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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김기정
|||『바나나가 뭐예유?』를 통해 널리 알려진 작가로, 1969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출판사에서 기획, 편집 일을 했다. 늘 놀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좋은 동화를 쓰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노력의 결실로 2004년 『해를 삼킨 아이들』로 제 8회 ‘창비 좋은 어린이 책 공모전’에서 창작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바나나가 뭐예유?』,『고얀놈 혼내 주기』,『박뛰엄이 노는 법』,『별난 양반 이선달 표류기』등과 같은 작품에서는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표현이 돋보이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바나나가 뭐예유?』와 같은 작품에서는 바나나가 귀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표현해 어린이들에겐 순수한 동심을 전달하고 어른들에게는 동시대 인들이 느낄 수 있는 추억을 선사한다.
또한『네버랜드 미아』,『해를 삼킨 아이들』, 『비야 비야 오너라』 같은 책들은 어린이들의 순수함과 선함을 통해서 찡한 감동을 선사하는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좋은 어린이 책 대상을 수상한 『해를 삼킨 아이들』과 같은 작품에서는 역사와 창작동화를 함께 엮어 역사를 재해석해보는 방법을 도입하여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도 하였다. 현재도 여전히 어린이들의 마음과 동심을 대변하는 작품들을 생산하기 위한 창작활동을 끊임없이 전개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2004년 『해를 삼킨 아이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온 동화작가 김기정. 그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백석의 시(時)「박각시 오는 저녁」을 바탕으로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빚어냈다. 어린 손자 고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돌아가신 할머니 집에 찾아간 주인공 고마가 박각시, 주락시 등의 풀벌레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작가는 특유의 순수하고 섬세한 문체로 고마와 숲 속 풀벌레들의 신비로운 만남을 들여다보면서, 돌아가신 어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작은 생명일지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전한다. 여기에 따스한 정성으로 작품 곳곳을 어루만지듯 풍부한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화가 장경혜의 그림이 더해져 읽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어린이 독자뿐 아니라 어른 독자의 마음까지도 사로잡기에 충분한,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마흔 중턱의 동화작가, 시에 깃든 마음속 풍경을 펼쳐 보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한 ‘나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노래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영화이기도 하며, 어떤 이에게는 어릴 적 들었던 끝내주게 재미난 동화일 수도 있다. 동화작가 김기정에게는 백석의 시 「박각시 오는 저녁」이 그러하다.
충북 옥천에서 나고 자란 김기정 작가는 자연을 벗 삼아 지내며 자유롭고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철 따라 바뀌는 푸나무들을 바라보고, 이름도 생김새도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생물들을 만져보면서 자유롭게 자랐다.
마흔 중턱에 이른 어느 날, 작가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백석의 시 「박각시 오는 저녁」을 찬찬히 읊조려 본다. 「박각시 오는 저녁」은 1938년 『조선문학독본』에 실린 백석의 작품으로, 자연이 깃든 저녁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낸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가는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글 쓰며 달려온 시간 동안 잊고 지낸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을 돌이켜본다. 그러고는 시에서 출발한 하나의 이야기를 짓기 시작한다.
이 시를 읽고 숨을 고른 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고는 아주 오래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렸어요.
한때 나 역시 저녁밥을 먹고 식구들이랑 마당 툇마루에 모여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들었습니다. 거기서 별을 헤아리고 지나간 옛이야기들과 낮 동안의 사연을 풀어 놓으며 머나먼 꿈을 꾸었더랬죠.
그리고 이 시를 읊조리며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와 무엇을 잊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더불어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도요. (‘작가의 말’에서)
그동안 작가의 동심(童心)에 바탕이 된 순수한 마음과 아련한 정서는 「박각시 오는 저녁」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각시와 주락시』는 기본적으로 「박각시 오는 저녁」에 대한 오마주이지만,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때로는 높은 곳에서 숲 속을 내려다보고, 모퉁이에 숨어 풀벌레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하며, 때로는 주인공 고마가 되어 떠난 이들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전한다.
아름다운 시가 이야기를 빚어내고, 거기에 따스한 그림이 더해져 완성된 동화 『박각시와 주락시』. 곳곳에 다양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신비로운 판타지
오늘 고마는 아주 오랜만에 시골 할머니 댁에 간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처음이다. 아빠가 할머니 집을 팔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집은 오래된 시골집이다. 지역이 개발되면서 크고 높은 건물이 생겼고, 할머니 집은 화려한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다.
아빠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집을 빨리 팔아 버리자고 닦달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아빠를 말렸다. 집은 함부로 파는 게 아니라고, 나고 자란 곳을 어떻게 그리 쉽게 파느냐는 말씀이었다. 어린 고마는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돌이켜봐도 할머니 손에 들려진 사탕만 떠오를 뿐이다.
못 본 사이 집은 더 많이 낡아 버렸지만, 고마는 모처럼 찾은 그곳이 반갑기만 하다. 마당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곳곳을 살피던 고마는 벌레 한 마리를 발견한다. 고마는 별생각 없이 벌레를 잡는데, 그 순간 대문 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고마가 깜짝 놀란 사이,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던 벌레는 사라진다. 대문 앞에는 언제 왔는지 집을 보러온 손님이 도착해 있다.
사내는 어정쩡한 자세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안녕하신가요?”
목소리는 유난히 가늘고 높았어요.
구만 씨가 벌떡 일어서며 물었습니다.
“아, 집을 보러 오신 분입니까?”
약속보다 한 시간이나 빨랐습니다.
사내는 머뭇거리며 대답했습니다.
“하하, 소식 듣고 부랴부랴 날아왔습니다.”
(본문 19쪽)
사내는 생김새가 아주 우스꽝스럽다. 홀쭉한 몸매에 안짱다리, 돈 주고 샀다고 믿기 힘든 이상한 깃털 모자를 쓰고 있다. 사내는 집을 둘러보겠다며 뒤쪽으로 사라지고는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 아빠는 사라진 사내를 찾으러 간다. 홀로 남은 고마는 뒤뜰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저만치 앞에 누군가 앉아 있다. 고마보다 서너 살 정도 많아 보이는 가녀린 여자아인데 자세히 보니 다리를 못 쓰는 앉은뱅이다.
“니도 가니?”
“어딜요?”
고마가 눈을 동그랗게 하자 또 물었습니다.
“그럼, 닌 누구니?”
“고마요.”
앉은뱅이 누나가 무릎을 치며 말했습니다.
“아! 할머니 손자구나. 그럼 가도 돼.”
“누구세요?”
앉은뱅이 누나는 배시시 웃더니 말했어요.
“주락시!”
(본문 26-27쪽)
고마는 얼떨결에 주락시와 함께 길을 떠나고, 때마침 열린 숲 속 잔치에 참석한다. 낯선 이들이 여럿 모인 널따란 잔치 마당에는 고마가 처음 보는 것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고마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주락시는 원래 앉은뱅이가 아니었단다. 모인 이들이 주락시한테 어쩌다 다리가 그렇게 되었는지 묻고는 너무 안타까워하는 거다.
주락시는 멀뚱거리고 있는 고마를 모인 이들에게 소개한다. 할머니 손자라는 말에 모두 반갑게 고마를 맞아 주고, 고마 역시 괜스레 기분이 좋다.
그때 붕붕 소리가 나는 듯싶더니, 걷는 듯 춤을 추는 듯 성큼성큼 저 멀리서 누가 걸어온다. 아까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바로 그 사내다. 사내의 이름은 박각시. 생김새만큼 특이한 이름이지만 고마는 애써 웃음을 참는다. 모여 있는 이들에게 박각시는 꽤 듬직한 존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 박각시는 예서 젤로 용감한 사나이란다. 힘센 동무들이랑 떠났던 거야. 우리가 살 곳을 찾아서 갔다가 이제 막 돌아온 것이고.”
고마도 살살 숨을 죽여 물었어요.
“여기서 살면 안 되나요?”
“이 숲이 곧 없어지거든.”
고마는 또 물으려고 했어요. 그때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었어요. 풀 잎사귀들이 마치 인사라도 하는 듯이 옆으로 누웠어요.
(본문 40-43쪽)
고마는 궁금한 것투성이다. 대체 집 구경 하다 사라진 박각시는 어디를 다녀온 것인지, 여기 모인 이들은 어떻게 할머니를 알고 있는지, 이 멀쩡한 숲은 왜 없어져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에 가득 찬 물음을 정리할 새도 없이 고마는 눈앞에 펼쳐진 또 하나의 신비로운 모습을 마주한다. 풀들이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옆으로 누워 있고, 모인 이들도 허리 굽혀 절을 하고 있다.
고개를 돌리자 나이 든 할아버지가 서 있는데, ‘땅지 영감님’이라고 한다. 땅강아지를 꼭 닮은 할아버지다. 땅지 영감은 고마를 보더니 난데없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그러고는 잠시 뒤, 땅지 영감은 하늘을 우러러보더니 이상한 주문 같은 걸 외고는 하늘을 보며 큰절을 두 번 한다.
이제야 고마는 오늘 이 모임이 잔치가 아니라 제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조상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자리인 것이다. 고요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 제사가 끝나고, 고마는 모인 이들과 작별을 한다. 올 때와 달리 돌아가는 길은 고마가 주락시를 등에 업었다.
주락시를 등에 업었을 때, 고마는 손끝에 뭔가 잡히는 걸 느꼈어요. 주락시의 가느다란 다리뼈였죠. 부러졌다는 그 뼈였습니다.
고마가 고개를 돌려 주락시를 슬쩍 보았는데, 주락시는 그냥 웃어 줄 뿐이었어요.
“많이 아팠어요?”
“아니,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고마는 어쩌다 그랬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눈물이 자꾸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본문 58-59쪽)
고마가 작약 꽃 위에 있던 벌레를 손으로 잡지 않았더라면, 주락시는 두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있었을까?
고마는 주락시와 처음 만난 길목에서 헤어지고, 왔던 길을 되돌아 할머니 집으로 달려간다. 아빠에게 들려줄 숲 속에서 일어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잔뜩 안은 채로.
그런데, 과연 아빠 구만 씨는 고마의 이야기를 믿어 줄까?
사라지고, 잊혀 가는 모든 것을 위하여
요즘 아이들이 꿈을 잃어버린 채 온갖 숙제와 학원에 삶을 저당 잡힌 지는 이미 오래다. 아이들은 우정을 쌓기 전에 살벌한 경쟁부터 시작한다. 뭔가를 함께하고 서로 나누는 마음을 배우기 전에, 쟁취해야 할 목표를 방해하는 요소로 친구를 받아들인 까닭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괜찮아, 지금은 공부가 제일 중요해.”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어른들은 어떠한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를 빼앗고는, 정작 자신은 ‘힐링’에 도취해 있다. 텔레비전을 볼 때, 음식을 먹거나,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는 순간까지, 도처에 스며든 ‘힐링’에 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실천에 옮기지만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남들만큼 해야 하고, 이왕이면 남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끝내 버리지 못한 탓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바쁘게 몰아치는 일상을 힘겹게 살아내는 동안,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간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어린 시절 동네, 한가롭게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싱거운 농담을 나누며 함께 웃던 친구, 전화 한 통 제때 드리지 못하고 떠나보낸 할머니 할아버지, 해 질 녘 아름다운 노을과 날마다 바뀌는 하늘, 우리 주변 수많은 자연의 목소리…….
우리는 왜 이리 바쁜 것일까. 대체 무엇이 그리 중요하길래, 삶 곳곳에 놓여 있는 보석 같은 순간을 흘려보내고 사는 걸까.
이토록 안타까운 현실에서 한 편의 동화가 주는 힘은 미미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각시와 주락시』는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숲 속 풀벌레들과 고마의 신비로운 만남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치는 소중하며,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 함을 넌지시 전하고 있다. 낡고 오래되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저마다 나름의 빛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이다.
오늘 하루쯤은 크게 숨을 고르고, 스쳐 지나쳤던 주변을 살펴보자. 아주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고, 조그맣게 보일지라도 눈을 크게 떠 보자. 혹시 아는가, 우리도 고마처럼 박각시와 주락시를 만나게 될지.
첫댓글 김기정 선생님 새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책 재미있겠네요~ 기대가 많이됩니다.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