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坡州) 유적지(遺蹟地) 탐방(探訪)
2. 화석정(花石亭)<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
화석정(花石亭: 朴正熙 親筆) / 화석정과 임진강 / 율곡 이이(栗谷李珥) 영정(影幀)
자운서원(율곡선생 유적지)에서 20리(8km) 떨어진 율곡리 임진강 가에 화석정(花石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임진강(臨津江) 건너편은 연천군 장남면으로 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인데 조금 하류로 내려가면 바로 임진각(臨津閣)이 있다.
이 화석정(花石亭)은 고려 시대 3은(三隱) 중 한 분인 야은길재(冶隱吉再)의 집터였는데 세종 25년(1443), 율곡의 5대조(五代祖)인 이명신(李明晨)이 정자각(亭子閣)을 건립하였고 율곡이 중수(重修)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임진강변으로 도로가 뚫려 다소 산만하지만, 예전에는 기막힌 풍광을 자랑하던 곳으로 율곡이 어린 시절 자주 이곳에 올라 시문도 짓고 공부도 하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율곡이 직접 이곳에서 유생(儒生)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논하던 장소였단다.
강릉(江陵)과 한양(漢陽)에서 자라다 8세에 이곳으로 온 율곡은 이 정자각의 풍광에 매료되어 8세 나이로 기막힌 한시(漢詩) 한 편을 남기는데 이름하여 팔세부시(八歲賦詩)라고 한다.
화석정(花石亭) 율곡 8세 때 지은 시<八歲賦詩(팔세부시)>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숲속 정자에 가을이 깊으니 /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원수련천벽)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을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산토고륜월)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산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 울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이 화석정은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고 개성을 지나 평양과 중국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이었는지 사람들이 많이 들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우리에게 관동별곡(關東別曲)의 작가로 알려진 조선의 대학자 송강(松江) 정철(鄭澈)도 이곳에 들러 시를 남겼고,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오빠 허봉(許崶)이 중국 사신(使臣)으로 가다가 이곳에서 노후(老後)의 율곡을 만났다고 하니 같은 강릉 출신(出身)으로 회포도 남달랐을 것이다.
율곡은 이 화석정(花石亭)을 너무나 아껴서 수시로 기둥에 기름칠해 썩지 않고 반들반들하게 유지하도록 했다고 한다.
율곡이 죽고 8년 후, 우려하던 왜군(倭軍)의 침입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자 선조(宣祖)는 신의주로 몽진(蒙塵/피난)을 하게 되는데 피난 중 이곳 임진강에 다다르니 날이 어두워 강을 건너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때 선조(宣祖)를 인도하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화석정에 불을 지르자 기름을 칠한 기둥이 활활 타올라 그 밝은 불빛 속에 선조께서 무사히 강을 건넜다고 한다.
이 화석정(花石亭)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재건립되어 존속하다가 한국전쟁(6.25) 때 다시 소실(燒失)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1973년 율곡과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淨化事業)으로 재건축하였다고 하며 현판은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친필(親筆)이라고 하단(下端)에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곳 화석정(花石亭)을 찾아가느라 조금 애를 먹었는데 의외로 진입로도 좁고 너무 외진 곳이라는 느낌이다.
정자각 앞에는 승용차 서너 대를 댈 수 있는 조그만 공간과 음료수와 기념품을 파는 매점이 하나 달랑 있을 뿐으로 분위기가 썰렁하다. 그나마 관리(管理)는 제대로 되고있는 듯 주변은 깨끗하고 정자도 말끔하게 청소되어 있어서 위안은 되었는데 방문객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율곡의 주요 저서들을 보면 우주천체(宇宙天體)의 운행(運行)을 기록한 별시문과(別試文科)의 답안지였던 천도책(天道策), 왕도정치(王道政治)에 대한 경륜(經綸)을 문답체로 서술한 동호문답(東湖問答), 유교(儒敎)의 심성론(心性論)에서 심(心)의 양면성에 관한 학설인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김시습(金時習)의 전기(傳記)인 김시습전(金時習傳),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 기자(箕子)의 행장(行狀)을 기록한 기자실기(箕子實記), 제왕의 학(學)을 위하여 저술한 성학집요(聖學輯要) 그리고 한학 입문서(入門書)인 격몽요결(擊蒙要訣) 외에도 우리의 귀에 익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저술(著述)하였다.
3. 그 밖의 주변 명소들
<1> 벽초지(碧草池) 수목원과 율곡(栗谷) 수목원
벽초지 수목원 / 벽초 연못 / 말리성(Marly Castle) 정원 일각
파주시 광탄면 부흥로에 있는 벽초지 수목원은 율곡선생 유적지에서 다시 20km 쯤 떨어져 있는데 우연히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당연히 숲속 산책길인 줄 알았는데 테마 별로 다양하게 꾸며져 있고 온갖 꽃들은 물론, 허브(Herb) 식물과 제법 커다란 식물원도 있고 휴식처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명소였다.
특히 놀랐던 것은 말리성의 문(Gate of the Marly Castle)이라는 문을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상(神像)들은 물론, 서양의 철학자들 동상까지 빼곡히 세워져 있어 전형적인 유럽식 정원을 보는 듯하다. 규모는 미치지 못하지만, 언뜻 내가 보았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뒤뜰의 정원을 연상시킨다.
말리성(Marly Castle)은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던 프랑스 왕실 거주지였는데 지금은 없어진 곳....
또 눈에 띄는 곳은 벽초지 연못인데 상당히 넓은 연못에는 너무나 탐스러운 연꽃과 수련이 가득 피어있고 연못 가운데로는 나무로 만든 산책로까지 조성되어 있어 거닐어 보면 마치 천국에 들어선 듯 착각할 정도다.
이곳은 산책코스도 테마별로 아기자기한 곳이 많고 화훼관리가 철저하여 일 년 내내 꽃이 핀다고 한다.
이 벽초지 수목원은 몇 번 방송을 타고 난 후 비로소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내가 갔을 때도 상당히 넓은 제1 주차장이 꽉 차서 제2 주차장에 가서 주차(駐車)해야 했는데 거기도 거의 만차였다.
바로 가까운 율곡리에는 율곡수목원도 있는데 그윽한 숲길이 이리저리 뚫려있어 볼거리보다는 힐링(Healing) 공간으로서 유명하고 인근에는 캠핑장도 있다. 여기서 임진강을 따라 하류로 12km 정도 내려가면 우리나라 분단의 비극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임진각(臨津閣) 평화누리공원이 있다.