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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빌립보서 1장 1~11절
제목 : 복음과 은혜에 참여한 교회
빌립보서는 바울에 의해서 기록 되었고, 기록연대는 주후 61년 경입니다.
성경 말씀은 다 좋아하지만 특히 빌립보서를 좋아 합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세계 많은 기독인들이 빌립보서를 특별히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빌립보서는 우리의 현실에 가장 적중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부 한자는 부 한자에게 적중하고, 없는 사람은 없는 자에게 적중하고, 슬퍼하는 자, 고통당하는 자, 기뻐하는 자 모든 사람에게 다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의 특징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입니다.
(옥중서신:에베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 빌레몬서)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수감된 몸입니다.
그러면서 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감옥 안에 있지만, 감옥 안에 있다는 말을 강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매인바 된 몸이라는 것으로 옥중에 있다는 사실만 언급했을 뿐, 모두가 다 주안에서 이 기쁨을 내가 누리니 너희도 주안에서 이 기쁨을 함께 누리자는 것으로 이 빌립보서의 중심 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빌립보서의 특징입니다.
둘째는 주안에서의 편지입니다.
주안에서의 서신이란 주님이 바로 그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신과 그리스도가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는 하나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일체를 말합니다.
그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요,
그의 생명과 주님의 생명과 일치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입을 벌릴 때마다 주 예수가 그 입에서 튀어 나옵니다.
우리가 생각하면 바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차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 예수로 가득 차 있는 분이 바로 바울입니다.
그래서 이 빌립보서 안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이 57회나 오고, 예수 그리스도 라는 표현이 7회,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이 8회,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이 3회, 그리스도 라는 말이 19회나 나오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기쁨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좀 문자적으로 말하면 희락의 복음이라, 이 기쁨의 복음, 기쁨의 서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장에서 4장까지 주의 기쁨, 바울의 기쁨, 성도의 기쁨, 곧 나의 기쁨으로 연결이 됩니다.
이 빌립보서 1장, 2장,3장,4장마다 어떤 구절은 2절마다 절절마다 기쁨을 말씀 하시는 데 이 기쁨은 주의 기쁨입니다.
곧 이 주의 기쁨이 바울의 기쁨으로 연결됩니다.
이 바울의 기쁨이 성도의 기쁨으로,
이 성도의 기쁨은 믿는 자 나 자신의 기쁨으로 연결되어,
마치 물이 한 호수를 타고 흐르는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쏟아 나는 이 기쁨이 바울을 통하고 성도를 통하고
나 자신을 통하여 이 기쁨이 복음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1장 18절은 전도의 기쁨을 말합니다.
전도하는 자는 기뻐합니다. 기쁨에 의하여 우리의 전도가 나옵니다.
울고 다니는 사람이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 해도 믿지 않습니다. 어쩌든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남을 만날 때마다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 그것 자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1장 25절에는 믿음의 기쁨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오늘 처음 믿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내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고 나면 마음이 얼마나 새로워지는지 모릅니다.
무엇으로 새로워집니까?
전에 없던 기쁨이 나옵니다. 전에 없던 평안이 나옵니다.
이것이 여러분 자신에게 주신 믿음의 기쁨입니다.
믿는 자의 자랑, 그것은 곧 믿음의 기쁨입니다.
기쁨은 믿음의 특징입니다.
2장 2-4절에는 사랑의 기쁨을 말합니다.
2장 17-18절은 순교자의 순교의 기쁨을 말합니다.
2장 28절은 교제의 기쁨을 말하고,
3장 1절, 4장 4절에서는 주안에서의 기쁨,
4장 1-10절은 성도로 인한 기쁨입니다.
매일성경에서는
1) 고난 중의 기쁨(1:1~26), 2) 섬김 중의 기쁨(1:27~2:30),
3) 믿음 중의 기쁨(3:1~4:1), 4) 나눔 중의 기쁨(4:2~23).
바울은 너희들로 인하여 내가 기뻐하게 하라,
너희는 나를 인하여 기뻐해라,
우리는 서로 서로가 서로를 인하여 기뻐하고 살수 있다고 하면 그처럼 복이 없습니다.
바울은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고 말씀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때에 설립된 교회로 유럽에 세워진 첫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감옥에 있는 상활에서 빌립보 교회에 대한 감사와 기도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바울은 오랜 세월사역에 동참한 공동체에 감사와 애정을 표현하며,
지금보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어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이란 그리스도의 소유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피 값으로 바울을 사셔서 죄의 종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음을 증거합니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인 자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은 철저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 중심인 것을 강조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살다가 결박당하여 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어도 여전히 그는 예수의 종이라는 신분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주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종은 주인을 위해 살고 주인에게 철저히 복종합니다.
주인의 명령에 핑계하거나 거절하거나 지연 시킬 수 없습니다.
종은 주인의 눈치만 봅니다.
종에게는 주인이 그의 인생의 전부입니다.
누가 무엇이라 말하든 종의 귀에는 주인의 목소리만 있을 따름입니다.
토미테니, 데이빗 케이프의 “종의 마음”이란 책에 보면
“진실한 종의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종은 즐거움으로 섬깁니다.
사65:14에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라고 말씀 했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분이 누구신지 안다면 그 종은 즐거움이 넘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든 일을 할 때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5:42).
우리가 진실한 종이 되어 항상 자발적인 기쁨으로 섬겨야 하는 것은 그래야만 우리가 행하는 사랑의 섬김이 계속해서 위엄과 기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종은 결코 이렇게 묻지 않습니다 “내 몫은 무엇이죠?”
종 요셉은 이집트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해 있을 때나 하나님이 그를 높여 바로 왕 다음의 자리로 높이셨을 때나 변함없이 축복하는 길을 선택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결코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내 몫은 무엇이죠?”
그는 그저 감옥이든 왕국이든 어디서든지 간에 종의 옷을 입기로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이타적인 섬김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최고의 본보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셋째는 종은 섬길 기회를 찾습니다.
종은 뒤로 물러서거나 인정을 받을 기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섬길 기회를 찾습니다.
넷째는 종은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에도 섬김니다.
사람들 앞에서보다 홀로 있을 때에 온 전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드러내놓고 사람들에게 하는 행위보다 우리 중심의 순전함에 도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고백하여 지금도 어디까지나 빌립보교회를 예수의 종으로서 섬기고 있다고 밝힌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자세로 그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이 흐려지면 사역도 덩달아 변질 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사역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면 끝 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는 자세에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 중심의 사역이냐? 아니면 내 야망 중심이냐의 갈림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서 주님의 명예를 위해서 철저히 순종(복종)하면 하나님이 귀히 사용 하실 것입니다. [예화]모세, 다윗, 사무엘, 엘리야
2. 모든 성도를 품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가슴에 품습니다.
1절 하반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진정 예수의 종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을 섬기고자 합니다.
예수의 참된 종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받들어 섬깁니다. 이게 성경의 원리요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안에 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직분자라고 선호하거나 유독 가까이 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평신도라 하여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직분자와 평신도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슴으로 안아 섬깁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빌립보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합니다(2절).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안식과 평화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섬기는 자입니다.
군림하려고 해서는 예수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비록 옥중에 매인 몸이지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육신은 움직일 수 없어도 사역은 매이지 않습니다.
빌립보교회를 향한 사랑을 편지에 담아 정성스레 전달합니다.
조금도 주장하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겸손히 섬기려는 마음뿐입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3.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바울(3~8절)
바울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기도할 때 감사함과 기쁨으로 기도했습니다. 3~4절입니다.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사도 바울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살전 5:18절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골3:17절에서도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의 유명한 인물들은 항상 감사 하였습니다.
창4:1~7(아벨은 믿음으로 감사), 창 8:20~22(노아의 감사),
출18:11~12(모세와 이드로의 감사), 단6:11(다니엘이 감사)을 볼수 있습니다.
감사할 만한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진정 감사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일에 조차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예화] - 크로스비
크로스비라는 여자는 앞 못 보는 소경으로서 9,000여 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쓴 사람입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등 은혜로운 찬송시를 많이 쓴 사람으로서, 식모의 불찰로 소경이 되었으나 어려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듣고 영의 눈이 열려서 기도하는 중에 신령한 노래를 많이 썼습니다. 그는 아홉 살 때 기도하기를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 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터인데,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내 눈을 멀게한 그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불평, 원망 대신에 감사와 자족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로, 행위로 늘 감사하여야 합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파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세가지로 인해 늘 감사한다. 첫째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이요, 셋째는 소망이다”라고 했습니다.
간구할 때마다 항상 기쁨으로 간구 했습니다.
하나님은 탄식하는 기도보다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더 좋아 하십니다.
감사는 기도의 기본 요소입니다. 빌 4:6~7절입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감사와 기쁨의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의 기쁨의 기도는 “터가 움직이고 옥문을 열리고 쇠 사슬을 벗겨지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기쁨은 죄를 이기고, 의심을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악을 이기는 권세 였습니다.
바울의 기쁨은 세상적인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신혼여행의 기쁨, 재물의 기쁨, 출세하는 따위의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기쁨이었습니다.
창세전에 택하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인 치심을 받은 데서 오는 영적인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릴 때 기쁨으로 기도하고,
물론 죄를 애통 할 때는 울어야 되고, 눈물을 쏟아야 되지요!
그러나 성도의 진정한 회개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사랑을 통하여 오기 때문에 감격적인 눈물에 의하여 진정한 회개가 나옵니다.
예수 십자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내 죄 사함을 얻었다는데서 진정으로 나 자신이 죄인인 것을 참회하고, 자신의 모든 과오와 잘못과 허물을 하나님 앞에 애통하게 되는데, 그 애통의 눈물 역시 감격의 눈물을 근거로 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 할 때 진정으로 나 자신이 죄인인 것을 주께 참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의 모든 기도, 감사기도, 찬양의 기도, 회개의 기도, 간구의 기도, 도고의 기도 이 모든 기도 역시 기쁨을 기초로 하고 기쁨을 근거로 하여 진정한 기도가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의 기쁨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간구함은:
① 바울의 복음전도에 그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5절).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라고 했습니다.
② 빌립보 신자들 가운데 선한일 (착한일=구원의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반듯이 그일 (구원의 일)을 완성하실 줄 확신 한 까닭입니다(6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③ 빌립보 신자들이 바울의 은혜에 참여 한 자가 되었습니다(7절).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8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했습니다.
4. 바울의 기도 제목(9~11)
1) 사랑의 지식과 총명으로 더욱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9절)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 그 사람의 약점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 예수님은 베드로가 3번 부인하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을 때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 유대인들은 바른 지식이 없는 열정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고 “자기의”를 세우는데 열성을 기우려 멸망을 받았습니다.(롬10:2,3)
- 지식이 없는 사랑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 “지식과 총명”의 통제장치가 없어서 “사랑”을 받는 자식이
“사랑하는” 부모에게 이를 갈며 앙심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을 실현하는 데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랑 안에서 진리와 지혜가 전제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없는 사랑은 허무합니다.
그 사랑은 총명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통찰력과 분별력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만약 사랑에 분별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생명을 파괴하는 자리에 이룰 수 있는 정도로 위험할 수 있습니다.
2)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 하도록 기도 했습니다.(10절상반절)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 “지극히 선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 다윗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3)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 까지 이르기를 원했습니다.(10절하반절)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인간관계에서 거짖이 있으면 진정한 관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여” 이것은 기독교 윤리의 방향과 전지성을 제시합니다.(고후5:9~10)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4)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도록 기도했습니다.(11절상반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 의는 하나님 이 십니다.
- 성령의 열매가 가득 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열매는 행동을 의미 합니다. 원어로 보면 열매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인데 9가지 행동을 의미합니다.
9가지 맛이 들어 있습니다. 무슨 맛입니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맛입니다.
- 히12:11절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 우리는 아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행함을 통해서 빛과 소금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사랑을 실현하는 삶을 통해 긍극적으로 의의 열매를 가득 맺기를 바랍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네트워크 된 하늘 가족입니다.
가까이 있으나 멀리 떨어져 있으나 서로가 복음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와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힘을 얻을 수도, 절망할 수도 있다는 책임감과 공적인 사명의식을 가지고 힘 들드라도 현제의 고난을 말씀으로 다 이겨 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 까지 우리 삶에 사랑을 통한 의의 열매 가득 맺치길 소망합니다.
5)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기도 했습니다.(11절하반절)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 아들이 잘되면 이는 아버지의 자랑입니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랑하였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뻐하지 못할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환경과 조건이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이런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저가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예레미야 8장에는 너희가 기뻐하는 것이 힘이니라 불평하지 마라,
짜증내지 마라, 교만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겸손하라, 온유하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부부가 기뻐하고 행복하면 자녀들이 기뻐합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부모가 기뻐하고,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고, 없는 속에서도 기뻐하고, 주예수로 인하여 기뻐하는 가운데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끼고, 감사하고, 온유하고 겸손하며 거룩하며, 나눔과 섬김의 삶 속에서 행복이 절로 이루워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다면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 모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러한 복을 다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모든 주도권을 쥐고 우리 안에 시작하신 착한 일을 완성하십니다.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완성하실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부름받은 일꾼들은 일의 결과를 예단하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하나님은 인간이 가진 조건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가진 것이 없다고 또는 부족하다고 해서 뒤로 물러설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착한 일을 완성하실 것을 신뢰한다면, 더욱 열심히,
더욱 기쁘게 그 일에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공동체의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참 종입니다(1,2,8절).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대면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 얼마나 사모하며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능력을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와 평강을 바르게 선포하도록,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복음과 사랑을 공유하도록 기도합시다.
2) 복음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3~7절).
빌립보 교회는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보다 더 형편이 좋진 않았지만, 바울의 사역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까지 돕는 사랑의 본을 보였습니다(고후8:1~5).
이를 통해 빌립보 교회는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교회의 한 몸 됨을 증언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복음사역과 구제를 위해 후원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도 적극적으로 복음사역에 참여하여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까?
3) 그리스도의 날까지 영적으로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9~11절).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하게 자라난 사랑은 옳은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하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들을 맺게 하기 때문입니다.
분별력 없는 어리석은 행동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말씀묵상과 기도로 날마다 성장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