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행 10:1-6절
제 목 :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
일 시 : 2024. 11. 10.
사도행전 10:1-6/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요즘 청년 실업율이 매우 높습니다. 거의 100만 명의 대학졸업자들이 아직 취직을 못한 채 취준 생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청년들이 좋은 기업체에 취직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런 어려운 때에 대기업인 삼성, 현대, S.K, L.G, 기아, 한화 등의 기업에 취직하게 된다면 영광스러운 일이고 미래가 보장됩니다. 또한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교사가 된다거나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공무원이 되는 것도 동일한 일입니다.
이처럼 교사가 되고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국가가 그 사람을 불러 준다는 뜻이며, 대기업에 취직한다는 것은 대기업에서 그 사람을 불러 준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래가 보장되고 직장과 물질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입니다. 일종의 성공한 사람입니다. 국가나 대기업에서 부름받는 것도 이렇게 영광스럽고 미래가 보장되는 복된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코로나19사태나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경제난을 겪으면서 기업들이 경비절감과 체질개선을 위해서 명예퇴직자들을 뽑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업에 취직되었어도 명퇴를 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들에게는 명퇴가 없고 경제난 같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부름받고 선택된 사람들은 영원한 행복과 부요와 천국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늦게 부르심을 받았지만 노년에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 즉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불러주신 사람이 있습니다. 고넬료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달리야 부대(이탈리아 사람으로 구성된 부대)에 예속된 백부장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대장이나 중대장정도의 지위를 가진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인 고넬료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와 구제를 받으셨다는 뜻이며, 또한 그의 경건한 삶을 받으셨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서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성도로서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와 예물(물질)과 매일의 삶 등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있고,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을 보시면 아담의 아들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사의 방법이나 내용이나 제물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그것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의 삶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인가 그렇지 않는 삶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은 어떤 사람이었고, 가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창4:2-8/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고 했습니다.
5절을 보시면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했습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지 그 이유를 바로 뒷부분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뒤의 말씀을 보시면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라고 했습니다. 만약 정상적인 성도로서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았고 응답되지 않았으며, 자신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고 하면 어떤 자세와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왜 나의 기도와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까? 라고 분을 내가 화를 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으로 엎드려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절대주권자이십니다. 세상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시고, 어느 누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을 수도 없고 대항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대항하거나 대적한다면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과 같습니다. 100번 싸워도 100번다 실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싸우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화를 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호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아니면 결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면서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응답하신다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외면하시고 듣지 않으신다고 해도 나는 처음부터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항변하거나 원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잘못이 있는 냥 하나님께 화를 냈습니다. 안색이 변했습니다. 먼지 같고 티끌같은 존재가 창조주 하나님께 화를 내고 안색이 변하였다는 것은 자신이 창조주가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먼지와 티끌 같은 존재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교만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분수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가인의 마음속에 사탄이 들어가서 결코 취해서는 안될 방자하고 잘못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엎드려서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즉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누구든지 죄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가인과는 정반대의 사람 아벨의 예배를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그의 제사가 어떻게 드려졌기에 하나님이 받으셨을까요? 성경에는 단 한 곳에서 그의 제사의 특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11: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고넬료의 삶에 대해서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방인 고넬료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을까요? 그의 삶의 어떤 부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을까요?
본문 3-4절을 보시면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삶을 오래 동안 지켜보셨습니다. 그의 경건하고 아름다운 삶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기 위해서 천사를 그에게 보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넬료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환상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신구약성경에서 누구든지 환상을 보고 환상 중에 천사를 만나서 천사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환상을 통해서 천사를 만나게 되고 천사의 말을 듣게 되었는데 천사가 하는 말의 내용은 사도 베드로를 초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많은 삶들 가운데서 특별히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1) 먼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라고 했습니다.
주의 사자(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하는 말을 보면 고넬료의 신앙과 행실을 하나님이 용납하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달하다란 아나바이노 라는 하는데 올라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 보좌에까지 올라갔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였다는 것은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었다는 말이며, 고넬료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과 예배와 기도와 구제와 모든 삶이 하나님께 올라가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기억하신 바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구약적인 표현으로(출2:23;17:14) 위로와 격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구제와 기도를 다 기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저자 누가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위로와 격려와 함께 (1) 고넬료가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점과 (2) 이방인인 고넬료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기독교인으로 개종되는 과정을 보여 주심으로 이방인에 대한 선교와 복음전파의 정당성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방인인 고넬료를 부르셔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제 고넬료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본받고 지향해야 할 삶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신 고넬료의 삶은 경건한 삶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 주는 대표적인 삶이 구제와 기도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2절에서는 구제가 먼저 나오지만 4절에서는 기도가 구제보다 먼저 나옵니다.
그 당시의 삶에서 구제와 기도가 굉장해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하나님의 관심사는 구제와 기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제란 동정, 즉(가난한 자에게 나타내는)자선, 혹은 자비, 구제(행위)라는 뜻으로 궁핍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물질을 나누어 주는 자선행위를 의미하며, 구제는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기도란 프로슈케 라고 하는데 기도, 예배, 예배당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구제는 이웃사랑이고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제는 이웃에게 자신의 물질로 베푸는 것이지만 기도는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과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두 가지를 함께 보시고 받으십니다. 한 가지만 잘해서는 안됩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 사랑을 뒤로 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하나님 사랑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받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받으시고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복을 주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22:36-40/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12:13/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란 사람의 본분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입니다. 즉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개나 돼지나 짐승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으로 만들어진 존귀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본분이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아래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 이웃의 필요를 채워 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행되는 모든 악행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 아닌 귀신들을 섬기는 삶을 살 때,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데서부터 모든 악한 일들과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테러와 전쟁과 악행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때 평화가 찾아오고 드디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이 실천되어집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이와 같은 삶, 즉 인간의 본분에 충실하여 최선을 다하는 그의 삶을 받으시고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베드로를 초청하여 복음을 듣게 하여 구원받게 하시고 성령의 불을 받게 하셔서 능력의 삶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행10:1-6절을 읽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의 특징을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자신의 기도와 예배와 삶을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는 의미는?
4.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기억하신 바 되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5. 고넬료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받으십니까?
아멘
1.가인의 삶이 하나님앞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않으셨고 가인은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않으심에 대한 회개가 나온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분과 안색이 변하는 교만한 마음이 나왔다
2.하나님앞에 죄송한 마음으로 엎드려 회개하고 죄인임을 고백하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3.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 되었다는 것입니다
4.고넬료가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것이며 이방인인 고넬료를 부르셔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뜻입니다
5.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