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 검사를 받는 환자. ©MSF/Arlette Blanco
국경없는의사회는 2021년 8월부터 과테말라 남부 에스쿠인틀라(Escuintla)주에서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chronic kidney disease of non-traditional origin)’과 연관된 이환율을 낮추고 시의적절한 진단 및 증상 관리를 보장하기 위한 종합적이고 간단하며, 지속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치료 모델을 도입했다.
약 3년 전, 54세 남성 살로몬(Salomón)은 토지의 대부분이 농지인 에스쿠인틀라주 라 고메라(La Gomera)의 사탕수수 밭에서 밭일을 하다 뱀에 물려 심각한 신장 질환을 앓게 됐다. 그 후 건강 상태가 악화하여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 현재 살로몬은 지낼 곳이 없어 쓰레기장 옆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혀 움직일 수 없었어요. 온 몸에 힘이 없었고 일어서려고 하면 무릎이 저절로 구부러져 넘어졌어요.”_살로몬 / 54세 과테말라 남성
걷지 못하던 살로몬의 곁을 지켜주던 건 연인 블랑카(Blanca)였다. 살로몬은 더 이상 자기자신을 돌볼 수가 없던 상태에 다다랐으며, 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살로몬은 몇 시간에 걸쳐 수도 과테말라시티(Guatemala City)행 버스를 타고 정기 진료를 받았다. 오전 진료를 받아야 할 때면 블랑카와 함께 진료 전날 밤에 출발해야 했다. 이는 살로몬에게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크게 부담됐다.
화장실을 가도 돈이고, 아침을 먹는 것도 돈이에요. 일자리가 없으니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을 죄다 팔았습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그 밖에 모든 것을 전부 팔았어요. 지금은 제대로 된 바닥도 없는 흙더미 위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비가 올 때마다 물이 들어 차고 악취가 심해요.”_살로몬 / 54세 과테말라 남성
현재 살로몬은 장작을 패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몇 번이나 사탕수수밭에서 다시 일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를 고용하지 않았다. 그 후 살로몬은 몇 달 동안 정원사로 일하다가 트럭 운전수로 고용됐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앉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극심한 고통으로 그만둬야 했다. 살로몬은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 5기를 진단받았는데, 이는 신장병리학에 관한 국제 가이드라인상 말기 신 질환으로 분류된다.
메소아메리카 풍토성 신증(Mesoamerican endemic Nephropathy, MeN)이라고도 불리는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은 노폐물을 걸러내고 소변을 만들어내는 주요 신기능이 점진적으로 저하되는 현상이다. 중앙아메리카 독성물질 연구소의 MeN에 관한 제2차 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만성신부전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큰 사회경제적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풍토병으로 변모하여 보건 당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은 말기에 이를 때까지 증상이 발현하지 않는다. 또한 해당 질병이 주로 발견되는 국가에서는 복막투석이나 혈액투석, 신이식술 등 신 대체 요법이 가능한 시설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지난 몇 십 년 동안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은 고온의 환경에서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하는 남성 농업종사자에게서 주로 보이는 질병이다. ©MSF/Arlette Blanco
의료 인류학자 프리다 로메로(Frida Romero)는 이 질병이 “일반적인 신부전과는 상이한데, 대개 높은 기온 등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만성 질병력이 없는 젊은 남성이 걸린다”고 전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21년 8월부터 지역사회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보건증진 캠페인을 전개했다. 살로몬은 이 캠페인으로 인해 국경없는의사회를 알게 되어 올해 3월 국경없는의사회를 찾아왔다.
이에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 파블로 이제피(Pablo Izeppi)가 플라스틱 시트와 캔으로 만든 살로몬의 집을 찾았다. 파블로는 살로몬을 진료한 후 다학제 통합진료팀과 함께 심리·정서적 지원을 제공했다.
당시 살로몬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이 취약한 상태 같아 보였습니다. 살로몬을 인근 보건소로 이송한 뒤 검사를 하고 생각보다 상태가 많이 심각해 국립 만성 신질환 센터로 전원시켰습니다. 살로몬은 대체요법을 시도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실제로 단기적 효과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점진적으로 악화하고 있어 적극적 치료(active treatment)를 시행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_파블로 이제피 /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
현재 살로몬은 단기적으로나마 정서적, 신체적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통증완화치료를 받고 있다.
현재 저희는 심리사회적, 정서적, 의료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역할은 살로몬이 앞으로 어떤 과정을 겪게 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살로몬이 택할 수 있는 요법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살로몬이 편한 시간에, 살로몬이 선호하는 요법으로 치료를 제공할 것입니다.”_마테오 체로(Mateo Cerro) / 국경없는의사회 과테말라 간호 및 환자 지원 책임자
차단된 의료 접근성
라틴아메리카 신장 투석 및 이식 등록소에 따르면, 과테말라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질환을 앓는 환자 수가 가장 높은 국가이다. 매해 162명의 복막투석이나 혈액투석 요법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신규 등록되며, 현재 신대체요법을 받고 있는 환자는 9,000명을 상회한다.
살로몬이 사는 에스쿠인틀라주는 과테말라에서도 만성신부전 유병률과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과테말라 보건부에 따르면 2008~2015년 사이 사망률과 이환율이 각각 18%와 75% 증가했다.
라 고메라 지역은 신부전증 전문 서비스나 3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 없어 이곳 주민은 치료를 받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시내나 수도에 있는 의료시설로 가려면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까지 걸리는 경우도 많다. 시설에 도착한다 해도 환자가 과밀해 빠른 진료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더 나아가 처방약을 받거나 추가 검사가 필요한 경우 이 긴 여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살로몬과 같은 이들에게는 큰 장애물로 다가오며, 이로부터 오는 심리적, 경제적 부담 또한 만만치 않다.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에 대한 지역사회 보건증진 교육 현장. ©MSF/Arlette Blanco
지역사회 활동 일 년 후
국경없는의사회는 에스쿠인틀라주에서 활동을 전개하며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과 연관된 이환율을 낮추고 시의적절한 진단 및 증상 관리를 보장하기 위한 종합적이고 간단하며, 지속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치료 모델을 개발하려고 시도했다. 2022년 8월은 국경없는의사회가 병인(病因)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이 다인자 질병과 싸운 지 1년이 되는 달이다.
한편 국경없는의사회 다학제 통합진료팀의 규모는 확대됐으며,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 환자를 발견하고 이들의 필요에 따라 지원할 역량 또한 갖춰 나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라 고메라에서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신부전’ 진단, 검사 및 진료 등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MSF/Arlette Blanco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 물류팀, 행정관리팀, 지역사회 보건증진팀은 라 고메라 지역사회에서만 활동을 개시했는데, 현재는 라 데모크라시아(La Democricia) 및 시파카테(Sipacate) 지역까지 활동을 확대했습니다. 2월, 국경없는의사회는 각 지역사회에서 비전통적 위험인자로 인한 만성 신부전의 예방, 조기 진단, 치료 및 감시를 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펼칠 수 있게 과테말라 보건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_로드 거스텐하버(Rodd Gerstenhaber) / 국경없는의사회 과테말라·멕시코·온두라스 현장 책임자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책임자 벤자민 제프(Benjamin Jeff)는 이번 프로젝트의 특기할 만한 성과로 현지 의료시설에 접근하여 환자를 진단하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던 점과 지역사회 내 신뢰도 증진을 꼽았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에서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질병에 대한 인식을 제고했다. 사람들이 질병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라 고메라의 의료시설. ©MSF/Arlette Blanco
질병의 진단 및 인식제고 활동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 담당자
올리버 소사(Oliver Sosa)는 환자가 신속 검사 및 진단 검사 등을 받기까지의 제반 과정을 통제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보건증진가 및 보건증진 교육 담당자로 구성된 10인 규모의 팀이 매주 지역사회를 찾아가 현지 주민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장려하여 사람들이 이 질병의 예방과 발견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오전 8시 반, 손씻기 및 간단한 설명을 시작으로 그날의 활동을 개시한다. 그후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환자의 몸무게와 혈압을 재고, 혈액 검사를 실시한다. 이렇게 하루에 약 40~6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일부 검사 샘플은 연구실로 보내고, 4~5기 환자의 경우 국립 만성 신질환 센터로 인계했다.
2021년 8월부터 2022년 6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총 2,376건의 검사를 시행했으며 3,030명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보건증진 활동을 전개했고, 다학제 통합 진료팀이 4~5기 환자 106명에게 후속치료를 제공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지역의 인구는 치료에 있어 적극적이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위험인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종합적인 의료지원 필요를 파악할 지역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첫댓글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