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4 문화예술의 거리 아트센터 나폴레옹 유물 특별전 관람
- 관람기관 : 2024. 5. 1. ~ 6. 30.
- 관람시간 : 매주 10시 ~ 18시 *월요일 휴관 / 무료관람
- 관람장소 : 익산아트센터 1층(익산시 중앙로 12-39) 익산문화예술의 거리
자유인 조동화는 향토기업 하림 김홍국회장이 프랑스 황제가 착용했던 이각(二角)모자를 10여년전 26억원에 구입, 중앙동 문화예술의 거리 아트센터에서 무료로 전시중에 있어 6/24 관람하였다.
하림 김흥국회장은
“평소 나폴레옹의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높이 샀다”며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나폴레옹 1세의 모자를 구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흥국회장이 어떤사람인디 모자를 26억원이나 주고 구입했는가 말이다?
주식회사 하림 김홍국회장은 1957년생으로 이리농림고등학교를 1978년 졸업했으며,
11살인 초등학교 4학년때 외할머니로부터 10마리의 병아리들을 선물 받아, 그 때 받은 병아리 10마리들은 18살 때 농장을 세워서 닭 5,000마리, 돼지 700마리가 되었으며, 그렇게 고등학교 재학 중인 어린 나이에 사업자 등록도 했고, 양계사업을 비롯한 축산사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그가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했던 하림은 크게 성장하여, 2017년 자산 10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고, 2020년대 재계 서열 20위권에 이르는 대기업이 되었다.
2024년도6월을 질주하고 무더위 7월을 향해 달리고 있구나.
어떻게 사는삶이 잘사는 삶일까?
인생무상 화무십일홍 그려려니 긍정적으로 살면 되야.
덧없고 부질없는 삶의 여로에서 좋은일 많이 많이 하시고 그려려니 즐거운 시간 됩시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되찾을 수 없는게 세월이니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하지요.
인간의 삶이란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살아볼만한 세상, 기왕지사 이세상에 왔으니 즐겁고 행복을 꿈꾸며 그낭 저낭 살아야 하지요.
이리도 한세상 저리도 한세상 세월은 흘러갑니다.
정답없는 인생, 내가 하고자 하는것 하면서 행복 느끼며 살면 그것이 행복아닐까 생각해본다.
조동화의 벗님들!
건강합시다.
행복합시다.
감사합시다.
<코르시카 섬 소년이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럽을 제패하고 황제가 되기까지, 시대의 영웅을 탄생시킨 긍정의 힘과 리더쉽을 이각모자에서 나폴레옹을 기억 해 보자.
이각(二角)모자(바이콘)는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 오스트리아군과의 힘겨운 싸움 끝에 승리했던 마렝고 전투 당시, 나폴레옹이 직접 착용했던 모자입니다.
나폴레옹은 위험한 전장 속에서도 자신의 부하들의 눈에 잘 띄도록 늘 두개의 뿔을 좌우로 향하게 하여 착용했고, 이 때 적들은 그의 실루엣을 볼 때미다 날개를 펼친 '박쥐'를 떠올렸다고 전해집니다.
보기 드물게 안감이 잘 보존되어있으며 그 안감은 회색과 녹색의 누비비단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안감을 이처럼 만든 것은 나폴레옹이 가죽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의 이 바이콘(이각모자)은 마렝고 전투 당시 나폴레옹을 수행했던 수의사 조제프 지로에게 주어졌으며 그의 후손들을 거쳐 모나코 왕실에서 보관해왔습니다.>
나폴레옹(1769.8.15.-1821.5.5.)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자 1804년부터 1814년, 1815년까지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였다.
코르시카 섬의 하급 귀족 가문 출신의 군인으로, 프랑스 혁명 시기에 벌어진 전쟁에서 큰공을 세우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쿠데타를 통해 제1통령이 된후 종신통령을 거쳐서 황제에 즉위했다. 그가 남긴 나폴레옹 법전은 전 세계의 민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군사적으로 현대전에까지 영향을 끼쳤고 전술과 전략, 훈련, 조직, 군수, 의복과 포상제도를 발전시켰다. 그의 프랑스 육군은 효율적으로 조직된 군대로 평가된다.
나폴레옹은 파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프랑스 제1공화국 시절인 1793년에 툴롱 포위전에 참여하여 승리를 이끈후 준장으로 진급하여 24살에 장군이 되었다. 1796년, 이탈리아 원정에서 대성공을 거두는 등 제1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에서 강력한 반 프랑스 동맹군을 상대로 연승하면서 군인으로서 승승장구하였다.
19세기의 첫 10년 동안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제국은 나폴레옹 전쟁을 주도하였다. 유럽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를 통해 프랑스가 유럽의 패권국가 자리에 오르게 만들었다. 이후 나폴레옹은 유럽의 각국들을 분할하고 서로 견제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측근들과 친척들을 유럽 다른 나라들을 통치하게 해 프랑스의 위상을 유지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은 대륙봉쇄령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대륙봉쇄령으로 인해 야기된 물자부족과 생필품 부족은 유럽 민중들을 고통스럽게 하여 반나폴레옹 감정을 고조시켰다. 봉쇄령 위반을 응징하기 위해 시작한 이베리아 반도 점령 실패와 러시아 원정 실패로 인해 프랑스 육군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손실을 입었다.
1813년에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후 대프랑스 동맹군이 1814년에 파리에 입성하였고, 나폴레옹은 실각하여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 1815년에 엘바섬을 탈출하여 권력을 다시 잡았지만, 같은 해 6월에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완전히 몰락하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삶의 마지막 6년을 남대서양 외딴섬인 세인트 헬레나에서 보냈다.
===위키백과===
왜 사는가 ?
참 웃기는 이야기다.
왜 살다니 ?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 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왜 태어 났나” 는 더 더욱 의미가 없다.
어느 날 인가 내가 나를 인식한 순간 난 이미 태어나 있었고
목숨을 끊지 않는 한 살아 있을 뿐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한세상 살고져 제 맘대로 태어나지 않았으며
잘 났으나 못 났으나 주어진 한번뿐인 삶을 꾸려간다.
그렇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아 있는 것이지 “살아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 많은 철학자들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
아마도 단하나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 즉 “어떻게 살 것인가”가 생각의 여유를 두는 것이리라.
어떻게 사느냐는 매우 중요하며 각자 지향하는 바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종교에서 내세(來世)를 이야기한다.
영생불멸도 끔찍하겠지만 유한한 삶을 산다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죽음은 분명 두려운 일이고 그에 대한 도피처로 생긴 것이 종교다.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잘 살다 가는 것일까 ?
난 한마디로 정의하고 싶다
진실하게그리고나눔에생활로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하고 싶은 일은 꼭하고 살기를 바란다.
세상을 둘러보라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
하늘에 피어나는 뭉개구름, 일곱빛갈 무지개와 찬란한 일출, 타는 저녁놀이 늘 우릴 설레게 하질 않던가.
바람 부는 날 느티나무 언덕에 서 보았는가 ?
눈 내리는 날 옷깃을 세우고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땅을 밟아 보았는가 ?
천둥 번개 심지어 벼락이 을러대는 칠흑 같은 밤에 공동 묘지를 거닐어 보았는가 ?
아무도 심지 않고 거두지 않으나 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많은 들풀과 산꽃을 그대는 아는가 ?
하얀 포말을 날리며 천지를 호령하듯 포효하는 파도며, 산간 이름 모를 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걸어 보았는가 ?
온갖 음악이며 춤은 어느 정도 경험했으며, 가슴 조이게 하는 명작을 얼마만큼 읽었으며,
영화 연극 오페라 판소리는 얼마나 보았으며
인도네시아의 발리, 태국의 푸캣은 가 보았는가 ?
목숨을 주고 싶을 정도로 격렬한 사랑을 해 보았는가 ?
사랑하는 이의 그림자라도 보면 좋고 발자국 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애태워 봤는가 ?
네 자신을 사랑하라
네 행복할 권리를 반드시 찾으라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이 생을 찬미 하며 음미하고 즐기라
많은 서론이 필요하지 않다. 죽어지지 않아 사는 것이다.
살고 싶어도 죽으면 살수가 없다. 그러나 사는 동안많큼
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고, 명예를 잃으면 조금 더
큰 것을 잃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남녀노소 관계없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좋은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