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본래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이라고 불린다.
성인은 1567년 8월 21일
이탈리아의 독립 공국인 사보이아(Savoia)의
토렌스(Thorens)에 있는 가문의
성(城)인 샤토 드 살(Chateau de Sales)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태어난 시기는
종교개혁 결과로 칼빈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 교회가 많은 곤경을 당하던 때였다.
성인은 1578년부터 1588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1586년 성인은 영신적인 위기에 빠졌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위기에서 탈출하고 영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성인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맡기는 봉헌식을 거행하였기 때문이다.
성인은 처음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했었지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성경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성인은 다시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신학과 교회법과 일반법을 전공하여
불과 24세 때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593년 12월 18일 안시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성인은 1594년 샤블레(Chablais) 지방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52개의 본당을
다시 가톨릭교회로 돌이키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곳은 칼뱅주의자들이 약 50년간 가톨릭 신앙을 금지하고
프로테스탄트를 강요하던 지역으로
사보이아 공국이 되찾은 지 얼마 안 되는 선교 지역이었다.
암살자와 칼뱅 교도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이곳 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인은 스위스 제네바 교구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다가,
선임 교구장이 선종하자
주교를 계승하여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
성인은 곧 종교개혁자에 대항하는 지도자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성인의 지혜와 지식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뛰어난 고해신부이자 설교가였다.
성인은 해박한 신학지식과 이해심으로
어려운 교리를 쉽고도 감명 깊게 가르쳤다.
그리하여 이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복음의 기쁨으로 채우는데 정성을 다 바쳤다.
또,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주교로서 자신의 교구를 훌륭하게 지도하면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규정에 따라 재건하는데 헌신하였다.
정기적으로 견진성사를 집전하고
사목방문으로 본당을 방문하였으며,
학교를 세우고 예비자들을 가르쳤다.
또한 성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들의 영성을 위한 서간과 저술들을 통하여
교구민을 훌륭하게 동반하며 다스렸다.
성인은 1604년 부르고뉴 지역의 수도인
디종에서 사순절 특강을 하였는데,
그때 네 명의 어린 자녀들을 둔 젊은 남작 미망인인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을 처음 만나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 후 1607년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과 함께
기존 수도회의 육체적 엄격함을 견디기 어려운
젊은 여성들이나 미망인들을 위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도회는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데 노력하였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리옹(Lyon)에 있는
성 마리아 방문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머물렀는데,
이때 그는 뇌일혈을 일으켰다.
성인은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예수, 내 하느님 나의 전부여!”라고 기도한 후,
그 다음날인 1622년 12월 28일 선종하였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저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신심생활 입문”과
“신애론”을 들 수 있다.
“신심생활 입문”은 성인의 사촌 누이동생을 위해
생각했던 가르침을 내용들을 담은 저술이다.
그 안에서 “신심”은 ‘
각자가 처해있는 위치나 직업 안에서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생활로 증거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언어는 단순하지만,
갈증을 풀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1662년 1월 8일
교황 알렉산데르 7세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고,
1665년 11월 19일
알렉산데르 7세에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 이후 1877년 11월 16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으며,
1923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작가와 언론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사랑의 박사’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선함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졌던 생애를 살았다.
교회는 그의 축일을 1월 24일에 지낸다.
글... 청주주보 3면,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