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녕하세요? 요즘은 남아 있는 휴가를 어떻게든 소진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렇다고 업무가 좀 한가하느냐 물으신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아니거든요.
그래도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 책은 그 저녁 시간을 사수하며 읽은 혹은 들은 소설이랍니다.
도서명: 아웃렛
저자: 송광용
* 이 책은 전자도서 플랫폼 윌라를 통해 오디오북 콘텐츠로 감상했습니다.
* 소개글 서평
‘고양이가 화자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소설을 들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예전에 일본 작가가 쓴 고양이가 화자인 책을 읽었었는데, 그게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던 이유도 컸다. 무엇보다, 《아웃렛》이라는 소설 제목이 특이해서 말이다.
덧붙이자면, 흔히 시기가 살짝 지난 옷들을 모아 판매하는 곳을 ‘아울렛’이라고 표기하곤 한다. 그러나 올바른 표기는 이 소설 제목처럼 ‘아웃렛’이다.
《아웃렛》 - 아웃렛 주차장에 불시착한 고양이의 두 번째 묘생 이야기
“그날, 우주 밖으로 튕겨져 나온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고양이가 되었다.” 🐈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고양이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래는 집고양이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길고양이가 되었다.
어찌어찌 낯선 아웃렛 주차장에 불시착한 주인공 고양이는 두 번째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희미해지는 자신의 존재를 붙잡기 위해 이전의 이름을 버리고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름, ‘아웃렛’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고서 말이다.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아웃렛의 옷들처럼, 고양이 아웃렛 또한 마지막일지 모를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린다.
😿 “집사님은 내게 늘 사랑을 표현했다. 그 사랑의 기억은 이제, 사람의 음식처럼 나를 아프게 한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그중 1부의 이야기는 아웃렛이 주차장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현재 상황과 집고양이로서 집사 은영과 함께 살던 과거 회상을 오가며 전개된다.
우연히 마주친 ‘요물’이라 불리는 고양이에게서 한 번 더 집사와 살 기회가 보인다는 말을 듣고 희망을 품은 아웃렛은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 위에 올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거나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소년에게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런 노력과는 상관없이 희망은 점점 요원해지기만 한다. 자신은 똑같이 고양이인데, 옆에 주인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취급이 달라지는 부분에 당혹해하기도 한다.
그 대목이 인간 사회와 닮아 있어서 오디오북을 듣다가 잠시 ‘정지 버튼’을 눌렀더랬다. 왜 있지 않은가? ‘나’는 똑같이 ‘나’인데, 외모나 환경, 상황과 직위 등 외적 요인이 달라졌을 때, 다르게 대하는 주변 시선 같은 거 말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편, 씁쓸하기도 한 인간 사회의 일면을 소설 속 아웃렛의 이야기에서 보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는 사이사이 아웃렛은 그리운 순간들을 떠올린다. 불 꺼진 주차장에서 엎드린 채 어둠을 응시하며 생각한다. 집사님과의 일상과 추억을, 연인 고양이 아그네스와의 사랑과 이별을.
추억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주인공 고양이 아웃렛의 모습은 우리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너무 인간다워서, 종종 고양이라는 점을 잊을 정도였다. 하기사, 인간만이 회고하고 사색한다는 통념은 지독한 오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순간에는 대수롭게 지나친 일들, 사건들을 새삼 곱씹는 건, 아웃렛이 집사의 울타리라는 경계의 바깥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리라.
보통 어렵고 힘들 때 좋았던 과거, 곧 추억을 회고하는 만큼 아웃렛이 처한 환경이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방증한다. 요컨대, 1부의 이야기는 추억을 그리워하며 써내려간 고양이의 회고록인 셈이다. 고독한 순간에야, 뒤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누구든 그 무엇이 됐든,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 걸까? 사랑이 곁을 떠났을 때야, 자기가 받은 사랑을 깨닫는 것처럼.
그러나 아웃렛의 기억은 회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고난과 추억이 묘하게 오버랩되며 아웃렛 내면에서 일어나는 고민의 촉매제가 되는 것. 이런 성찰과 되새김을 통해 아웃렛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역경을 버무려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
“넌 앞으로도 널 사랑해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할지 몰라. 그래도 넌 고양이의 호의를 얻은 최초의 쥐일 거야.” 🐭
그런 어느 날, 고양이는 아웃렛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쥐를 잡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한다. 하지만 쥐를 사냥하려는 순간 엉망인 자신의 모습과 초라한 쥐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로 인해 아웃렛은 고양이와 쥐, 종과 먹이사슬 관계를 떠나 경계를 허물고 유대를 나눈다. 누군가의 입장과 처지가 문득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찰나의 충격이란... 그 순간 우리는 나와 너, 타자의 경계를 뛰어넘어 ‘연민’을 품게 되는 걸까? 또는 공감하게 되는 걸까?
📑 “아무리 세상 끝 경계 바깥에 있는 존재라도 자신의 경계 안에 누군가를 들일 수 있는 법이다. 모두가 세상의 거대한 경계 안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각자가 지닌 경계를 열어둘 때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는 걸, 난 녀석이 뱉어놓은 개암나무 열매를 보며 깨달았다.” 🐀🐈
소설 속에서 쥐는 자신을 살려준 고양이에게 개암나무 열매를 선물한다. 개암나무는 종종 서양권의 헤이즐넛(Hazelnut)과 동일시되는데, 그 헤이즐넛의 꽃말은 ‘평화’이다. 작가가 그 무수한 열매 중 개암나무를 택한 건, 쥐와 아웃렛의 공감과 유대를 은연중 상징하는 장치로 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실제 개암나무와 헤이즐넛은 식물 분류상 같은 과에 속할 뿐, 엄연히 다른 종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연상 작용으로 인해 ‘개암나무 = 헤이즐 = 평화’가 이어졌으면 됐지.
하여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쥐 잡이 사건을 계기로 고양이 아웃렛은 아웃렛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곧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이었다. 길고양이가 거리에서 살아남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계절이다. 그래도 아웃렛은 끝까지 ‘희망’ 하나는 품고 있자고 다짐한다. 그의 집사님 은영의 말처럼 희망은 그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열쇠이기에.
과연 아웃렛은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집사님과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경계를 넘어 닿는 온기의 여정 - 《아웃렛》
소설 2부는 동물보호소를 무대로 펼쳐진다. 바깥보다 안전이 보장된 곳이지만, 케이지 안에서 지내야 하는 나날이었다. 아웃렛은 그곳에서 ‘제리’와 ‘미키’를 만난다. 둘 다 유명한 쥐의 이름이다. 그들은 아웃렛의 이름을 듣고 ‘Out rat(바깥의 쥐)’이냐고 하면서 자신들처럼 쥐의 이름을 가졌다고 환대한다. 그렇게 소속감을 부여하려는 배려에 아웃렛은 제리, 미키와 보내는 동물보호소의 나날에 적응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안락사를 앞둔 삶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시한부인 셈이다.
대개 자신이 시한부라는 걸 알게 되면 보일 반응은 이럴 것이다. 그럴 리 없다며 부정하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 분노하다가,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한 뒤,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자며 수용한다. 이른바 ‘불행을 마주하는 4 단계’이다.
나는 동물보호소의 안락사를 알게 된 대목에서 아웃렛이 동물보호소를 탈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아웃렛은 탈출하는 대신 친구인 제리와 미키의 말에 귀 기울이며 하루하루를 더 의미 있게 보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이 사금처럼 반짝일 수 있도록.
🐈⬛ “자고로 고양이는 말이야, 세 부류로 나뉘지. 도도한 정통 고양이, 개처럼 들이대는 개냥이, 그리고 우리처럼 이도저도 아닌 쥐냥이.”
턱시도 고양이 ‘미키’는 다리를 다쳐 조금 절뚝이지만, 항상 당당하고 익살꾼이다. 툴툴대면서도 잔정도 많다. 집사 가족에게 아이가 생긴 것을 계기로 방치되다가 버려졌다. 하필 아기가 고양이 털 알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감 없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추억으로 간직하는 미키를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아웃렛이 집사 은영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서 자신의 이름을 잊고 새 이름을 지었다면, 미키는 그 반대로 깊은 그리움으로 쥐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는 셈이다. 방식은 달라도 ‘그리움’은 선연해서 그 대목이 가슴을 울렸다.
😸 “선의를 포기하는 순간, 삶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는 가능성, 그건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킬 가치가 있는 거니까.”
한편 ‘제리’는 노교수와 살다가 스스로 집을 떠난 고양이었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고양이를 학대하고 죽이는 인간 말종, 일명 ‘박하맨’의 표적이 된 까닭이다. 박하맨은 제리를 해치기 위해 그의 집사님을 공격했고, 제리는 자신이 남아 있다가는 노규수의 안전이 위협받을 것임을 깨닫고 떠돌이 고양이가 되었다.
사랑해서 작가 집사님 은영의 곁에 돌아갈 희망을 품은 아웃렛, 사랑하기에 노교수 집사님의 곁을 떠난 제리, 이 또한 방식은 다르지만 둘 모두에게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역시 애잔했다.
📑 “비바람을 견딘 열매들만이 끝까지 나무에 달려 있게 돼. 그런 열매들이 온 마을을 밝히는 계절이, 가을이야.” 🍁🍂
안락사 위협도 모자라, 또 다른 위기가 제리와 미키와 아웃렛이 있는 동물보호소를 덮친다. 악연으로 얽힌 빌런의 등장이었다. 전자책으로 들었다면 그냥 웬 미친놈이구나 했을 텐데, 오디오 콘텐츠로 들어서 순간 오싹 소름이 돋았다. 뭐지, 이 집착 사이코는?
나머지 내용은 소설을 읽으라는 의미에서 따로 적지 않겠다. 단지, 책의 말미에서 아웃렛 주차장에서 만난 소년 준이와 재회하는데, 그는 동물과 대화하는 신비한 능력을 깨달은 상태였다. 에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연상되는데, 거기에 판타지 요소를 넣은 것 같다. 이렇듯 사이코 박하맨의 행동이나 고양이가 보이는 모션을 단서로 수사에 나서는 형사 등 몇몇 설정은 좀 과장된 거 아닌가 싶은 인상이 들었다. 그럼에도 소설 《아웃렛》을 끝까지 완독한 건, 글 전체에 녹아 있는 진솔함과 성찰, 다정한 온기 때문일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웃렛은 그토록 그리던 집사님과 재회한다. 이제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가을’로 돌아온 고양이는 그 모든 일들을 잊지 않기로 한다. 아웃렛이었을 때의 기억, 제리와 미키의 죽음, 작은 쥐와의 유대감 등.
1부에서 가을이 집사님과 함께하며 쌓은 기억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면, 2부에서 아웃렛으로 겪은 기억은 온전한 자신을 완성하는 촉매가 되었다. 그렇게 고양이 아웃렛은 제리와 미키, 아웃렛 주차장의 작은 쥐, 어른스러운 고양이 아그네스, 은영과 민성, 노교수와 형사, 신비한 소년 준이 등 확장된 관계를 전하고 남기는 기록자의 역할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문장을 곱씹게 되는 책이었다. 중간중간 예쁘거나 의미가 있거나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성장과 고독, 외로움과 온기, 경계와 그 바깥, 그 틈에서 마주하게 될 수 있는 기적과 희생, 영문을 모르기에 더 끔찍한 악의와 그에 굴하지 않는 선의, 아스라하지만 놓칠 수 없는 희망과 그 모든 것의 밑바탕에 깔린 애정과 사랑.
별반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면 그것은 별일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일에서 무언가를 깨닫는다면 그때부터 기적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찰나가 기억이 되고, 단순한 기억을 넘어 추억이 되고, 영원으로 이어지는 여정.
아웃렛의 불시착은 사고였으나, 그것은 큰 의미가 되었다. 경계와 경계 사이에 있는 당신에게도 이 소설을 추천한다. 애잔하지만, 또 이따금 눈물 좀 흘리겠지만, 결국은 작은 온기로 남을 이야기를.

첫댓글 삶이란 우연이든 필연적으로 돌발적인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헤쳐나가는 방법과 수단은 제각각 이지만 끝은 이성과 상식의 수준을 이어 간다는 것. 내가 성선설을 좋아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