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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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제국 전공자인 구범진 교수가 쓴 <병자호란과 천연두>란 논문입니다. 요즘 시대에 현대인들은 수두접종으로 천연두 면역력을 가질 수 있지만, 전 근대 시기 천연두 즉 만주어로 ‘마마’는 하늘에서 내리는 천벌, 무서운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자호란 당시 천연두가 큰 영향을 발휘했다는 점을 구범진 교수가 비판적인 사료 검토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 당시 청 황실과 만주족의 핵심 인사들이 천연두에 면역력을 가지지 않은 몸, 즉 생신(生身)이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만주를 평정하고, 예봉을 명나라 본토로 돌리려는 청 황실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이 마마였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만약 천연두가 발병한 지역에 청 황제가 직접 출병할 경우, 치명적인 전염병에 노출되어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았습니다(실제로, 청 황실과 만주족 인사들이 마마로 사망하는 경우가 상당했는데요. 중국 본토를 장악하고도 청 황제가 마마로 사망하기도 합니다. 순치제와 동치제가 대표적인 경우죠). 청 황제는 마마의 유행 조짐이 보일시에 수도에서 떨어진 ‘열하’로 몽진해, 전염병의 위험을 피하려 했죠.
절대권력의 화신인 청 황제가 가장 연약한 ‘생신의 몸’이라는 아이러니가 병자호란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병자호란이 벌어졌던 1637년 1월, 청나라는 조선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에 대한 명나라의 후방지원도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던 상황이었죠. 정묘호란부터 이어진 청에 대한 조선의 저항으로, 청이 조선을 멸국시키고 직접 지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자호란은 조선 지배세력을 직접 굴복시키려는 의도로 치러진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청나라는 이런 유리한 조건에서 만주족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강화도 섬 상륙작전을 벌이고, 남한산성에 고립되어 서서히 붕괴해가던 조선 정부에 강화협상을 서두르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저자는 바로 조선에서 마마의 유행 조짐이 나타나고 청 부대에서 마마환자가 발발하기 시작했음에 주목합니다. 청 황실은 이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 마마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청 황실과 만주족 인사에게 전염병의 유행을 차단하기 위해 조선과 빨리 강화를 맺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