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눈동자’
숲에서 소리가 난다. 산 정상을 가린 채, 빼곡이 둘러선 나무들이 울리는 잎사귀들의 환성이다. 바람을 따라 일제히 일어나던 그 소리는 이내 자작나무, 잔불 타는 듯한 수런거림으로 잦아든다. 이따금 새들이 날카롭게 우짖는 파열음이 숲의 적막을 깨운다. 잠시 나뭇둥걸에 걸터 앉았다. 스르르 눈을 감자 이내 까마득한 심연으로 빨려드는 듯한 현기증이 인다.
이십여 년을 함께 한 글벗들과 찾은 인제의 자작나무 숲속이다. 삶의 언저리에서 서로 격려하며 바라봐주던 벗들은 언제 보아도 고맙고 든든하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오래 전에 찍혔던 아픔이 한 점 매달려 있었다. 언젠가 세월이 지나다 보면 한 번은 말할 수 있으려니 했던 일이다. 그런데 사흘을 함께 지내는 동안 이렇듯 마음이 편안한 걸 보니 그 일은 이미 내 마음에서 사라진게 분명하다. 그리움도 오래되면 바래듯, 아팠던 기억도 그렇게 삭아 버렸나 보다.
산 정상을 가리며 비탈에 사열하듯 늘어선 나무의 하얀 껍질이 주변을 환하게 밝힌다. 나무들은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받기 위해 하늘로 발돋움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어쩌려고 그 나무 누수처럼 새어든 빛을 반사하는 옷을 입었을꼬. 글벗 중 한 선생님이 대답한다. ‘나무들도 옆지기가 필요해서 그랬던 거야.’ 맞다. 그래야 모진 폭풍우도 서로 의지할 수 있지 않은가. 덕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무들 사이에 빛이 넘나든다. 넓은 들판에 홀로 서서 그 많은 빛을 혼자 다 받아들인 나무는 이해하지 못할 우정이 넘실거린다.
몇 년 전, 바이칼 호숫가에서 자작나무 군락지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핀란드의 어느 산허리를 달리면서 버스에서 바라보았던 자작나무 숲과는 판이한 광경이었다. 숲은 정령들이 숨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신비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러시아 아가씨들이 금방이라도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나올 것 같은 밝고 사랑스러운 빛이었다. 울창한 숲인데도 빛이 넘실거리고 있는 차가운 대기는 가히 ‘숲의 귀부인’이라 불릴 만큼 도도한 기운을 품어내고 있었다. 북유럽의 백야만큼이나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그러나, 외국 여행의 길목에서만 보았던 자작나무의 인상이 정작 내 마음을 전율케 한 곳은 양편의 남한강 기였다.
무수한 잎을 은빛 강물에 반짝이며 서 있는 자작나무 추운 산림대에서 자라는 북쪽 지방의 나무가 어떻게 예까지 내려와 뿌리를 내렸을까. 궁금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다가간 순간, 낯설고 특이한 모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희고 매끈한 나무 껍질에 흑갈색으로 도드라진 그것은 분명히 눈동자였다. 슬픈 듯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눈빛까지 필시 사람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얼어붙은 듯, 깊은 전율에 휩싸여 바라본 커다란 동공에는 예리하게 그려진 홍채까지 뚜렷했다. 아득한 옛날에 차디차게 얼어붙은 땅을 추억하는지 동공을 둘러싼 선의 회오리는 깊고도 서늘했다. 어떤 사연을 품었기에 저토록 애절한 눈빛을 가졌나. 저릿해져 오는 느낌을 안고 나는 그 앞을 서성거렸다. 나무 뒤롤ㄹ는 잔잔히 출렁대는 강물에 담청색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나무들의 생장 과정에서 수간에 형성되는 측지 중에는 끝내 살지 못하고 고사하는 것들이 있다. 말하자면 자작나무 잇자국만큼 선명하게 남은 .그 상처에는 곧 세포들이 집중적으로 모여들면서 서서히 벌어진 부위를 매워나간다. 그리하여 가지가 떨어져 자리는 나무의 무뉘를 따라 소용돌이치듯이 굳어지면서 지문을 남긴다. 귀에 박힌 말이나 가슴에 맺힌 상흔처럼 패인 자리가 나중에는 더 단단한 옹이가 되는 것이다. 줄기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문득, 남한강 가의 그 눈빛이 생각나 두리번거려 본다. 한때는 싱싱한 나뭇가지가 뻗어나간 시작점이었을 그 눈동자가 이곳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수파 같은 터치의 검은 형체만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을 뿐, 결기에 찼던 그 눈동자는 어디에도 없다. 마치 내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듯했던그 선명한 눈빛! 그것은 어쩌면 나뭇가지에 걸려 굴곡져 있던 노을만큼이나 힘들었던 그때의 내 마음은 아니었을까.
삶이란 씨줄 날줄처럼 엮인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때로는 상처를 받고 가슴속 한가운데에 큰 돌이 앉히기도 한다. 무얼 그리 힘들까 싶은 하찮은 일이라도 사람마다 얽힌 인연 따라 그 차이가 다른 걸 어쩌랴. 상처는 누가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 없이 다 아프다. 깊고 깊어서 덧날 것만 같았던 그 자리도 세월 속에서 아물어지는 이치를 한가운데서는 알기 어렵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나 또한 인생의 불우한 봉우리를 넘어서야 깨닫는다.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보게 되는 선물이라고. 오래 전 내 상처는 세월에 바래져 날아간 게 아니라 깊었던 만큼 단단히 아문 눈동자가 된 듯하다.
문득, 이십여 년을 함께 해온 글벗들을 다시 바라본다. 뒤틀림 없이 수려하게 벋은 자작나무 같은 모습들이다. 그 도안 한결같이 맺어온 인연의 고리가 얼마나 단단한지, 서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금 내 옆에 있다는 충일감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바람이 또 서로 스크럼을 짜고 있는 숲을 흔들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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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필집에 의하면,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폐절제술 이후로 이어지는 통증이 산골 요양중에도 계속되고 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또 수필집 머리말에 ‘내 이야기는 건강하기만 했던 몸에 수술 자국이 늘어나면서 그 전과 후로 나워진 것이 보인다.’라고 하였다. 필자는 종양 제거 수술을 하고서 쓴 수필로 여겨진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어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 말이 나온 김에 자작나무 이야기를 해 볼까요.
(자작나무 숲의 기억-문학 사랑방에서 공부한 일이 있어서)
북구의 바이킹은 드네프로 강을 따라 남하하여 흑해까지 이르렀다. 이 길은 그들의 침입로이기도 하고, 해상 무역로이기도 하고, 문화가 전파되는 통로이기도 하였다.(우크라이나가 이 길에 해당한다.)
그들의 신화에는 이란계의 유목민족 신화에서 북구의 신화까지, 다양한 민족신화가 혼합되어 있다. 하늘, 번개 등을 상징하는 최고의 신에서 민중에서 모시는 정령까지, 이들의 문화를 혼합한 키예프를 중심으로 키에프 루시 공국이 나타난다. 그래서 키에프 루시를 러시아의 어머니라고 한다. 1500년 대에 몽고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모스코바가 러시아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음유시인들은 자신들의 신화를 민중들 앞에서 읊으면서 키에프 루시 공국의 곳곳으로 돌아다녔다. 그들이 문자를 만들어서 구전으로 전해오던 이야기를(신화를) 자작나무에(껍질에) 기록하였다. 이것을 ‘자작나무 숲의 기억’이라고 말한다.
자작나무는 러시아인들에게는 아주 신성한 나무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통로로서 러시아 샤먼이 신성시 하는 나무이다. 이 나무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 무속신앙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바이칼 호수 지역으로 여행가서 자작나무에 특히 의미를 주는 이유가 우리 무속의 뿌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노래를(음유시인이 부른—거의가 신화적 내용이나 역사적 이야기이다.) 자작나무에 기록하였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자작나무 숲의 기억’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서 기억을 전해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전해지는 기억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신성한 의미를 지니게 하지 않을까요.
(*수필에 저장는 나의 기억, 이라고 하면 어떨가요.)
첫댓글 이왕이면, 고대 러시아의 역사 공부를 조금 할까요. 오늘의 우크라이나, 벨라스크, 러시아에는 슬라브 족이 살았고, 북쪽의 스칸디니아 반도는 게르만 족에 속하는 부족들, 바이킹이 살았다. 북쪽 땅은 기후와 토질이 나빠서 농사짓기가 어렵다. 이들은 그래도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고 무역을 하면서 살았다. 식량이 떨어지면 남쪽으로 내려와서 노략질했다. 바다 쪽은 바이킹이 독일, 프랑스, 영국의 해인자역을 노략질했고, 내륙 지방은 드네프로 강을 따라 교역도 하다가, 양식이 떨어지면 강도가 되어서 살았다. 9세기 경이 되면 살기가 무척 어려워진 바이킹들이 남쪽으로 처내려 온다. 드네프로 강을 따라 처내려온 바이킹은 키예프를 중심으로 공국을 세워 지배자가 된다. 말하자면 키예프 루스이다 러시아의 뿌리이다. 주민은 슬라브 족이고, 지배자는 바이킹이었다. 이후 그리스 정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았다. 이롯서 러시아는 그리스 정교 문화권이 되었다. 13세기는 몽고족 침입으로 식민자화 되고, 16세기는 모스코 공국이 중심이 되어 몽고족을 몰아낸다. 이후 모스코바가 러시아의 중심이 된다. 러시아란 말은 바이킹이 세운 키예프 루스의 루스에서 따왔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