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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시작』, 1955, 10)
전후의 상실감을 품다
맹문재(시인, 안양대 교수)
1
「목마와 숙녀」의 지배소(支配素)는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이다. 울프는 현대 심리소설의 기수이자 현대 여성주의 비평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삶에 대한 이해가 우선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영국 런던 하이드 파크 근처에 있는 한 단란한 가정에서 2남 2녀 중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인 레슬리 스티븐은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는 평론가이자 학자였다. 그가 저술한 책으로는 『18세기 영국 사상사』(History of English Thought in the Eighteenth Century)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울프는 여성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당시 영국 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제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아들은 제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딸들은 집에서 그림과 사교춤, 음악, 우아한 몸가짐만 배우면 된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울프는 그와 같은 상황에 심한 불공평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울프는 이복 오빠와 동생의 성추행이며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충격을 받아 평생 동안 여러 차례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된다. 울프의 어머니인 줄리아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재혼이었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전 아내에서 낳은 딸 로라를, 줄리아는 전 남편에서 낳은 조지, 스텔라, 제랄드 덕위스 등 2남 1녀를 두고 있었다. 줄리아는 미인가로 이름이 나 있는 패틀가(家) 출신으로 봉사 정신이 강했는데, 아쉽게도 울프가 13살 때(1895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웃 사람을 간병하다가 전염되어서였다.
울프는 부모가 세상을 뜬 뒤 남동생 토비와 그의 대학(케임브리지대) 친구들과 그녀의 집에서 ‘블룸즈버리그룹’(Bloomsbury Club)을 만들었다. 화가 덩컨 그란트, 경제학자 존 케인즈, 소설가 E. M. 포스터 등 당대의 지성인들이 구성원이었다. 그들은 지식인답게 동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철학 등 전반에 관해 폭넓고도 활발하게 논의했다. 울프는 그들과 교제하며 1905년부터 <타임스>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울프는 1915년 첫 장편소설 『출항』을, 1919년 『밤과 낮』을 발표하였는데 대체로 전통적 소설형식을 추구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1922년에 발표한 『제이콥의 방』에서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주인공이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과 주위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주는 인상을 대조시킨 형식이었다. 그 후 1925년에 발표한 『댈러웨이 부인』에서는 수법을 보다 완숙시켰다. 울프는 소설작품 뿐만 아니라 『현대소설론』(1919), 『베넷씨와 브라운 부인』(1924) 등에서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도 논했고, 1917년 호가스출판사를 세워 출판활동도 했다.
1927년에 발표한 『등대로』는 소녀시절의 원체험을 서정적으로 승화한 것이고, 1928년에 발표한 『올랜도(Orlando)』는 친구 S.웨스트의 전기인데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인간 심리의 깊은 곳까지 탐색했다. 그 후에도 『물결(The Waves)』(1931), 『세월』(1937) 『막간(Between the Acts)』(1941) 등을 발표했는데 한층 성숙된 문체를 보여주었다. 울프는 또한 문예평론집인 『일반 독자(The Common Reader)』(2권, 1925∼1932), 여성론인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1929) 등을 발표해 현대문학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울프는 1941년 3월 28일 남편에게 애정 깊은 감사의 편지를 남기고 우즈강에 투신자살하였다. 남편인 레너드 울프는 정신병을 가진 버지니아 울프를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돌봐주었고 창작 생활을 후원해줄 만큼 좋은 반려자였다. 울프는 1912년 ‘블룸즈버리그룹’의 구성원이자 정치평론가인 L. S. 레너드와 결혼했다.
울프가 소녀시절부터 앓아온 신경증이 이즈음에 재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지대한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공포감이었다. 1939년, 전운이 짙게 감돌던 유럽은 드디어 제2차 세계대전에 휩싸인다. 울프 부부는 검은 천을 사다가 방공 커튼을 만들기도 하지만 독일군의 맹렬한 공격 앞에 집마저 함락되었다. 더욱이 남편 레너드는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파시스트의 공포에 극도로 시달렸다. 그리하여 울프는 나치스로부터 자비를 바라느니 차라리 가스실로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우즈강에 뛰어들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 것이다. 그와 같은 근거는 울프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다음의 유서에서 잘 확인된다. “저는 생명을 잉태해 본 적은 없지만 모성적 부드러움으로 이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지금 온 세계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작가로서의 역할은 여기서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저는 지금 저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2.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제1~3행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는 대상은 두 가지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이다. 여기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라는 것은 그녀의 삶 전체라기보다는 죽음과 관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렇게 죽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등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울프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목숨을 끊었는데 그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전쟁의 공포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근거는 이 작품이 울프의 연대기적인 개인사나 페미니즘의 세계를 띠는 작품세계보다도 전쟁과 관련된 생애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면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는 제3행과 연결된다. 목마는 숙녀가 타야 할 만한 조건이나 가치를 지니는 대상이 못된다. 숙녀는 당연히 목마가 아니라 백마를 타고 싶은 희망과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 상황은 그렇지 못해 숙녀는 기껏 목마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숙녀는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앞 행에서 울프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마찬가지로 6․25전쟁으로 인해 숙녀는 목마를 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전쟁이란 한 인간의 이상과 희망을 여지없이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화자가 전쟁으로 인해 생을 마감한 울프나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된다. 그것은 현실의 처지에 자신이 함몰되거나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직시하고 대항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신다는 것은 센티멘털하거나 경박한 행위가 아니라 적극적인 인식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제4~6행은 앞의 행이 부연 내지 강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난 상황. 숙녀의 탈 것이 안 되는 목마마저 주인을 버렸다는 사실은 더욱 참담한 상황을 나타낸다. 그 목마가 가을 속으로 떠났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을이란 결실과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겨울의 초입, 즉 죽음의 도입을 상징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의 가을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실감과 비애감을 나타내는데 기여한다. 그것은 “술병에서 별이 떨어”지는 상황으로, “상심한 별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지는 상황으로, 즉 한 인간의 이상이나 꿈이 좌절된 상황으로 변용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제7~11행 역시 앞의 상황을 계속 잇고 있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지만(시작품이 ‘자라고’이기 때문에 순접관계로 읽어야 되지만 뒤의 문장과 연결할 때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역접관계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앞의 ‘잠시’와 연결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말 듯이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한다. 청운의 꿈을 품고 자라난 소녀였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전쟁의 발발로 인해 문학이며 인생이며 사랑의 진리마저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세속의 말이 있듯이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사랑의 본질은 상실되고 만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제12~14행에 이르러서 상황이 달라진다. 전쟁의 폐허로 인한 비애감과 상실감에 함몰되거나 비관하지 않고 나름대로 극복하려고 결의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월은 가고 오는 것”이라는 세계관에서 우선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오는(온) 세월이란 전쟁 일어난 다음의 상황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그 세월이 영원할 수 없고 또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세월이 약이라는 세속의 말도 있듯이 시간이란 오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가는 대상이도 해 현재의 참담한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고 낙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세가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는 모습이다. 인간이란 철저히 사회적인 존재여서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그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들로부터 독립해서 살아갈 수는 없다. 따라서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는 자세란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면서 가는 세월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와 같은 세계관이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는 결의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 절망하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극복하기 위해 작별을 노래하는 것이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제15~23행은 앞의 자세가 좀더 부연 내지 적극성을 띠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은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데서 우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늙은 여류 작가란 당연히 버지니아 울프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녀의 눈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바라다보아야 한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등대에……/불이 보이지 않아도/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라는 데서 또한 확인된다. 등대의 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페시미즘(비관주의)의 미래를 위하여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인식이 비관적이라고 할지라도 좌절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맞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는 주장에서,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데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물론 버지니아 울프가 작품의 지배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기도 한다.
한계가 있는 존재이지만 최대한 극복해 나가겠다는 화자의 다짐은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라는 데서 또한 드러나고 있다. 바위틈을 지나가는 뱀의 움직임이란 그야말로 온몸으로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으로 보면 제1~3행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이야기하고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는 행동이란 슬프거나 비관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행동임을 알 수 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화자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세계인식은 제24~30행에서도 볼 수 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인식. 진정 인생이란 독자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치장하고 있는 잡지의 표지처럼 서로의 욕망과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통속적이라고 해서 인생이 부패했다거나 가치 없다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욕망을 가진 존재들이기에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전쟁으로 인한 상실감이나 허무함에 자신이 고립되기보다는 삶의 시장터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와 같은 면이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이다. 현재의 상황이 목마를 탄 숙녀와 같다고 할지라도 한탄하거나 증오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의연하게 떠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떠나는 행동이 곧 망각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딛고 나아가기 위해서 작별하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란 “목마는 하늘에 있고/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가을 바람 소리는/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이다. 따라서 이 부분의 행들은 도치되어 있는 형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제27~30행의 상황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제24~26이 이어지는 것이다. 6․25전쟁으로 인해 삶의 조건이 처절하게 무너졌지만, 그 상황에 비애감과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리하여 다소 센티멘털한 표현으로 노래했지만, 현실을 극복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결코 가볍지도 모던하지도 않다. 오히려 시대 상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무게가 있고, 극복하려를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단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