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으로 살만했지만 불현듯 지쳤다 떠나고 싶었다
팔당을, 아니 이땅을…
10년 농삿일 버리고 해외 공동체 순례하다가
다시 돌아온 팔당
“사람이 닭만도 못할때가 많지요”
서울에서 한강을 거슬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북한강 쪽으로 10여분 올라가면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다. 지난 25일 한강을 굽어보는 야산으로 둘러싸인 비닐하우스 양계장에선 ‘닭의 해’를 반기듯 닭들이 홰를 치며 활갯짓을 한다. 마음껏 뛰놀고 매일 유기농 야채를 먹어서인지 닭들에겐 건강미가 넘친다.
계란을 낳는 알집엔 장닭이 암탉을 품어서 낳은 유정란이 가득하다. 계란을 꺼내 담는 김병수(45)·정은하(38) 부부의 얼굴에도 한강에 스미는 노을빛만큼이나 넉넉한 홍 조가 물든다. 오랜 방랑을 끝낸 남편과 그런 방랑을 감내한 아내다. 그래서 부부의 다정한 모습에 닭들이 더욱 환호하는지 모른다.
김씨는 지난 2001년 8월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양계장과 논밭도 팽개쳐두고 비행기에 올랐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어쩌면 젊은 시절 너무나 열심히 살아왔기에 조로 현상이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내의 3년 기다림 끝에…
그가 팔당에 온 것은 1981년. 송촌보건진료소장으로 온 어머니를 따라와 정착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86년부터 자신이 다니던 용진교회의 청년 신자들과 함께 <조안 소식>이란 마을 신문을 내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산하 기독농민회 교육홍보국장으로 일하던 그에게 팔당은 농업을 말과 글이 아닌 삶으로 실천하는 땅이었다. 91년엔 직장도 그만두고 전업 농부가 됐다. 대학 때 탈반이었던 실력을 발휘해 풍물패도 만들고 소식지를 통해 마을일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도 높여갔다. 그런데도 농촌에서 살 길을 모색하기 어려웠던 청년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10여명이 만들던 소식지에도 주간인 그 혼자 남았다. 힘이 달렸다.
활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95년 이웃 농부들과 함께 만든 게 팔당생명살림의 옛 이름인 팔당상수원유기농운동본부였다. 그는 초대 사무국장이었다. 그 때까지 상수원 구역이어서 농사와 주거 등에서 제한만 받고 경제적인 활로를 찾지 못했던 이곳 사람들에게 유기농은 희망의 빛이었다. 닭을 기르고, 겨울에도 딸기를 심고, 채소를 가꾸면서 도시로 떠나지 않고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떠났던 청년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도망은 자유가 아니다
자신도 마을 사람들도 먹고 사는 일은 상당부분 해결됐지만, 만족은 없었다. 농한기도 없이 겨울에도 일하다보니, 일에 지치고, 욕망에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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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가 이제 막 여물기 시작한 딸기를 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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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해외 공동체 순례길에 나섰다. 아내에게 손을 내밀기도 미안해 공동체에서 봉사하며 체류비를 면제받는 식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 남미의 생태공동체와 영성공동체들에 머물렀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76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다시 카누를 타고 이틀을 가 도착한 곳이 잉카족의 후예들이 아마존에 가꾼 ‘산토 다이메’란 공동체였다.
가톨릭이 원시 종교 속에 용해돼 성모 마리아 대신 숲의 어머니인 산타마리아와 교감하는 공동체였다. 600여명의 가족들은 이틀간 숲길을 걷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산타마리아와 하나가 되었다. 구성원들은 각기 달랐지만 조화로웠다. 그들과 함께 숲 길을 걸으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오랫동안 자신을 옮아 맨 구속감에서 벗어났다. 도망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자유임을. 깨버리면 프라이 밖에 될 수 없는 계란을 품어주면 어엿한 닭이 된다던가. 그처럼 아내의 기다림 끝에 그는 지난해 10월 돌아왔다.
이렇게 무려 2년 1개월이나 계속된 그의 순례는 끝이 났다. 그러나 그 동안 그가 돌보던 3천여수의 닭들은 병이 들어 모두 묻어야했다.
장닭은 암닭보다 힘있어도…
팔당생명살림의 정책기획위원장인 그는 양계장을 새로 시작했고, 유기농조합이 세운 식품 가공공장인 두물머리식품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4천여 평의 농토도 다시 ‘돌아온 농부’의 손길을 맞이했다. 그가 못 견디게 벗어나고 싶었던 그 땅이고, 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가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은 곳이며, 사람들이다.
“얼굴 색이 다르고, 지방이 다르고, 정치색이 달라서 다투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뿌리를 보면 다툼 속엔 개인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지요.”
그는 대의명분으로 무엇을 내세우던 그 속엔 내 욕심만 채우려는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그가 팔당에서 농민들이 다듬고 남은 야채들을 실어와 닭장 속에 부려놓자 장닭보다는 암탉들이 먼저 달려든다.
“ 사람이 닭만도 못할 때가 많지요. 장닭들은 힘으로 암탉들을 제압하고 밥을 독식 할 수 있지만, 밥이 나오면 힘 없는 암탉들이 먼저 먹도록 물러나 있지요.”
약육강식의 욕구보다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은 농부에게 한 닭이 친한 친구처럼 다가선다.
“내가 닭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닭이 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팔당/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김병수씨네와 이웃 다섯가족
“유기농만 짓지말고 우리도 유기적으로 살까?”
달 빛이 흐르는 한강이 창문 밖으로 펼쳐진 언덕 위의 하얀 김병수씨 집에서 농부들의 웃음이 새어나온다. 겨울을 녹이는 사랑방의 정취다.
김씨와 후배 농부 노태환씨, 서주섭씨, 그리고 팔당생명살림 교육홍보팀장인 정영기씨가 함께 술 잔을 돌리며 얘기꽃을 피웠다.
김씨가 세계 공동체를 순례하고 팔당에 돌아온 뒤 주위의 후배 농부들과 함께 시작한 게 소모임이다.
유기농사를 지으면서도 삶은 유기적으로 살지 못한 유기농가의 한계를 넘어서보자는 게 김씨의 생각이었다. 정을 나누고, 농사일을 서로 돕는 이웃끼리의 전통적 관계가 깨지면 유기농사를 지어 경제적으로는 나아질지라도 삶의 윤기를 잃어 결코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김씨는 1년 전부터 틈나는 대로 이렇게 모여 농사일과 개인사를 함께 나누고, 한 달에 한 번은 여섯 가정의 모든 가족이 함께 모인다. 초보 농부는 선배들로부터 소중한 경험을 전수받는 시간이 되고,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상대가 바쁜 날엔 품앗이도 하기 시작했다.
부부 간에도 꺼내지 못했던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고, 해결점이 찾아졌다. 최근 방과 후 학교를 만든 것도 태환씨 부부가 농사일에 열중하는 동안 하교한 아이들이 컴퓨터에만 매달리는 고민을 털어놓은 게 씨앗이 되었다.
이 소모임을 이웃의 다른 여섯 가정도 꾸려가기로 했다. 농부들은 만남을 통해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성을 회복해가고 있다.
조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