 귤나무 옆에 단감이 많이 달린 단감나무와 사철나무가 있고 마당에는 상추 가지 고추 부추 들깨 더덕 도라지 생강 등 채소와 옥수수 수수로 가득하다. 글라디올러스 국화 민들레 샐비어 채송화 꽃이 채소밭과 어우러져 곱다. 어머니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집이 정갈하다. 처마를 고쳐서 산뜻한 알루미늄새시로 단장한 지가 얼마 안 되는 듯하다.
우리는 골방에 짐을 풀고 아침식사 당번이 주방에서 수고를 하는 동안 안방과 마루와 평상에서 선풍기를 켜고 편한 자세를 취했다.
여덟 시 사십 분에 긴 마루에 상차림을 하고 돼지고기 볶음과 깻잎 상추 고추와 김치로 소주 한 잔씩 곁들여 맛있게 아침밥을 먹는데 소낙비 소리가 요란했다.
비가 그친 후 동백리에 있는 금일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소나무 숲을 지나서 아직 편의시설도 제대로 없는 넓은 모래밭에 다다랐다. 육지에서 너무 먼 탓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청정한 해수욕장이 수도권에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려들 것인가.
우리 일행은 모두 버스에서 내려 바다로 달려갔다. 버스에 혼자 남았다. 창문에 커튼을 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제일 늦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얼마 만인가, 해마다 물가에 갈 때마다 수영복을 잊지 않고 싸들고 다녔는데 번번이 허탕을 쳤었다. 오늘이야말로 내 수영복이 제대로 물을 만난 것이다.
아! 그런데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오리무리에 백조 한 마리가 끼면 바보 오리가 되는 줄 왜 몰랐을까.
삼복더위에 바다에 올 때는 당연히 누구나 수영복을 가져오리라 생각했었다. 우리 일행 중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오로지 나 혼자뿐이었다. 젊디젊은 K, H, U, S… 등등 모두 부끄럼쟁이들이란 말인가. 여름 바다에 오려면 수영복은 필수품이 아닌가. 해수욕장이 무색하다.
모두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들이고 L 선생은 숫제 사각팬티 차림이다. 그래도 모두 좋다고 물을 먹이려고 붙잡고 안 잡히려 도망가고 물장난을 서로 치느라 옷들이 흠뻑 젖어도 박장대소를 하며 어린이들처럼 즐거워한다. 소리를 지르며 밀려오는 파도에 쫓겨 달아나다가 다시 바다로 뛰어들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나이를 잊은 개구쟁이들이다. L은 웬일인지 함께 어울리지 않고 일행들의 소지품을 혼자 지키고 그 노는 양만 바라보고 있었다.
젊었을 때는 내 가족에게 비너스 몸매라고 치기 어린 자랑을 했는데 이제 배불뚝이가 된 내 모습을 오랫동안 과시할 용기가 없어 남보다 먼저 버스로 달려와 옷을 갈아입었다.
점심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 K 어머니가 문어를 손질하고 계셨다. 문어를 데쳐 실컷 먹고 라면을 끓여서 아침 찬밥과 신 열무김치로 점심을 먹었다. 비가 오다말다 하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무더운 더위를 선풍기로 날리며 잠시 낮잠을 즐겼다.
세시가 넘자 바지락조개를 캐러 간다고 모두 일어나서 긴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호미와 양동이, 그물망을 들고 나섰다. 진도에서처럼 모세의 기적같이 바다 가운데 덩그렇게 있는 큰 굴 섬까지 물이 빠져 갈라진 길이 나 있다. K가 앞장서고 한 줄로 뒤따라 큰 굴 섬 앞까지 들어갔다. 조금만 옆으로 걸어가도 발이 푹 빠지고 위험해서 똑바로 걸어야 했다. 개펄에는 벌써 여러 명의 마을 어른들이 와서 조개를 캐고 있었다. 우리도 밭을 매듯이 엎드려서 호미로 개펄을 파 젖혀서 거무스레한 바지락조개를 채취했다. 너무 적은 것은 놓아두고 큰 것만 집어넣었다. 부지런히 하고 물이 들어오기 전에 나가야 했다. 여러 사람이 허리가 아프도록 캐서 모으니까 꽤 많다. 그물망에 넣어 바닷물에 씻어서 들어온 길을 따라 반대로 조심조심 밖으로 나왔다.
부엌 뒤에 있는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 시간을 맞이했다. 부침개를 부치며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 뜻밖에도 K의 어머니가 외삼촌 댁에서 오리고기를 넣은 전복죽을 쑤어 오셨다. 아주 맛난 별미였다. 후식으로는 참외 수박을 시원하게 먹었다. 얼마나 바다에서 짓궂게 놀았는지 P는 귀에 물이 들어가 몹시 괴로워하였다.
여섯 시쯤 S에게 어머니의 부음(訃音)이 전해졌다. 전화 연락을 해서 부리나케 S가 택시를 불러 타고 귀경길에 올랐다. 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계속 오는 밤길에 S가 몹시 걱정되었다. 선착장에서 일곱 시 반에 떠난다던 여객선은 출항하지 못해서 작은 배를 독배로 사서 건너가 광주에서 서울행 버스를 탔다는 연락을 받은 시각은 열 시 반이었다. 우리가 모두 한시름을 놓았다.
자정이 다되어서 서너 명이 양동이를 들고 바닷가에 가서 바닷물을 길어왔다. 조개를 담가두기 위해서다.
작은 S가 준비해 온 연잎 차를 한 잔씩 음미하는 시간을 갖고 어린 날의 비밀들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는 부풀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융의 집단 무의식에서부터 죽음과 영혼, 사후세계 등의 담론이 펼쳐졌다.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겨 하나 둘 잠자리를 찾아 들었다. S 시인과 젊은 L이 제일 나중까지 하는 토론을 자장가로 들으며 나도 잠이 들었다.
밤새 태풍과 비는 이어지고 바닷물 소금기를 잘 씻는다고 샤워를 했건만 상체가 따갑고 더워 견딜 수가 없었다. 거기에 모기 몇 마리가 계속 물어서 몇 번이고 잠이 깼다.
비는 계속 오고 여행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침밥 당번 J 과 H 이 주방에서 준비를 하고 나는 마룻바닥에 식탁준비를 했다. 울릉도 명일엽, 깻잎, 쪽파장아찌를 준비해온 것들이 나왔다.
점심은 우리가 바지락조개를 삶아서 껍데기를 제거하고 죽을 쑤어 깨소금을 듬뿍 넣어 김치와 맛있게 먹었다. 직접 우리가 채취한 조개라 더욱 맛이 있었다.
이웃 섬인 생일도에 가는 계획은 접고 우리 일행은 모두 짐을 꾸려서 K 어머니께 하직인사를 하고 귀경길에 오르고자 금일도 일정 항으로 향했다. 약 30시간 동안 북적대던 친구의 고향집이 다시 옛날처럼 적막에 싸일 것이다. 친구의 어머니는 가끔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천방지축 떠들어 대던 우리를 더듬어 내고 막내딸을 더욱 그리워하지는 않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