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歸巢本能)이란 말을 가끔 듣습니다. 동물이 자신의 서식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생활하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호랑이는 죽을 때에 자기가 태어난 굴에 들어가서 죽는다고 합니다. 연어는 바다에서 살다가 태어났던 곳으로 와서 산란을 하고 일생을 마칩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뉴스에도 나왔습니다. 1993년 진도군 돈지리라는 마을에 한 할머니가 키우던 7개월 된 진돗개가 대전으로 팔려가게 되었는데, 얼마 후 이 백구는 주인을 그리워하다 목줄을 끊고 머나먼 길을 헤맸고 무려 7개월 만에 진도의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가장 빠른 길로 이동하더라도 300km에 달하는 거리인데 마음 아프게도 집에 도착한 백구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거지요 그 후 주인의 보살핌으로 7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첫 귀소본능은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인간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사람의 영은 셋째 하늘,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의 죽은 몸은 흙으로 돌아가는데 그곳이 원래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된 생명체라면 본래의 자리가 있다가 거기서 벗어나면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고유의 명절 설날입니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라면 설날과 추석은 반드시 고향에 찾아 가고 싶은 마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도로가 막히고, 고향길이 멀더라도 귀향행렬은 그치지 않습니다. 고향을 이북에 두고 월남한 실향민들이 계십니다. 그들은 명절이 되면 고향이 그리워 임진각이라도 가서 멀리서 고향을 바라보며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의 마음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에서도 본향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14절 중반절에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절.....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면 16절....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이처럼 본향이란 단어가 3번이나 나옵니다.
나열한 말씀에서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나온바 본향과 더 나은 본향입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태어났을 때 태어난 고향이 있다면 어느 시간 어느 때 주님이 나를 부르셔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그때부터는 더 나은 본향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본향이란 본래의 고향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태어난 자신의 고향에서 그대로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타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타향살이를 해도 어릴 때 놀랐던 정든 고향이기에 찾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가면 태어났던 엣집 그대로 부모나 형제가 살기도 합니다. 훈훈한 고향냄새가 나지요
명절 때면 풍속도가 바꿔져 자식이 고향에 오는 것이 너무 고생을 하니까 부모님들이 얘야! 고생하고 내려오지 말아라 내가 올라가마!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자식에게 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자식이 있는 곳에 올라와 함께 명절을 보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무안군 일로면 이라고 하는데 바로 아기 때 목포로 이사하여 살았기에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목포라고 그냥 말하게 됩니다. 제가 신학교 3학년 다닐 때까지도 목포에서 살았으니까 목포는 고향이나 다를 봐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광주로 오셔서 사셨던 이후로는 고향목포는 점점 멀어지게 됐고 가끔 교회 행사가 있어서 목포에 가면 정들었던 고향의 느낌은 사라지고 왠지 낯선 타향에 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고향 같은 곳은 나사렛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 가셔서 하나님나라를 외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이적도 행하셨는데 고향 친족들이 예수님 하는 행동을 보고 붙잡아 집에서 쫓아내기도 했습니다.(막3:21) 고향사람들이 반겨주기보다 예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 말씀을 하셨지요.....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탄식하신 후 고향에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신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고향을 찾아갔지만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고향을 찾지만 기대보다 좋지 못한 일들이 있기도 합니다. 고향에서 사람들을 만나 잘 지내면 좋은데 가족 간의 불화도 있고.... 명절 때면 여자들은 부엌일을 너무 하다보니까 명절이 싫어지고, 남자들은 형제간에 또는 동서 간에 비교되는 것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고, 때로는 부모님의 재산 문제 때문에 다툼이 생겨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가 사는 땅에서는 참된 안식, 참된 평안, 참된 기쁨, 참된 환영을 받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땅의 고향은 누구나 나그네가 잠시 머무는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13절 하반절에.....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 임을 증언하였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거처할 곳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나그네길입니다....... 언젠가는 떠날 곳입니다... 잠시 머무는 하숙집과 같습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아무리 좋은 집을 짓고 살아도 그 집은 언젠가 더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머무는 고향이 아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이스라엘 족장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나은 본향이 하늘에 있고 하늘에 있는 이 본향을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의 집, 즉 고향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가나안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평생을 거기서 살았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는 고향으로 시작하여 고향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이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시키기도 했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서 한 가지 위대한 점이 있다면,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면서도 거의 백년동안 육신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 땅을 단 한 번도 찾아간 흔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고향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번 떠난 이후, 다시 육신의 고향을 찾거나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을 본향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곳에 묻혔고, 아내와 아들, 심지어 자부와 손자도 그곳에 묻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향으로 삼았던 가나안은 오늘날 우리가 가야할 더 나은 본향 천국입니다.
천국이 우리의 영원한 본향입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부터 내가 장차 갈 더 나은 본향으로 이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본문말씀 15절..... ‘나온바 본향’을 떠나....... 16절......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영원한 성을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본향 천국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살지만 꼭 우리가 죽어서 가는 영원한 본향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은혜를 입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는 바로 그곳이 그 어디나 우리의 영적 고향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의 고향을 오기만을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을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눅17:20-21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 임하니이까? 예수님은 답하시기를 “ 하나님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가 있다 저기 있다가도 못하리니 하나님나라는 너희안에 있느니라” ....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 나은 본향이 궁극적 하늘나라 천국이지만 지금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곧 영적 고향이요 천국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438장 우리 마음에 와 닿습니다.
1.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2.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3.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예수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설날 명절! 땅과 하늘길이 막혀도 고향에 가겠다는 마음처럼 우리가족이 예수님을 잘 믿고 하늘나라 영적고향 본향을 항상 사모하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