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옥화가의 소개
박태옥 화백은 원래 중국 조선족 동포출신 작가로서 1941년 중국 요녕성 환인현에서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나 곡절 많은 생애를 살아오면서도 오로지 초지일관 한민족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일에 정열을 쏟아왔다.
한국에 귀화한 이후에는 운보 김기창, 원전 장우성 화백 등 원로 화가와 돈독한 교분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한국.조선일보. 한국예총 후원으로‘예술의 전당’등 전국 각지에서 많은 초대전을 개최하였다.
박태옥 화백은 모택동이 중국미술 중흥을 목적으로 설립한 노신미술대학을 졸업했다. 항상 한민족의 얼을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한때는 반동 작가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으나, 등소평(鄧小平)에 의해 중국 당대 미술작가 중 최고의 반열에 우뚝 선 인물이 되었다.
박태옥 화백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본질세계와 현상세계를 넘나들고, 동서양을 뛰어넘어 조화를 이루며, 전통적인 기법으로부터 초현대적인 조형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성공적인 전시가 계기가 되어 문화부 후원으로 세계화단에 진출, 일본을 시작으로 불란서, 미국, 스페인 등에서 개인 초대전이 이어지게 된다.
1996년 백양(白暘)은 50여년 인생과 예술의 한계를 넘어 세계예술의 고봉으로 알려진 프랑스 파리에서 성공적인 개인전을 완성한다. 이것은 그에게 인간의 소우주와 자연의 대우주와의 연결된 숨결 같은 우주의 넓은 희망과 꿈을 담은 창작의 영역을 넓혀가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다.
프랑스에는 백양(白暘)을 ‘동양의 피카소’라며 동양화가로는 세계최고 수준으로 극찬했다. 박태옥 화백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는데, 해외 화단에서‘한국의 피카소’,‘제2의 백남준’ 등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미술가로서 하루 평균 두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운 박 화백은 동양의 氣와 脈을 화폭에 담아왔다.
게다가 문단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킨 대하소설 <조선족 여자>는 박경리의 <토지>와 같은 맥락에서 국경을 초월해 우리 민족문학의 가능성과 지평을 한층 넓힐 것으로 기대된다.
소설의 서사성이나 구성으로 보아 한때 이목이 집중되었던 일본의 <오싱>, 중국의<부용전>, 미국의<스토링>에 비견되는 수작이라는 게 문단의 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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