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탕
정다은
나와 붕어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곪을 대로 곪아 터질 듯한 붕어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는다
불록하게 차오른
비닐봉지 주둥이 위로 비가 샌다
오랜만에 목을 축이는
내 혀끝에서 비늘이 돋는다
어머니는 숫돌에 칼을 벼리고
내 몸의 비늘을 하나씩 긁어나간다
벗겨진 비늘 사이로 여린 피부가 보인다
끓는 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창작동기: 맑은 어느 날 나는 붕어가 되는 환상을 보았다. 비리고 시린 비늘에 덮여 허우적대던 나는 포식자에서 잡아먹혀야 하는 미미한 존재였다. 당연히 나는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존재였다. 나에게 어머니는 너무도 큰 포식자였다.
낚시터에는 붕어가 없다
정다은
아침부터 실내 낚시터에 갔다 문에는 ‘잠시 외출 중’이라고 쓴 종이가 바람에 날린다 주인은 강으로 낚시하러 갔다 손님은 오지 않는다
낚시터 안을 지키는 어미 개가 젖꼭지에 새끼를 달고 기어 나온다 한 마리 두 마리…… 모두 다섯 마리다 한 마리가 부족하다
조그만 놈이 어디 구석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디오 뒤를, 냉장고 뒤를 막대기로 쑤셔 보지만 없다 물에 둥둥 뜬 하얀 것이 보인다 가슴이 철렁한다 죽은 붕어 세 마리이지만
붕어를 잡으러 간 주인은 오후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비틀거리는 나머지 새끼들도 물에 빠질 것처럼 앙장댄다 돌아오지 않는 주인, 아버지 대신 상자 속에 옮겨 놓는다
* 창작 동기: 손님이 오지 않는 낚시터에서는 붕어가 죽는다. 그리고 새끼 개도 죽는다. 물에 빠져 죽은 주검을 처음 보았다. 물에서 살던 붕어가 물에서 죽는 것은 당연하지만 뭍에서 살던 생물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은 비참하다. 텅 빈 낚시터가 그때처럼 낯설게 느껴진 적이 없다.
미치게 하는 길
정다은
사람을 만나러 간 자리에 입고 간 노란 옷이 불편했지요
그 사람이 보기에는 노란 옷이
사냥감에 달라붙는 문어처럼 나를 옭아매는 거예요
노란 빨판이 눈을 빙빙 돌게 만들어
나는 그곳에 노란 옷을 홀랑 벗어두고 왔어요
양파처럼 자꾸 벗다보니 눈이 아파오데요
그렇게 눈물을 쏙 빼다보니 남은 게 없데요
사냥감인 나를 잡아먹는 문어를 위해 노란 옷을 다시 입을까요
나는 아무도 못 만나겠어요
이렇게 말하며 골방에 갇혀 혼자 웃었지요
* 창작 동기 : 만나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인물의 옷을 입는다. 각각의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나를 무척 피곤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사람들과의 상호관계를 그만 둘 수도 없다. 사람들 간에는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약속이 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혼자 있는 것은 고독하다. 고독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형기를 낮춰준다고 해도 독방에 들어가려는 죄수는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독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지름길이다.
* 촌평 : 발생이 새롭고 이미지가 복잡해 충분히 현대성을 발휘하고 있군요. 현대인의 복잡한 마음을 담고 있어 여러 모로 주목이 되는군요. 하지만 시 안의 대상들이 이루는 관계의 구조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지 못하군요. 정밀하고 정확한 구조를 펼쳐낼 수 있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시제 운용에 대해서도 자각을 갖고 있지 못하군요. 서정시의 기본시제는 현재입니다. 현재시제와 과거시제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려면 그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위와 같이 퇴고를 해 보았으니 참고하여 시를 완성하세요. 좀더 노력하면 좋은 시를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